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당이야기가 유행인거 같아
제가 만난 역술인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굳이 '역술인' 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분 대학교 교수로 지내시다 은퇴하시고는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며 말 그대로 '수행'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잘 봐주시지는 않지만 사주는 정말이지....우리 엄마 보다 제 과거를 잘알아요...
여러가지 이야기중에 '귀신' 과 '우리는 무엇인가' 에 관한 이야기중 짧은 토막 하나 올립니다.
> 귀신은 정말 있는가?
-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구천을 헤매고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하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는 그런 귀신은 없다.
사람은 ‘기(에너지)’ 로 이루어진 것으로 죽고 나면 수많은 입자가 되어 흩어져 버린 뒤 다른 것 (생명체, 비생명체) 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입자’ 가 되어 버린다.
> 사람이 입자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죽으면 이 입자가 흩어져 다른 ‘것’ 을 구성하게 된다면,
귀신도 만들어 질 수 있는 것 아닌가?
- 지금 당신의 몸, 그리고 나의 몸은, 수천, 수만 명을 이루었던 입자들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 입자들 때문에 수많은 성격이 생긴다. 한 사람의 성격이 다양한 것도 이때문이다. 그런데 물리력을 가지는 몸뚱아리가 없는 것은
입자도 적고 ‘하나의 구성체’ 즉, ‘것’ 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귀신이라는 것은 없다는 거다.
(결과적으로 사고능력과 물리력을 가진 '귀신' 이란 없다는 이야기)
> 그럼 몸뚱아리를 가진 귀신은 없는가? (-_-ㅋ)
-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죽일놈들’ 이 바로 ‘몸뚱아리 있는’ 귀신이다.
온갖 나쁜 입자들만 받아 만들어진 몸뚱이가 정말 귀신이다.
> 귀신을 보았다는 수많은 목격담은 모두 거짓인가?
- 꼭 그렇지는 않다. 방금 말한 것 처럼 사람을 구성하는 ‘에너지’ 는 아주 작은 무수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입자들이 떠돌다 뭉치고 뭉개져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사람들의 상상력이 더해져 ‘귀신을 봤다’ 라고 할 수 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 그런것들은 물리력을 가지는 몸뚱아리도 없기 때문에 입자들이 단단하게 뭉쳐 있지 않다.
쉽게 풀어지고 또 쉽게 뭉쳐진다. 하지만 몸뚱이도 없고 그래서 물리력도 없으며 의식도 없다.
입자들이 뭉쳐져야 의식도 생기기 때문이다.
즉 ‘것’ 이 아니다. 그냥 신기한 현상, 그정도이다.
> 귀신으로부터 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도 그런 것인가?
- 사람의 에너지를 이루는 이 입자는 사람이 죽으면 흩어져 다른 것을 이루게 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도 일부가 흩어지고 모이고 한다.
그렇게 흩어지는 에너지들을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는 다른 사람에게 ‘물리적인 느낌’ 을 줄만큼 강하지 않다.
너무 작은 무수한 입자일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느낌’ 을 주는 정도이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의 현장이나 살인자가 살았던 곳에는 보통 사람이 가더라도 음산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다 살인자 혹은 살인사건의 피해자로부터 흘러나온 ‘에너지’ 즉 입자 때문이다.
그러니 쉽게 이야기 하자면 ‘귀신이 해를 끼친다’ 는 것 보다는, ‘사람의 음산한 에너지가 다른 사람의 에너지에 안좋은 영향을 끼친다’
라고 보는게 맞다.
> 사람에게 운명이나 사주팔자 같은 것들이 있는가?
- 있다면 있을 수도 있고 없다면 없을 수도 있다. 이건 주사위던지기와 마찬가지다. 쉽게 말해 100번을 던져도 ‘1’ 이라는 숫자가 나올 수 있다.
만일 실제로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은 그 주사위는 ‘1’ 이 나올 ‘운명’ 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확률의 문제일뿐, 주사위에겐 그런 ‘운명’ 같은건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어떤 점쟁이가 당신더러 ‘1년 뒤 결혼하고 2년뒤 자식을 낳고 3년 뒤 돈을 벌고 10년뒤 죽는다’ 라고 했다고 하자.
그렇게 될 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다. 주사위 던지기와 마찬가지다. 만일 점쟁이 말처럼 된다면 그것은 당신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의 운명이 아닌 것이다.
