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공개] |
‘스폰서’ 최영섭이 털어놓은 노무현 캠프 기이한 행적 “2002년 대선 8일 전 새벽 2~4시 전국 9곳에 부적 묻고 당선” |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mail protected] |
● “노무현 전 대통령 ‘1000배로 갚아주겠다’ 약속하고 2억 받아” ● 동석자 안종률씨 “노무현의 1000배 언급 나도 들어” ● “현찰·수표·계좌이체·항공료·추석선물…” ● “盧 돈 받은 뒤 ‘은혜 잊지 않겠다’ 감사전화” ● “‘노무현 지역특보’ 직함 값은 2000만원” ● “盧 측근, 1000억대 공사 청탁 받고 ‘잘 처리됐다’ 보고” ● “청와대 고위인사 이권개입 무마 의혹” ● 盧측 “1000배 약속 기억 안 난다. 돈 안 받았다. 부적엔 감사” ● “그들만의 참여정부…권력 위해 물불 안 가려” |
그는 자리를 잡자 담배부터 찾았다. 연기를 깊이 들이켰다 내뿜었다.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고 운을 뗐는데 한동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름을 부르자 너무 열이 올라서. 내가 화병에 걸렸다”고 했다. 이후에도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노무현 팬이자 스폰서였다’는 최영섭(崔永攝·49) 리알코홀딩스(주) 회장은 자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관계에 대해 6시간에 걸쳐 ‘신동아’와 인터뷰했다. 그가 운영하는 리알코홀딩스는 현재 몽골에서 3억t 규모의 유연탄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몽골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으며 내년부터 채굴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폭로를 자청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대한 분량의 재임 시절 기록물을 들고 갔다. 아무도 못 보게 한다.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본다. 노무현 정권은 몇 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노 정권이 공개하고 싶은 것만 공개되어선 안 된다. 나는 노무현 정권의 실체를 평가하는 데 참고될 만한, 노 정권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밝히고자 한다. 내가 말하는 사건들은 내가 현장에 직접 참여해 보고 듣고 행동한 것이다.” 최 회장이 폭로한 노무현 정권의 행적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00배로 갚아주겠다”고 약속해 2억원 상당의 지원이 이뤄졌다는 부분, 노 전 대통령 측이 역술에 의존해 직원들을 풀어 ‘노무현 부적’을 전국 각지에 묻었다는 부분 등은 지금껏 유사한 사례도 없거니와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규명’ 공론화 필요 그러나 최 회장의 증언 및 당사자들의 반론, 사건의 다른 관계인들의 증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의 폭로는 구체성, 신빙성, 공익성에 비춰 보도 가치가 있어 보였다. 이는 그가 폭로한 내용이 완벽하게 사실로 입증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언론 보도를 통한 ‘사실 규명’ 공론화의 필요성이 높다는 의미다. 최 회장은 2001년 8월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 언제, 어떤 경위로 노 전 대통령 측과 인연을 맺게 됐나. “나는 전남 완도 출신으로, 1980년대 전민협(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에 소속돼 민주화운동을 한 바 있다. 안기부 승용차 방화사건 때 연행돼 조사받기도 했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활동을 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차에 2001년 4월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L씨(노 전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수석비서관 역임)를 만나 자주 연락하게 됐다. 당시 나는 해공ENC(주)라는 연 매출 70억 규모의 토목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건설교통부로부터 신기술 인정을 받는 등 사업이 잘되는 편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 노 전 대통령도 만났나. “노 전 대통령은 2001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을 사직한 뒤 서울 여의도 금강빌딩에 자치경영연구원을 개설하는 등 대선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었다. L 전 수석의 권유로 나는 이 해 8월18일 부산 서면 롯데호텔 커피숍에서 노 전 대통령과 인사하게 됐다.” ▼ 노 전 대통령은 어떤 말을 했나. “그 자리에는 노 전 대통령, L 전 수석, 나, 안종률씨(후에 노무현 후보 특보 역임), 엄모씨 등 5명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9월6월 부산에서 대규모 후원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사실상의 대선 출정식이어서 노 전 대통령 측은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는 듯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내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말했나. “그렇다. 노 전 대통령은 ‘나는 대통령이 될 자신이 있다’면서 내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스닥 벤처 붐을 사례로 들더라. 그는 ‘벤처기업에 투자해 성공하면 투자자는 100배의 이익을 보기도 한다. 하물며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투자하는 건 어떻겠느냐. 내가 대통령이 되면 1000배로 갚아줄 것 아니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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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을 나로 여기고 만나라”
▼ 노 전 대통령의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노 전 대통령이 걸어온 길, 내세우는 비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지지율이 낮았다.(2001년 7월 당시 한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21.6%,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은 12.5%,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5.0%,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2.8%였다.) 대통령이 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봤다. 그러나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다면 본인이 한 약속을 이행할 것으로 기대했다.”
