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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퍼옴 예수는 없다의 저자 오강남 교수 대담
게시물ID : sisa_59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비인
추천 : 12/10
조회수 : 404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04/05/25 11:57:15
모든 종교인은 진리의 길에서 만나는 길벗입니다
오 강 남  |  캐나다 라자니아대 교수
대담: 김홍근 본지 주간
오강남 교수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에서 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 라자니아 대학교 비교종교학과 교수 및 종교학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 동안 맥매스터대, 마이아미대, 알버타대, 서울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다.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
북미 한인종교학회 회장 등의 일을 맡기도 했다.
저서로는 『길벗들의 대화』, 『노자 도덕경 풀이』, 『장자풀이』 등이 있고,
번역서로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등이 있다.
▶  예상을 깨고 베스트셀러에 진입하여 짧은 시간 내에 수만 권이 팔려나간 선생님의 책 『예수는 없다』에 대해 먼저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을 내시게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캐나다 연합교회의 총회장인 빌 핍스라는 분이 어느 기자회견에서 자기는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고, 또 동정녀 탄생도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기사가 나가니까, 캐나다 극보수파 기독교인과 특히 한국 교포 기독교인들이 크게 당황했지요. 그래서 내가 예수님 믿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자기식대로의 보수적인 신앙만 유일한 것으로 고집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뒤떨어지는 것이라는 설명과, 더불어 육체적 부활과 동정녀 탄생설에 대한 학계의 최신 이론을 소개하는 글을 지상에 발표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어느 목사님이 그것에 반박하는 글을 발표하셨죠. 그렇게 몇 번 글이 왔다갔다 하는 가운데,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21세기 신학사상의 주된 흐름을 알려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정보를 접하는 유일한 통로인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쉬운 언어로 신학계의 최근 동향을 소개하자는 것이 이 책을 내게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 책의 부제가 ‘기독교 뒤집어 읽기’인데, 책 내용에 대하여 소개해 주십시오.
기독교 신학에서 진리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신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진리에 대한 인간의 해석과 수용태도는 자꾸 바뀌어 가거든요. 옛날 천동설 시대에 생각했던 신관神觀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하면 그에 따라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서 더 깊고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에서 이미 보편화된 내용조차도 한국 기독교인들은 일부러 눈을 감거나 부정해온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마음을 열고, 속으로는 믿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믿는 것처럼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버리고 정직하고 건강한 신앙을 갖자는 제안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믿음에 대한 여러 현대사상과 사조들의 도전 앞에서 그것들을 무시하고 회피하여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쑤셔 박고 마음을 닫아거는 신앙이 아니라, 당당히 맞서서 그것들을 소화하고 이겨내는 책임 있는 신앙을 갖자는 것이지요. 결국 오늘 여기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마음을 열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  이 책이 출판된 지 넉 달 정도가 지났는데, 한국사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반응이 참 의외입니다. 제가 안식년을 맞아 모처럼 한국에 나간다고 하니까, 친지들이 한국에 가면 이 책 때문에 돌팔매를 맞을 각오를 하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책이 4만 5천부나 판매되었고, 대중강연에서도 격렬한 반대를 만나본 일이 아직은 없습니다. 책의 내용을 읽지도 않고 무조건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아마 한국사회가 상당히 성숙되고 지성인 층도 두꺼워져 이제는 이런 책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만큼 관용적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정말 그렇다면 참 다행한 일입니다. 선생님의 선의善意를 받아들일 정도로 이 사회가 넓어진 것이죠.
제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뒤 캐나다에 유학 가서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교양 있는 서구인들의 성숙되고 열린 기독교 신앙을 보고 참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기왕 공부하는 바에야, 그런 바른 신앙을 한국에도 소개해야겠다고 늘 생각해온 것이죠. 제가 전에 냈던 『길벗들의 대화』 같은 책에서부터 일관되게 이런 저의 짝사랑을 전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  선생님은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전공으로 종교학을 택하셨는지요?
제가 기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면서, 이것을 좀 분명히 알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될 마음은 없어서 신학과에는 가기 싫고, 종교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보다 보니 자연스레 종교학과로 진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학과 사정으로는 종교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얻기가 역부족인 상태였습니다. 서양종교 일변도의 커리큘럼으로 짜여져 있었죠. 후에 캐나다에 가보니 그곳에서는 학자들이 오히려 동양종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동양종교에 대한 공부는 오히려 캐나다에서 시작하셨군요?
