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다음카페(하드론)님 -
무당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박형사가 나를 돌아 보았다.
갑자기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 나는 누구에게 시선을 맞춰야 할 지 고민했다.
무당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나를 경계하고 있는 듯 보였다.
"형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박형사의 질문에 무당은 잠시 말을 아낀 후 입을 열었다.
"저 친구에게서 너무 강한 기운이 느껴져. 혼령이 한 둘이 아냐...."
박형사는 연신 무당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표정 변화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형님, 불러낼 수 있습니까?"
박형사는 내 의사도 묻지 않은 채 무당의 허락을 받는데만 급급했다.
무당은 여전히 나에게서 매서운 시선을 흩뜨리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이봐, 젊은 친구. 이리 와 앉게."
나는 잠시 박형사와 무당의 표정을 살핀 후 박형사 옆에 무릎을 꿇었다.
"둘 다 편하게 앉아. 내가 무슨 니들 부모냐?"
우리는 자세를 편안히 갖추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 손을 잡게나 젊은 친구."
그는 두 손을 내 앞으로 나의 응답을 기다렸다.
나는 다시 한번 박형사의 표정을 살핀 후 아무 말없이 그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내 손을 잡은 무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알 수없는 주문같은 말을 작은 숨소리로 웅얼거리지 시작했다.
몇 십초가 지났을까?
무당의 미간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웅얼거림의 소리도 서서히 커지는 듯 했다.
그의 미세한 손 떨림이 느껴졌다.
그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져 사나운 맹수가 포효하는 것처럼 미간과 콧등에 수많은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흡혈귀처럼 하얀 이를 조금씩 드러내며 입을 벌리기 시작했고, 그의 웅얼거림은 점점 '아'발음만 들리는 기괴한 음성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
"탕!!!!!!"
그가 갑자기 탁자에 손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조금 전의 기괴한 소리를 내던 흉측한 표정보다 더 섬뜩해 보였다.
"안돼....."
그의 엉뚱한 말에 박형사가 물었다.
"뭐..뭐가요? 불러낼 수 없다는 말입니까?"
무당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불러내면...우린 모두 죽어..."
지금 이 순간 내 생각도 그렇다.
그 놈이 다시 나타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형님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우린 그 놈을 불러내서 그 놈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니 들이 찾아....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혼령이 아냐...."
"뭘 찾으란 말입니까?"
"그 놈 시체를 찾아!!
찾아서 불태우든가, 천도제를 지내주든가 하란 말이야!!"
나는 이 방에 들어와서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 같다.
난 그에게 물었다.
"그 놈...아니 귀신이 보일 때마다 안개가 껴요.
그냥 맑은 상태가 아니고..."
"귀신은 사람의 기를 빼앗아가.
귀신의 존재가 느껴지면 사람은 여러가지 현상으로 반응을 하지.
어떤 이는 소름끼치는 한기를 느끼기도 하고, 어떤 이는 피를 흘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기절을 하기도 하지....
그런데 자네는 특이한 경우이지만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애..."
"이대로 있으면 전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되긴? 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화를 당하거나 아니면 니가 죽든가 하겠지..."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운 말임에도 무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뱉았다.
무당은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니 몰골을 보니, 요 근래 온갖 험한 꼴을 많이 당한 것 같군.
살고 싶으면 어서 그 놈을 찾아."
"도와주시면 안되나요? 아저씨도 능력이 있잖아요."
"법사라고 불러. 무슨 생뚱맞게 아저씨야? 나도 체면이 있는데..."
"무슨 얼어죽을 법사고, 체면이예요? 귀신 하나 쫓아내지도 못하면서...."
"이런 망할 자식을 봤나!!"
무당은 입을 삐죽거리며 경멸하는 듯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난 뭐 대단하신 분인 줄 알고 왔는데, 스포츠 신문에나 광고내는 무당하고 같네요."
"뭐? 이 자식아? 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그는 나에게 덤빌 듯한 자세를 취하고는 욕설을 내뱉았다.
지금의 그의 모습은 무당이라기 보다는 동네 불량배에 가까웠다.
"야 임마!! 너 지금 뭐하는거야!!"
박형사가 호통을 쳤다.
그의 호통에 우리는 잠시 냉전을 유지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이 친구 부탁 좀 들어주시죠?"
"당장 꺼져!!"