▼ 1000배로 갚겠다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건가.
“당연하지. 유력 대권주자가 직접 자금제공을 간곡히 요청하면서 한 말이니까 믿을 수밖에. 당시 지지율에서 이인제 후보에 크게 뒤져 있던 노 전 대통령 측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매우 컸다. 금전적 도움이 절실했다고 본다. 지지율이 낮고 어려울 때 도와주면 그 가치가 훨씬 큰 것 아닌가. 나는 ‘노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내재적 가치로 보아 그가 대선에서 역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 노 전 대통령은 다른 말은 없었나.
“노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L 전 수석과 나를 묶어줬다. 노 전 대통령은 ‘앞으로 나를 자주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L 전 수석을 가리키며 ‘L씨를 나로 여기고 모든 일은 L씨와 함께 처리해달라’고 했다. ‘L에게 주는 돈이 노무현에게 주는 돈’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최 회장은 “그 후 L 전 수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도합 2억 여 원어치의 금품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측에 준 금품 내역을 적어둔 메모지를 보면서 설명했다.
▼ 노 전 대통령에게 실제로 돈을 줬나.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지 5일 뒤인 2001년 8월23일 L 전 수석을 서울 여의도에서 봤다. L 전 수석은 ‘9월6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 후원회 겸 사실상의 대선 출정식을 개최하는데 정말 중요한 행사다. 행사 준비에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얼마나 필요한가’라고 물었더니 L 전 수석은 ‘1000만원만 달라’고 했다. 그가 적어주는 계좌로 1000만원을 송금했다.”
“영수증 받아본 적 없다”
▼ 후원금 영수증 처리를 했나.
“나는 L 전 수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제공하면서 영수증을 받아본 적이 없다. 당시에는 내가 준 돈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따지지 않았다. 불법자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그 후에는 요청이 없었나.
“9월1일쯤 L 전 수석이 ‘국회의원 등을 부산 행사장에 많이 데려가야 한다. 이들의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달라’고 해 수십여 명의 항공료로 약 300만원을 지급했다. 나는 중국 출장이 잡혀 있어 노 전 대통령의 부산 후원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회사 직원을 시켜 노 전 대통령 측 계좌에 1000만원을 넣어주었다.”
▼ L 전 수석에게 줬다는 돈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보나.
“그건 노 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확인했다. 9월6일 L 전 수석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다음날 오후 2시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니 미리 대기하고 있다 잘 받으라고 했다. 실제로 다음날 오후 2시 노 전 대통령은 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최 동지, 노무현입니다. 이번 후원회 때 도와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꼭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얼마 뒤 L 전 수석으로부터 또 다른 요구가 왔다.”
▼ 어떤 요구였나.
“L 전 수석은 추석연휴(9월30일~10월2일)를 앞두고 내게 ‘여러 곳에 추석선물을 돌려야 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고향 완도 특산품인 멸치, 김, 미역, 다시마 등이 담긴 10만원짜리 수산물 선물세트 100개(1000만원 상당)를 구매해 보내줬다. 9월16일쯤 회사 직원을 시켜 완도에서 노 전 대통령 사무실(여의도 자치경영연구원)로 택배로 부쳤다. 8월 하순부터 9월 중순까지 한 달 동안 노 전 대통령에게 3000만원 이상 들어간 셈이다.”
최 회장은 “2001년 10월 이후부터 2002년 대선 때까지 수시로 L 전 수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측에 현금과 수표를 제공했다”고 했다. 다음은 최 회장이 L 전 수석에게 줬다고 밝힌 내역이다.
“2001년 10월 700만원 제공. 11월 500만원 제공. 12월 500만원 제공. 2002년 1월 1000만원 제공. 2월 500만원 제공. 3월 500만원 제공. 7월 500만원 제공. 9월 500만원 제공. 11월 1000만원 제공. 11~12월 유세경비 명목으로 5800만원 제공. 11월29일 노무현 후보특보 선임 대가 2000만원 전달. ‘노무현 부적’ 처방 경비 3000만원 제공.”