예, 캐나다에서 동양종교를 자유롭게 공부하면서 이렇게 다양한 종교경험이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 하는 깨달음의 산을 올라가면서 영어로 Realize한다는 것, 즉 아래서는 사실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높은 곳에 오르고 보니 사실이구나 하면서 영혼이 성숙되어 가는 <깨침의 길>을 걷는 동양종교의 장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런 합리적인 길을 무시하고, 믿기 어려운 것도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서 <지성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습니다. 화엄이니 선불교 혹은 노장사상을 공부해보면, 거기는 믿어라 믿지 말라 하는 요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양심이나 지성의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믿음이란 사실 너머의 것인데, 비현실적인 교리마저도 사실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면 마음속에는 믿음의 이중장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오늘 같은 이성의 시대에는 믿음만 고집하기보다는 깨달음을 곁들이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됩니다. 깨달음은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는 것인데,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면 믿음도 보다 확고해지게 되겠지요. 궁극적인 의미에서, 믿음과 깨달음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  당시 캐나다 학계의 분위기는 어떠하였습니까?
제일 눈에 띈 것은 대학원 종교학과 학생들 중에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서양종교 전공과 불교, 힌두교 등 동양종교 전공이 완전히 반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양종교 전공자는 반드시 동양종교를 부전공으로, 동양종교 전공자는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모든 학생들이 동서양종교 공부를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갔으니까 자연스럽게 동양종교를 전공하고 서양종교를 부전공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중관론中觀論> 강의를 들었을 때, 세상에 이런 이론도 있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  선생님이 캐나다에서 공부를 시작하시던 당시는 서구 지식인 사이에서 서양문명의 한계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일어나던 때가 아닙니까?
히피나 반전反戰, 반문화(Count Culture) 운동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습니다. 학생들이 동양종교에 얼마나 관심을 많이 가졌던지 과목마다 400-500명 씩 들어와 인산인해를 이루었지요. 서양문명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좌절감과 절망감이 팽배하여, 그 문제에 대한 대안과 해결점이 동양의 정신 속에 있지 않나 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도덕경』을 읽지 않은 사람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물질의 풍요만으로는 인간의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판명났다고 보는 것이 당시의 시대정신이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좀 깊이 들여다보려면, 유구한 동양정신의 전통을 무시해서는 안되지요. 가령 지질학자가 자기 집 뒷마당만 파보고 지구를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듯이, 정신도 자기 둘레만 둘러보고 자만하면 시야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동양정신을 공부하던 사람들이 당시에는 아웃사이드였지만, 지금은 40-50대 중견학자들이 되어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고 미국과 캐나다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  선생님은 캐나다 맥매스트 대학교에서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으셨는데요, 어떻게 그런 주제를 선택하였습니까?
토인비는 화엄사상이 인간의 사고가 미칠 수 있는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넘어서면 침묵 밖에 없다는 것이죠. 스즈끼 다이세츠 박사도 화엄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그 밖의 여러 책에서도 그런 말을 접하고 보니, 젊은 나이에 기왕 공부하는 바에는 한 번 붙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인지 부처님의 가피인지 모르지만, 참 다행스런 선택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세계관이 완전히 열리게 되었으니까요. 상즉상입相卽相入으로 온 세계가 서로서로 품고 있다는 이런 생각은 서양의 기계론적, 이분법적 세계관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경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의 사고방식에만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되죠. 그 뒤 강의를 맡게 되면서 제 지적, 영적 호기심에 따라 『도덕경』과 『장자』 등의 책도 읽고, 나중에는 번역까지 하게 됩니다.
▶  노장사상에 대한 일반 서구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60년대 이후 서구학생들이 노장과 불교 등 동양사상에 심취하여 자기들의 문제점을 풀어주는 해답이 그 안에 있다는 기대를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예요. 오히려 저는 학생들에게 동양을 정신적인 낙원으로 오해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편입니다. 모든 것에는 이상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이 있는데, 그런 고전들은 사상의 정수를 다루는 것이고 반면에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지요. 예를 들어, 흔히 서양은 경쟁사회고 동양은 협동사회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지금 한국이나 일본 혹은 싱가포르의 상황은 서양사회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사회라고 말해줍니다. 어떨 땐, 지금 세상은 서양이 더욱 동양적이고 동양이 더욱 서양적이라고 풍자하기도 합니다.
