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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의 전라도 여행
게시물ID : bicycle2_121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팝버블
추천 : 13
조회수 : 60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3/08/05 01:17:59
여름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휴가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 짧게 다녀올 만한 곳을 물색하던 차에

자전거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남도가 좋겠다 싶어 여수행 기차표를 예약합니다.

1. 0일차 - 여수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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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여수에 도착하니 8시 반입니다.

역을 나서자마자 코끝을 간지르는 바다내음은 기분좋은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기차를 타고 따라온 일상의 무게는 어느새 바닷바람에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 이른시간이 아니니 서둘러 숙소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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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여행의 가장 큰 적은, 한여름의 찌는듯한 더위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도 아닌

바로 이 가방입니다.

랙을 달 수 있는 자전거는 도색중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트레일러를 달기에는 여행 기간이 너무 짧아서

백팩에 꾸역꾸역 짐을 넣으니 무게가 10키로가 넘습니다.

숙소 계단을 오르는것도 벅찬데 이걸 메고 사흘간 800km를 달려야합니다.


서둘러 짐을 풀고 돌산공원으로 밤마실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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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공원으로 가는 길은 20%에 가까울법한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을 두개 올라야 하지만

길이가 워낙 짧아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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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공원에서 바라본 여수의 야경은 예쁘긴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리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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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깔의 불빛이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져서 그럴까요..

오히려 엑스포 이전의 조금은 투박한 여수가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시작되는 내일을 위해 공원을 내려와 다시 숙소로 향합니다.


2. 1일차 - 여수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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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여수에서 출발해 이순신대교를 건너 남해군을 한바퀴 돌고, 다시 여수로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이순신대교는 자동차 전용도로는 아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이륜차와 보행자의 통행을 제한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순신대교를 건너는게 1차 목적이었던지라, 깔끔하게 남해행은 포기하고, 여수지역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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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역 근처의 숙소에서 출발해 돌산을 한바퀴 돌고,

오동도에 들렀다 여수산단의 야경을 보러 갈 예정입니다.

총 거리 100킬로미터 가량으로 사흘간의 여행중 웜업으로 더할나위 없는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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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도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휴가철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많지 않은 통행량, 적당한 오르막과 내리막, 간간히 보이는 바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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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산도의 향일암을 향하던 도중 작은 갯벌이 보여 구경도 할겸 잠시 쉬어가려고 갯벌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바닥이 전부 굴껍질로 가득한걸로 봐서 굴 조업장 인 것 같습니다.

굴 철이 아니니 사람도 없고 한적한게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웬걸.. 갯벌에는 이미 먼저온 친구들이 잔뜩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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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수많은 게들.

여름의 갯벌은 작은 게들의 군락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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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소리에 놀란 게들이 물속으로 들어가 눈만 내놓고 제가 가기를 살핍니다.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너무 즐거워 한참을 넋놓고 구경하다 아차 싶어 다시 출발합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몇시간씩 페달링 한다는게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차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곳에서 이리도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에

벌써 몇년째 시간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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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 전망대에 올라갔다 다시 여수방향으로 페달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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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수를 20킬로미터정도 남겨놓고 유리조각을 밟아 펑크가 났습니다.

실란트를 꺼내 응급조치를 했으나, 펑크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분명 펑크부위는 막혔는데 어디선가 계속 공기가 새서 타이어를 뜯어보니 타이어와 벨브 연결부위가 살짝 찢겨있었습니다.

싸고 튼튼하고 라텍스가 아니라 기압도 잘 안떨어져서 여행용으로 딱이라던 볼케이노 타이어..

가격에 비해 접지력은 좋으나, 내구도가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여분의 타이어는 숙소에 두고온지라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업습니다.

결국 택시를 불러 숙소에 돌아갔고, 타이어를 교체했습니다.

테이프가 없어 실란트로 접착했고, 마르기 기다려야하니 첫날의 오후 일정인 여수산단은 포기..

휘적휘적 걸어서 오동도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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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가는길, 하멜등대 든처에 있는 거북선대교.

작년에 완공된 다리라 돌산대교에 비해 비교적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지만

돌산대교보다 예쁜 사장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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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돌산대교보다 사람이 적어 경관을 즐기기가 훨씬 더 편하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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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에 다녀오니 해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합니다.

본딩을 해놓은 자전거를 들고 간단히 여수 시내 한바퀴를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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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숙소 근처에서 새벽까지 하는 횟집을 발견하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아 같이 술한잔 하러 나갑니다.

내일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남도 일주를 하는 20대 초중반 친구들,

갓 스무살의 나이로 외국 친구와 함께 한국을 여행중인 친구,

쿠쿠다스 광고 보고 아무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소매몰도로 가고계신 30대 중반 형님..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덧 시계는 새벽 세시..

내일 일정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여행중에 만나는 사람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고 낭만인 것 같습니다 :)


3. 2일차 - 광주로!

원래 이틀차 일정은 여수에서 여객선을 타고 외나로도 가서, 외나로도에서 땅끝마을을 찍는거였는데,

7시 40분 배를 타려고 7시에 여객선 터미널에 갔는데도 표가 매진..

어쩔 수 없이 육로만을 통해 땅끝마을을 가기로 하고 자전거의 방향을 순천으로 돌립니다.