>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의 이야기 같은 (영화, 소설같이) , 미리 ‘씌여진’ 운명이란게 존재하는가?
- 세상의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 이다. 당신을 구성하는 작은 입자 하나부터 당신이 말하는 말한마디, 행동하나가 ‘인’ 을 지어내 ‘과’ 를 낳는다.
그 ‘인’ ‘과’ 를 잘 읽어낸다면 당신의 미래라는 것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슈퍼컴퓨터도 못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일기예보를 생각해봐라. 수많은 확률과 변수등을 종합하다보면 ‘예측’ 도 할 수 있고 어떤 ‘흐름’ 이란것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100% 완벽한 ‘예언’ 은 할 수 없다. 한다고 해도 대략적인 흐름에 관한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주사위로 다시 이야기 해보자면, 100번의 주사위를 던져 숫자 5가 나올 확률은 20% 가 안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만일 인과의 법칙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면 운명이란 것도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둑을 예로든 이야기도 있었는데 내가 바둑을 두지 않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략기억나는 것은, ‘운명을 읽는다는 것은 첫돌을 두고 바둑의 승패를 읽어내는 것’ 이라는 것)
>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좋은 복을 받게 되는가?
- 모든 것이 인과의 법칙에 따른다. 사람들이 세상을 보기에 ‘저렇게 나쁜놈도 잘먹고 잘산다’ 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인과의 법칙은 우주의 법칙이다. 결코 어긋나지 않고 결코 피해가지 않는다.
그 ‘잘먹고 잘산다’ 라는 사람도 언젠가는 그 ‘과’ 를 다 돌려 받는다.
그 사람 곁에서 잘먹고 잘산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옛날 어른들이 ‘제복은 제가 짓는다’ 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 어떤 일을 해야 좋은 결과를 받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 ‘착하게 살라’ 라는 말은 사실 어려운 말이다. 그렇게 살기도 어렵고 무엇이 착한지도 분명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불교에선 때마다 거북이를 사다가 방생을 한다. 대부분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죽는다. 이게 착한 일인가?
물론 거북이를 파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일 것이다. 또 강에다가 거북이를 풀어보자. 거북이가 강속의 물고기 씨를 말린다.
그렇다면 이건 좋은 일인가? 물론 거북이에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겐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라는 것을 잘 알고 또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살인자가 목사를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며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해서 목사가 그 죄를 용서해주고,
그래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살인자가 또 살인을 저지른다면 목사는 좋은 일을 한 것인가?
차라리 목사가 그 살인자를 죽이거나 죄책감에 자살하게 만들었다면 다른 피해자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목사가 저지른 죄는 어떻게 되는가?
이런 것처럼 좋은 일을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흔히 ‘양심’ 을 이야기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내 양심’ 도 가끔은 나를 속인다.
그러니 이 문제는 꾸준히 생각하면서 풀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것은 이것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공부해온 기본적인 것을 말하자면 이렇다.
1.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또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라.
2. 남이 못되길 원하지 마라.
3.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 욕심 부리지 마라.
4. 오래 살려고 애쓰지 마라.
5. 좋은 것 먹으려 애쓰지 마라.
6. 의식적으로라도 흔히 말하는 ‘좋은 일’ 을 해라. 좋은 기운이 생긴다.
7. 죽는 것을 두려워 마라.
> 다른 것은 대충 알겠는데 ‘죽는 것을 두려워 마라’ 라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죽는 것을 무서워하고 피하려고 하면 공포가 생긴다. 이러면 어쨌든 죽게 될 때 우리를 구성하는 ‘입자’ 가 제대로 흩어지지 못하고
나쁜 기운을 가진채 흩어진다. 우리는 이 세상의 다른 ‘것’ 들로부터 ‘입자’ 를 받아 지금의 ‘내’ 가 되었는데,
정작 이 입자를 돌려주어야 할때는 돌려주기를 싫어하게 되는 것은 어리석고 분명한 ‘죄’ 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것을 두려워 마라는 것이다.
우리는 죽든 살든 이 세상의 것들과 어울려 산다. 죽는다는 것은 ‘현재의 내 몸뚱아리’ 가 사라진다는 것 일뿐,
세상의 입장에선 전혀 더해지지도 덜어지지도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