무당은 자세를 옆으로 돌린 채 박형사와 시선도 맞추지 않았다.
"젊은 놈이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이러다 이 놈 죽을 지도 모릅니다.
목숨 하나 살려주신다 생각하시고 좀 도와주세요."
박형사는 나보다 더 간절한 입장이 된 것처럼 무당에게 애원했다.
"당장 꺼지라고 했다. 더 이상 말 걸지마!!"
무당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에 나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기 위해 박형사에게 말을 던졌다.
"형사님, 그냥 가요. 뭐 하나 얻어낼 것도 없는데...."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집 밖으로 나오자 박형사의 동료인 강형사가 연신 담배질을 하며, 우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씩씩거리며 나오는 것을 본 강형사는 무슨 일이냐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도 없이 그냥 차에 올라탔다.
무당을 달래고 있는지 아니면 무슨 할 말이 더 있는건지 박형사는 5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박형사가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잡시 쳐다보더니 아무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죄송해요. 형사님."
십여분 동안 아무 말없이 달리는 차량 안에서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 박형사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에게 혼쭐이라도 날 것 같았지만 박형사는 업무적인 얘기로 답했다.
"그 놈을 어떻게 찾을까?"
"......."
"조폭놈들이 그 놈한테 몰살당한 걸로 봐서 무슨 원한이 있는게 분명해.
그 놈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어.
그리고 그 놈 시체는 그 스탠드바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도 몰라."
"우리가 거기에 가보면 되잖아요."
"그 놈들의 비밀 창고 같은 게 하나 있는데 도대체 접근할 수가 없단 말이야.
증거가 없어서 위에서도 수색영장을 발부해주지도 않고...."
"이번 살인 사건으로 물고 들어가면 되잖아요. 그러면 영장 나올 것 같은데요."
"만일 그 놈들이 마약사건 조사를 눈치 채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한 가지 희망도 사라지는거야.
살인사건 때문에 형사들이 들락거리는 데 그 놈들이 뭔가 대책을 세워놨겠지."
박형사는 팔짱을 끼고 대책을 세우는데 머리를 쓰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 놈의 시체에 다가간다면 무슨 반응이 나오겠죠?"
나의 말에 박형사는 팔짱을 풀고 나를 돌아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만일 저에게 그 놈이 붙어다닌다면.....제가 그 놈의 몸뚱아리에 가까워지면 무슨 반응을 할 겁니다.
그러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거구요."
"너..설마.."
"네. 저를 그 곳에 들여보내 주세요. 형사님들은 바람잡이나 해 주시구요."
"너 그 놈들한테 잡히면 죽을 수도 있어."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똑같죠. 기왕 죽을거면 이유나 알고 죽어야죠."
나의 말에 박형사는 한참 동안 내 표정을 살폈다.
박형사는 뒤에 앉아있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차를 몰고 있는 강형사에게 물었다.
"강형사..너 저번에 입수한 그 스탠드바 건축도면 가지고 있지?"
경찰서에 도착한 나는 박형사와 함께 점심식사를 마친 후 그 스탠드바의 건축도면을 익혀갔다.
두 세시간 동안 도면을 익히면서 작전을 세워갔다.
충분히 숙지가 되었다고 판단이 서자 우리는 곧바로 차를 몰아 그 스탠드바로 향했다.
그 스탠드바는 화려한 입구가 인상적이었다.
영업시간이 아님에도 형형색색의 네온등이 정문을 장식하고 있었고, 화려한 드리워진 커튼 뒤로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를 먼저 맞은 것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검은색 양복의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깍두기 머리는 아니고 말끔하게 머리를 뒤로 빗어 넘긴 호남형의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박형사와 강형사를 알아보더니 이내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이 친구는 누굽니까?"
경계하는 듯 한 그들의 눈빛에서는 무서운 살기가 느껴졌다.
이에 박형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했다.
"여기 살인사건 목격자야."
무서운 눈빛을 가진 그 청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한번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놈이 우리 형님한테 전화했던 그 놈이오?"
그의 말에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박형사는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그를 달랬다.
"현장조사만 하고 갈거니까 너무 그러지마."
"잠깐 기다려요."
그 청년은 우리를 제지하더니 우리에게서 잠시 떨어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말투로 보아 그보다 윗사람인 것 같았다.