▶  노자와 장자가 이미 서구에 소개된 지 오래되었고, 따라서 서구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해낸 점도 많은데, 그런 성과를 소화하시고 난 뒤 그 고전들을 번역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궁금합니다.
물론 한문으로 된 원문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번역했지만, 동시에 현대 중국어 번역본과 일본의 대표적인 번역 그리고 영어의 각종 번역본들을 모두 대조해가면서 작업을 했습니다. 서문에도 썼지만, 어느 사람의 번역을 따르느냐 하는 결정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서양의 학문업적을 원용하다보면, 언어가 자유로워진다는 장점이 큽니다. 예를 들어 공자의 인(仁) 하면 우리는 <어질다>고 말하는데, 사실 일반인으로서는 이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서양인이 그 말을 어떻게 번역했느냐를 보면, 훨씬 그 뜻이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어짐> 보다는 <사람됨>으로 번역하는 게 더 좋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그런 방식으로 <무위>를 <억지로 하지 않음> 등으로 해설하였지요. 만일 사람들이 저의 번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주는 게 있다면, 아마도 애매한 용어를 피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풀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가 번역한 『도덕경』이 중학생 권장도서로 추천되기까지 했으니까요.
▶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이 고전을 회피하는 이유가 바로 대부분 고전의 번역어투가 그들이 보기에는 너무 고리타분한 언어로 쓰여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이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터득한 넓은 시야와 시사성이 강한 현대어 구사력으로 고전을 풀어주시니 다행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유교나 도교보다 불교 용어가 어려운데, 그것도 서양사람들이 이해하는 식으로 해석하면 매우 쉬워집니다. 지난주에 제가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하바드대 출신의 미국인 현각 스님을 만났는데, 대화 중에 한국불교가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의 장벽에 가로막혀 일반인들에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에 같이 공감했습니다. 서양사람들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쉬운 일상용어로 접하고 현재의 삶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뜻도 모르면서 어려운 경전을 무조건 따라 외기만 하니 젊은이들이 어디 선뜻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  선생님이 쓰신 『예수는 없다』에도 현각 스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그 내용을 좀 소개해 주시죠.
저는 현각 스님의 책을 읽고 세 가지 측면에서 눈물이 났다고 썼습니다. 첫째는 미국에서도 최상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감수성 예민한 그 젊은이가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붙들고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뇌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안스럽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한국인 숭산 스님을 만나 스님으로 일단 출가를 하고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는 그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그 또래 자식을 둔 어버이의 심정에서 정말 마음이 안되었습니다.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셋째는 집안 형편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한 벽안의 이방인 젊은이가 동양적 가치, 한국의 얼, 한국의 문화를 발견한 뒤 그렇게 고마워하고 있는데도 우리 한국인들은 그 보물을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심지어는 일부러 무시하고 멀리 밖으로 찾아 헤매거나 외국문화의 수입상 노릇만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서양의 종교적 식민지 통치에 세뇌된 일부 배타적인 종교인들이 우리 것은 모두 열등하고 따라서 없애야된다는 그릇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충정으로 이번에 그 책을 내게된 것입니다. 현각 스님은 스님의 길을 걷고 있는 자기가 결코 예수님을 떠나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를 통해 기독교와 불교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에 조화롭게 녹아날 수 있나 하는 실증을 보는 것 같아 감격스러웠습니다.
▶  그러면 두 분이 만나서 의기투합하셨겠네요.
정말 찰떡 궁합처럼 말이 통했습니다. 반은 한국말로 하고 반은 영어로 대화했는데, 그도 오랜만에 모국어로 맘껏 말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고 하면서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막역지우가 따로 없었지요. 그는 순박한 젊은이 그대로였습니다. 처음에는 나도 스님으로 예우를 하다가, 어떤 때는 그가 내 아들 나이 또래이기도 해서 미국식으로 본 이름 <폴Paul!>이라고 부르며 서로 어깨를 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  현각 스님 같은 외국인 제자를 길러낸 숭산 스님도 대단한 분인 것 같습니다.
예, 숭산 스님 밑에서 제자가 된 외국인이 50여 명 된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미국인 스티븐 미첼 같은 이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도덕경』을 번역한 사람입니다. 가장 미끈한 영어 번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지요. 물 흐르듯이 흐르는 노자의 생각을 물 흐르는 듯한 영어로 옮겨놓았고, 또 「창세기」도 아주 창조적으로 번역하였습니다.