▼ 메모 내용이 사실이라면 2002년 대선 당시 L 전 수석과는 꽤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히 자주 만났다. 대선이 가까워지자 나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 선대위의 후보 조직 보좌역에 임명됐다. 대선 투표일 직전 L 전 수석은 ‘그 동안 많은 도움을 주어 고맙다. 정권 출범 이후 나는 적어도 30%의 (권력) 지분을 행사할 텐데 그중 절반을 최 보좌역에게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날 새벽 엄청 추웠다”
▼ 그런데 L 전 수석에게 줬다는 금액 중 ‘노무현 후보특보 선임 대가 2000만원 전달’은 무슨 뜻인가.
“2002년 11월 당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성사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율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제쳐 그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사람들이 몰렸다. 11월29일쯤 나와 가깝게 지낸 정치권 인사 J씨가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달라. 노 후보 측에 2000만원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내게 요청을 해왔다. 나는 이 말을 L 전 수석에게 전했다. L 전 수석은 J씨를 지역 조직특보로 임명해주자고 했다. 다음날 나는 J씨로부터 10만원권 수표로 2000만원을 받아 L 전 수석에게 전달했다. J씨는 이 날짜로 ‘노무현 후보 충청지역 조직특보’로 임명됐다.”
▼ 노 전 대통령 측이 거액을 받고 직함을 만들어줬다는 건데…
“내가 그런 일의 메신저 역할을 한 점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싶다.”
▼ ‘노무현 부적’ 처방 경비 3000만원은 또 무엇인가.
“대선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노 전 대통령 측은 역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매우 초조해 했다. 이런 가운데 역술가인 김용태 한의사(서울 서초구 신통한의원 원장)가 ‘노무현 후보는 천기(天氣), 지기(地氣), 인기(人氣)를 모두 모으지 않고서는 유권자의 마음을 계속 붙잡아두기 어렵고 대통령이 되기도 어렵다’고 하여 2002년 12월8일 L 전 수석과 내가 김 원장을 만났다. L 전 수석은 김 원장의 설명을 들은 뒤 부적 처방에 따르겠다고 했다. 비용 3000만원은 내가 제공했다.”
▼ 부적 처방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역술가인 김 원장은 처방 비용이 형식적으로라도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서 나와야 효험이 생긴다고 했다. L 전 수석은 권양숙 여사의 핸드백 속에 돈을 넣었다가 가져오도록 했다. 12월10일 저녁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선대위 소속 간부 18명이 차출돼 2인 1조로 꽤 부피가 나가는 9개의 부적을 나눠 가졌다. 김 원장이 지시한 대로 이들은 12월11일 오전 2시부터 4시 사이에 전남 진도, 전북 고창, 부산 물금, 경남 합천, 대구 팔공산, 충북 청원, 충남 계룡산, 강원 원주, 경기 파주 등 전국 9곳으로 흩어져 지정한 장소에 부적을 묻었다.”
▼ 새벽을 택한 이유는?
“역술가가 그렇게 시간을 지정했기 때문에. 그날 새벽 엄청 추워서 당직자들이 꽤나 고생했다.”
▼ 당직자들이 한밤에 삽을 들고 산에 올라 무언가를 파묻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런 일까지 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들도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매립 작업을 수행하고 온 뒤 상당수는 ‘머리 위에 어떤 물체가 떠 있었다’ ‘큰 그림자가 앞에 서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적 처방은 한 차례 더 이뤄졌다.”
‘월령 24개월 미만 소로!’
▼ 이번엔 언제, 어디서였나.
“대선 투표일인 12월19일이었다. 전날 정몽준 후보가 후보단일화 파기 선언을 하자 노 전 대통령 측의 초조감은 극에 달했다. 상당수는 ‘떨어졌다’며 실망한 나머지 당사에 나오지도 않았다. 김 원장의 처방과 L 전 수석의 지휘로 이날 여의도 민주당 선대본부 노무현 후보 집무실에서 두 번째 부적 처방이 이뤄졌다. 현재 민주당 국회의원인 노 전 대통령의 측근 서갑원씨에게 단단히 일러두어 누구도 출입을 못하도록 했다.”
▼ 처방은 어떻게 진행됐나.
“김 원장은 ‘월령 24개월 미만 수소를 도축하여 그 피를 지정된 장소에 뿌리라’고 했는데 이는 투표일 오전 당직자들에 의해 즉각 이행 완료됐다. 이어 ‘노랑, 파랑, 보라 3가지 색의 옷감을 시중에서 구해 후보 집무실 책상에 묶어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보라색 옷감을 구하지 못해 당직자들이 흰 옷감을 보라색으로 염색해야 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지체돼 작업은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그 시각까지 0.8% 차이로 뒤지다 작업 완료 직후부터 젊은층의 투표 참여 등 예상치 못한 분위기 반전으로 역전하더니 격차를 더 벌여가기 시작했다. L 전 수석 등은 ‘정말 신기하다’며 좋아했다.”