그렇게 한 30여키로를 달려 순천만을 들렀다 보성방향으로 향하려 하는데

문득 뜬금없게 여순사건이 생각납니다.

여순사건은 현대사에서 그 중요성이 굉장히 높지만 정치적 이유로 중요성에 비해 굉장히 축소된 사건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수, 순천을 지나오며 생각조차 못했었다는 사실에 괜히 부끄러워집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후회하다 해남 땅끝마을이 아닌, 더 큰 의미가 있는 곳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피로 일궈낸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단한번도 광주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 역시 제게는 큰 부끄러움중 하나였기에

광주를 향해 다시 페달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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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도착해 처음으로 향한 곳은 5.18 기념공원입니다.

당시의 처절함과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여실히 들어나는 공원의 동상이

휴가철임에도 텅 비어있는 공원 아래 외로이 서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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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뒤에는 추모공간으로 내려갈 수 있는 관부조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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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는 벽을 가득 메운 희생자들의 명패와 희생된 자식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동상이 있습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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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저 이름들과

저들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슬픔 위에 쓰여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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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행선지는 5.18 자유공원입니다.

5.18 자유공원은 당시 실제로 군사재판이 열렸단 장소에

당시의 부대 모습을 재현해놓은 곳 입니다.

5.18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잘 정리해놓은 전시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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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나와 숙소를 잡고

5.18 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역을 들렀다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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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어 추모관에 들어가보지 못한게 못내 아쉽습니다.

조만간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하고 이튿날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4. 3일차 - 새만금 방조제, 군산,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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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아침. 광주를 나서는 길에 잠시 아시아 문화전당 공사중인 구 전남도청을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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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중인 도청에는 가벽이 새워져있는데, 가벽에 주욱 그래피티가 그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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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켠엔 이런 글귀도 새겨져있습니다.

'새날. 5.18 잊지말고 기억하자'

마지막까지 먹먹한 마음으로 광주를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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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고창을 지나 새만금 방조제로 가는 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물이랑 얼음컵을 하나 샀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컵은 돈을 안받으시고, 샌드위치까지 얹어주십니다..

계산을 하겠다고 말씀드려도 통 듣지 않으셔서,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결국 음료수랑 에너지바 몇개를 구매했습니다.

자전거로 여행하다보면 종종 만날 수 있는 즐거운 호의입니다.

오늘 일정은 여행중 처음으로 200킬로미터를 넘기는 강행군인데, 덕분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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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키로 가량을 달려 새만금 방조제에 도착했습니다.

새만금 방조제는 총연장 34km로 세계 최장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세계 최악의 갯벌파괴 현장이기도 합니다.

환경파괴 현장을 내 눈으로 보겠어!! 하고 왔는데..

근데..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규모가 너무 크다보니 그냥 해안도로 달리는거랑 딱히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에,

갯벌이 파괴됐는지 아닌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온다던 비는 커녕 맑은 하늘에 기온은 35도까지 올라갔습니다.

방조제엔 나무가 없으니 그늘도 없고,

에어로 프레임에 하이림 휠.. 그리고 커다란 가방까지 횡풍에 부딪혀 페달을 무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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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중간중간 이런 휴식공간이 있어서 마실것도 사마시고 파라솔 밑에서 쉴 수도 있고 한데..

대체 저 농구코트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논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왜 바람 미친듯이 부는 방조제에서 농구를 해아하는건지..

덕분에 코트는 정말 광나도록 깨끗합니다.

아! 그래도 조금 재미있었던건 중간에 이동방향이 바뀌면서

바람이 횡풍에서 반쯤 순풍으로 바꼈는데

어찌나 강풍이 부는지 200와트로 달려도 속도가 50키로정도 나왔습니다.

덕분에 한 10키로정도는 순간이동 한것처럼 달렸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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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도착한 곳은 일제 강점기에 가장 심한 수탈을 당했던 군산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시 가장 번화가였던 해망동은 마치 시간이 한참 천천히 흐른것처럼

아직도 일본식 적산가옥이 곳곳에 서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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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는 적산가옥 뿐만 아니라,

히로쓰 가옥이나 동국사 같이 문화제로 보존되고 있는 곳도 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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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군산의 아픔이 가장 깊이 새겨져있는 해망굴은 일제시대에 뚫어진 군산 시내와 군산항을 잇는 100미터 남짓의 터널입니다.

당시 일본은 호남에서 제배된 쌀을 수탈하기 위해 군산항을 이용했는데,

해망굴은 군산 시내로 모아진 쌀을 군산항으로 빠르게 이송하기 위해 이용됐던 터널입니다.

또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지휘소로 사용되었었는데,

아직 벽에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군산을 한바퀴 돌고 여행의 종착지로 정해놓았던 전주로 갔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보니 출발지랑 종착지 빼고는 전부 일정이랑 다르게 다녔네요.

펑크도 나고.. 타려고 했던 배도 못타고..

이런저런 트러블이 많았던 여행이었지만,

덕분에 의미있는 곳을 다니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은게 참 많이 아쉬워서 다음에 더 여유롭게 다시한번 가보고싶습니다.

근현대사 여행이라는 컨셉으로

 제주 -> 부산,마산 -> 여수,순천 -> 광주 -> .....

이런식으로 다녀보는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거 자게에 올리는 자전거여행 후기였는데 쓰다보니 전혀 자전거여행 같지가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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