▶  정신의 경지가 뒷받침되어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국불교를 미국에 수출한 공로가 큰 것 같습니다.
한국불교를 미국에 수출한 공로도 크지만, 내 생각에는 거꾸로 미국에서 새롭게 이해된 불교를 한국에 소개한 공로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한국불교, 일본불교, 베트남불교, 티베트불교 등 각 민족의 전통적 불교(Ethnic Buddhism)가 미국에 들어왔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미국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민족적인 색채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 땅에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진 불교를 화이트불교(White Buddhism) 혹은 엘리트 불교(Elite Buddhism)라고 부르지요. 그들은 제의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깨침을 통한 내적인 변화를 중시합니다. 물론 100%의 깨달음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변화되어 가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내면의 성숙을 지향하는 거지요. 한국에서도 불교가 보편화되려면 젊은이들을 그런 방식으로 이끌 필요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예불방식만 고집하지 말고, 각자가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불교진리를 접하고 내적으로 성장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굉장히 자유롭고 열린 종교생활이 되겠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심지어 스스로 기독교도니 불제자니 하는 정의조차도 무의미해질 수 있겠는데요.
이번에 현각 스님을 만났을 때, 그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는 한 번도 자기를 불자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답니다. 그가 어린 시절에는 카톨릭 신부가 되려고 했었는데, 언젠가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을 때 추기경님이 “왜 교회를 떠났는가?” 하고 물으셔서, 자기는 교회를 떠났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답니다. 크리스찬이니 불교인이니 하고 렛델을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울타리를 허무는 사람이어서, 기독교인이니 이슬람인이니 하고 한정하는 것은 예수님 정신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지요. 젊은 사람이 아주 확신을 가지고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물론 현각 스님도 제의적인 면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벽 같이 일어나 누구보다도 성실히 예불을 올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친구를 만나 반가울 때, 악수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지요. 단지 그것에 얽매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  사물을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하게’ 봐준다는 뜻도 되는 것 같습니다.
나보고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냐고 물으면, 저는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가 묻는 <기독교인>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지요. 나는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인들을 경원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고 또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되묻습니다. 사실 오늘 같이 다종교 사회에서 <하나님을 믿느냐>는 말은 모호한 말이 되기 쉽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이러이러한 하나님에 당신이 동의하느냐 하지 않느냐> 해야 보다 명확한 질문이 됩니다.
▶  캐나다에서는 종교다원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내 종교가 좋다고 해서 알지도 못하는 딴 종교를 나쁘다고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종교다원주의는 매우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좋은 점은 배우자는 자세는 사실 상식적인 것이잖아요? 캐나다에서는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분포가,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약 20-40%입니다. 한국에선 아마 90% 이상으로 봐야지요. 그런데 유럽의 신부나 목사님들에게 들어보면, 유럽에선 그 숫자가 아주 미미하다고 합니다.
▶  선생님이 이번에 내신 책에는 다석 류영모 선생과 간디에 관한 내용도 나오던데요?
류영모 선생을 제 책에 인용한 것은 예수님을 이렇게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류영모 선생이 보여준 믿음을 아주 성숙한 신앙자세라고 봅니다. 서양에서 수입된 기독교를 우리의 몸과 토양에 맞게 소화해서 승화시켜야 된다는 것이지요. 과거처럼 원단과 옷본과 재봉틀을 수입하여 외국 스타일 그대로 옷을 생산해내는 봉제공장 신학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창의적인 옷을 생산해낸 그런 선각자들도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심지어 간디도 예수를 그렇게 따랐습니다. 스스로 힌두교인이면서도 얼마든지 예수를 사랑하고 따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간디는 한평생 힌두교를 떠나지 않았지만 예수님, 특히 산상수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간디를 평할 땐, 크리스천(Christian)은 아니었지만 역사상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Christlike) 사람 중 한 분이라고 인정합니다.
▶  다석 선생이나 간디는 자기 종교를 <먹고> 다 소화시키고 난뒤, 그 튼튼한 위장으로 다른 성인의 말씀도 먹음으로써 정신을 더욱 크게 살찌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의 책에서, 모든 종교인은 <진리의 길에서 만나는 길벗>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희 『진리의 벗이 되어』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교수는 감신대의 김흥호 교수를 만났다. 그 대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강남: 오래 전부터 만나 뵙고 싶었는데 대단히 반갑습니다.