‘신동아’는 최영섭 회장의 이 같은 주장을 L 전 수석에게 상세히 전한 뒤 L 전 수석으로부터 반론을 들었다. 이어 또 다른 사건 관계인들의 증언도 청취했다.
L 전 수석은 “2001년부터 최 회장을 여러 차례 만난 사실이 있고, 그가 노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다”고 인정했다.
“2001년 8월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L 전 수석, 안종률씨와 함께 최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1000배로 갚아주겠다’고 약속하며 자금 제공을 요청했다”는 최 회장의 주장에 대해 L 전 수석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만남에 동석했다는 안종률씨는 “노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안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 노 전 대통령 측과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2002년 대선 경선 전까지는 노무현 후보의 경선특보로 활동했다. 매주 수요일 부산 부전역 경제문제연구소 7층 사무실에서 열린 노 후보 측근 모임에 자주 참석했다. 경선 후엔 유세특보로 발령받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선거운동을 그만뒀다. 지금은 부산에서 가죽원단 제조업을 하고 있다.”
“추석 선물? 기억 없다”
▼ 2001년 8월18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L 전 수석, 최영섭 회장 등과 함께 만난 적 있나. 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1000배로 갚아주겠다’는 말을 했나.
“노 전 대통령이 ‘1000배로 갚아주겠다’면서 최 회장에게 자금 제공을 요청했다. 앞으로 자신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니 L 전 수석과 함께 일하라는 말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1000배 보답 약속을 믿고 2001년 9월, 10월, 11월, 12월, 2002년 1월, 2월, 3월, 7월, 9월, 11월, 12월에 걸쳐 현금, 수표, 송금, 추석선물, 특보 직함 대가, 부적 처방 등 2억여 원의 금품을 L 전 수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측에 제공하거나 전달했다”는 최 회장의 주장에 대해 L 전 수석은 “최 회장이 추석 선물을 제공했는지 여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일절 없다. J씨를 특보에 임명할 때도 돈 받은 적 없다. 부적 처방에 대해선 최 회장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종률씨는 “최 회장이 L 전 수석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측에 자금 지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L 전 수석은 “최 회장은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서 공식 직함이 없었다. 나와도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 직능국장을 역임한 김안수씨(2007년 3월 민주당에서 퇴직)는 “최 회장이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조직 보좌역에 공식 임명된 것은 사실이다. 그는 선대위 내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했으며 특히 L 전 수석과 친했다”고 주장했다.
부적 처방 건과 관련, 김안수씨는 “나는 다른 당직자들과 함께 윗선의 지시에 따라 2건의 부적 처방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충북 지역에 부적 묻는 일을 내가 맡았다. 일을 마친 뒤 편안함, 노무현 후보가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는 자신감, 감동까지 느꼈다”고 했다.
부적을 처방해준 김용태 신통한의원 원장(대전대 한의학과 졸업)은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L 전 수석이 ‘정권을 잡으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전면 개편할 것’, ‘대통령 한의학 주치의를 신설하여 나(김용태)를 임명해줄 것’ 등 두 가지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해 부적 처방을 해줬다. 부적의 효과는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이라는 결과로 입증됐다. 그러나 이후 노 전 대통령 측은 아무 말도 없었고 두 가지 약속을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에 덧붙여 “이명박 대통령은 크리스천이어서 내 말을 안 믿을 수도 있겠지만, 취임 후 ‘촛불 시위’에 시달려온 것은 그가 ‘달의 정기’를 안고 태어난 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대통령의 운을 융성하게 하는 처방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결시켜준 일이 잘돼서…”
2003~2004년 대검 중수부의 수사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어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아진 2002년 중순 이후 기업인들로부터 불법자금을 집중적으로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최영섭 회장은 “노 전 대통령 측은 후발주자로서 여론 지지율에서 크게 앞서 있던 이인제 후보를 추격해야 하는 입장인 2001년 중순부터 2002년 초순 민주당 경선 때까지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아왔으며, 이때부터 기업 측의 이권청탁을 받은 의혹이 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최 회장의 말이다.