김흥호: 그래요. 나는 우리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이해해주고 또 도와주는 그런 성숙된 종교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떻소?
오강남: 생태계 파괴와 아프간 전쟁 등 지금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기독교 전도가 아닌가 합니다.
김흥호: 인류를 돕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지, 다른 종교와 싸우자는 것이 우리의 뜻이 아니죠. 나는 일요일 교회에서 성경 강의하기 전에 한 시간씩 화엄경을 강의하는데, 기독교인들도 불교를 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러지요. 그렇게 해야 서로 이해하게 되지 않겠어요? 우리가 불경을 안다고 해서 우리의 기독교 신앙이 낮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럼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튼튼해지고 생명력을 얻게되는 것이지요. 기독교가 이집트에 가서 콥트교가 되었어도 별로 힘을 쓰지 못했는데, 희랍에 가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잡아먹고 크게 성장하고, 로마에 가서 그 문명을 기반으로 해서 세계종교로 발돋음한 것처럼 동양에 왔으면 유교와 불교를 잡아먹어야 더욱더 성장하지 않겠어요? 우리는 동양의 기독교를 만들어야지, 서양의 기독교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오강남: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를 아무런 가감 없이 그대로 따라가기 보다 우리의 체질에 맞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김흥호: 화분에 갇힌 기독교가 아니라 이 땅의 대지에 뿌리박은 그런 기독교로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강남: 미국인 현각 스님도 한국의 모든 강원에서도 적어도 4복음서는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합디다. 세계화의 시대에 맞춰 한국의 스님들도 예수님의 생각을 좀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기는 참선을 통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흥호: 그거 우리 생각하고 같으네. (웃음) 결국 모든 생각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사실 기독교도면 어떻고 불교도면 어떻소.
오강남: 벽을 허물자는 것이 예수님 생각 아니겠습니까.
김흥호: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저절로 다른 종교도 다 알게 되지 않겠어요. 마치 우리가 에베레스트에 올라가면 다른 산들도 다 보이는 것처럼 말이요. 난 양명학이고 화엄경이고 가르치지만, 양심의 가책은 없어요. 내가 지금 이번 주에 강의할 화엄경을 읽던 중인데, 그 내용이 예수님 말씀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결국 고통받는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거니까. 어떤 보살은 지옥에 가서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고, 스스로 인질이 되어 중생들을 구속해내려는 서원을 해요. 그런데 구속救贖이란 말이 우리 기독교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여기 화엄경에 이렇게 나오잖아요. 예수님이 십자가로 우리를 대속시킨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어요.
오강남: 테레사 수녀는 아마 돌아가신 뒤 지옥에 가 계실 겁니다. 사람들은 무슨 불경스런 말인가 하고 놀라겠지만, 그 분은 늘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분이라 당연히 천국행을 사양하고 지옥에 계실 거라는 것이지요.
김흥호: 자신이 인질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내보내달라고 염라대왕에게 부탁하고 있을 거야. (웃음) 난 불교에도 이런 사상이 있나 하고 감탄했어요.
오강남: 제 생각에는 종교의 분류를 불교다 기독교다 하고 나눌 것이 아니라, 종교에 상관없이 기복신앙이냐 이타신앙이냐 하고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복적 기독교인은 이타적 기독교인 보다 기복적 불교인에 훨씬 더 가까울 겁니다.
김흥호: 사실 기복신앙은 종교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종교가 되려면 기복신앙을 넘어서서 진리를 깨닫거나 믿음을 가지거나 해야지요. 그렇게 보면 한국에 기독교인이 수백만 명이 있지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얼마나 될지 의문입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지요.
오강남: 이단을 타종교로 보기보다는, 자기를 놓지 않고 하나님께 가자는 것이 바로 이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흥호: 왕양명도 이단이 뭐냐는 제자의 질문에, 자기를 위하는 것이 이단이라고 대답했지요. 기복신앙이 바로 이단이지요. 요즘 진실된 신앙인은 눈을 비비고 보아야 만나지, 보통으로는 만나기 어렵게 되었어요. 인간의 마음이란 수준이 높아져야 서로 통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종교간의 갈등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의 수준이 낮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지요.
오강남: 이렇게 만나서 좋은 말씀 듣게 되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더욱 건강하셔서 후학들을 위해 귀한 강의 많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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