“건설회사인 S사의 부회장은 2001년 친척 J씨, J씨의 지인인 나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측에 ‘정부가 발주한 경북지역 모 관급공사(1000억 원 대 규모)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넣었다. J씨는 내게 ‘노 전 대통령 측에 3억원을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이 공사는 당초 S사가 시공해왔으나 감사원에서 부정적인 감사 결과가 나와 공사를 계속 맡는 것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나는 S사의 메시지를 노 전 대통령의 측근 A씨에게 전했다. 그러자 A씨는 이 청탁 건을 또 다른 측근인 B씨에게 맡겼다. 2001년 7월 중순 서울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식당에서 S사 부회장, 나, 노 전 대통령 측근 B씨가 만났다. S사 부회장과 B씨는 모 대학 동문이었다. B씨는 부회장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지만 부회장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2시간여의 식사 자리에서 부회장은 ‘관급공사 건을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B씨는 ‘잘 알겠다. 연락 드리겠다’고 답했다.
같은 해 8월 말 B씨가 나를 만나자고 했다. B씨는 나를 보자마자 ‘선배님이 연결시켜준 S사의 일이 잘 처리됐다’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소개시켜준 대가로 보였다. 노 전 대통령 측을 지원하겠다는 내가 오히려 그들에게서 돈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사정이 어렵다는 점 잘 알고 있다. 사무실 경비로 쓰라’며 받지 않았다. 이후 S사는 그 공사를 계속 맡았다.”
이에 대해 B씨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B씨는 측근을 통해 “S사 부회장과는 만난 적도 없고 돈을 받은 적도 없다. 부회장이 대학 동문인 점은 알고 있다”고 했다. S사 부회장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S사 부회장 측은 “부회장님은 B씨가 학교 후배라서 만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2006년 중순 잘 알고 지내던 또다른 S사 사주의 친척 L씨가 사석에서 불평을 했다. ‘S사가 일괄매각하려는 상가 분양권(1000억원대)에 대해 청와대 고위 인사가 C사에 매각해달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C사가 분양권을 갖게 되면 1000억원대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경찰청 특수수사대 B 당시 수사관에게 제보했다.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내사에 나서 C사로 상가분양권이 넘어가는 것을 차단한 것으로 안다. 이 직후인 2006년 9월 청와대 하명을 받는 특수수사대가 나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B 수사관은 “최 회장의 제보가 구체적이고 수사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청와대 고위 인사, 1000억원대 S사 상가분양 개입설’ 보고서를 올린 일이 있다. 그 후 민정수석실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B 수사관은 “제보자가 최영섭이라는 점도 청와대에 함께 보고했다”고 했다.
최 회장은 “나는 사기피해를 당했다는 고소인·고발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기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수개월간 구속돼 있다가 집행유예로 나왔다. 상가 분양권 제보를 계기로, 노 정권 측은 ‘최영섭은 정권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어 계속 두면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판결문과 수사 내용에 따르면 그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요건 미비로 수차례 기각됐다가 받아들여졌고, 혐의의 주 쟁점은 최 회장은 수천만원을 빌렸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찰 수사결과는 사기로 편취했다는 것인데 이 돈이 변제되어 피해자로 되어 있는 사람과 합의가 된 상태라 집행유예 판결이 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노무현 측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최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대한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했다. “공익적 소명감도 갖고 있다. 노사모로부터 어떤 비난이 오더라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을 향한 폭로는 이런 복합적인 감정에서 하게 된 것으로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면 1000배로 갚아주겠다’고 해 나는 그 약속을 믿고 2억여 원 상당을 제공했다. 지금 와서 보면 노 전 대통령 측은 권력 쟁취를 위해선 물불 가리지 않겠다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측이 먼저 요구한 일이기는 하지만 국민 정서에 반하는 그런 식으로 그를 도운 일이 후회된다. 정권 출범 이후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에게 권력이 쏠렸다. 그들만의 참여정부였다. 사회를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고, 내 편을 다시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갔다. 처음엔 같은 편이어도 핵심 이너서클에 들지 못하면 멀어졌다. 그들이 어려울 때 내가 물심양면으로 합법 불법 안 가리고 도와주었으면 약속대로 1000배로 갚아주지는 못할망정 그냥 살도록 내버려둬야 할 것 아닌가. 청와대 하명으로 사정기관이 갖은 노력을 기울여 나를 구속시키는 것에서 권력의 집요함과 무서움을 실감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나는 필요할 때 이용하고 나서 버리는 토사구팽의 대상이 됐다고 본다. 내 처지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은 얼마나 깨끗하게 살아왔는지, 원칙과 소신의 정치를 해왔는지, 부패정치 개혁을 실천해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우리의 입장은 L 전 수석이 답변한 내용으로 대신하겠다”고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