통화가 끝나자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20분 안에 끝내쇼. 우리도 할 일이 많으니까."
우리는 내부로 진입했다.
"아니..형사님 왜 저 양아치들한테 쩔쩔 매요? 쪽팔리게?"
"이 지역의 돈많은 유지가 관리하는 곳 중의 하나다. 이곳 저곳 손을 안 뻗치는 곳이 없지."
"뭐예요? 그렇다고 해도 명색이 경찰이 저런 양아치들한테 무시당해도 되는 거예요?"
"더 이상 아무말 마라. 내 속도 이미 까맣게 타들어갔으니까"
긴 복도 입구에 진입하자 박형사가 나에게 뭔가를 건넸다.
접혀진 종이였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부적같았다.
"이게 뭐예요?"
"형님이 주신거야. 모진 귀신이 나타나도 니가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거래."
오전의 일을 생각하면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성의라고 생각하고 나는 말없이 그 부적을 받아들었다.
긴 복도를 지나자 큰 홀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조명, 벽지, 바닥재, 진열장...어느 것 하나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실내는 아름답고 화려했다.
우리는 그 홀을 가로질러 반대편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러자 몇 개의 갈라진 복도가 눈에 들어왔고, 각 복도마다 조그만 방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맨 오른쪽 복도 끝에 있는 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박형사가 말을 했다.
"저기야...그 놈들이 죽은 곳..."
그곳을 보자 나는 가슴이 저미어왔고, 현기증이 몰려왔다.
저 곳이 그 피의 살육이 벌어진 곳이라니.........
나의 휘청거림을 느꼈는지 박형사가 나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씩 그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익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테라스처럼 꾸며진 그 살육의 장소였다.
이미 현장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는 상태라 시각적인 공포는 주지 못했지만, 지워졌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오금이 저리는 듯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시간 없어. 시작해!"
박형사의 명령에 강형사는 의자와 탁자를 쌓아올리고, 그 곳에 올라가 준비해온 공구로 우리 키의 1.5배 정도 위에 설치되어 있는 환풍구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좁은 환풍구 통로가 열리자 나는 쌓여진 탁자와 의자를 타고 올라갔다.
순간 박형사가 나를 잡으며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아와야 한다."
나는 묵언의 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그 통로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 통로는 무릎을 꿇고 기는 것도 모자라 몸을 완전히 눕히고 포복으로 기어야 할 정도로 좁았다.
나는 매직펜 크기의 손전등을 입에 물고 최대한 소리를 감추고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다.
실내의 불빛으로부터 멀어지자 통로안은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되었다.
유일한 빛이라고는 입에 물고 있는 손전등에서 나오는 가느다란 빛줄기 뿐이었다.
매케한 먼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움직일 때마다 먼지가 일어나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었다.
기침을 나올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잠시 코를 움켜쥐었다.
타이어에서 바람이 새 듯한 숨이 뿜어져나왔다.
진정이 되자 나는 다시 몸을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손전등의 빛이 닿지 않는 저 어둠의 통로에서 정체모를 소리가 들려왔다.
"쓰으윽...쓰으윽...."
작지만 그 괴상한 소리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쓰으윽...쓰으윽...."
그 소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나는 그 소리의 정체가 지금 내가 배를 밀고 전진하고 있는 소리와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앞의 어두운 통로 속에서 누군가가 기어오고 있는 것이다.
내 입의 떨림에 맞추어 손전등의 가느다란 빛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쓰으윽...쓰으윽...."
2미터 앞까지 뭔가가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 입에 물려 있는 손전등의 빛에 비추어졌다.
새하얀 얼굴에 늘어진 검은 머리...그리고 그 하얀 얼굴에 수많은 세로선을 긋고 있는 핏줄기.....
귀밑까지 찢어지도록 입을 벌리고 활쫙 웃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입속의 하얀 치아 틈 사이로 채워져 있는 핏물....
어디서 본 여자다.
그 병원에서 봤던 간호사였다.
그제서야 나는 알아챘다.
내 앞길을 뿌옇게 만든 것은 먼지와 섞인 안개였다는 것을....
난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에 물려진 손전등이 그것을 막았다.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나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은 열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에게 거친 말을 내뱉았다.
'후...신발...마중 나오지 않아도 되거든?'
그녀가 코 앞까지 다가오자 무서운 현기증이 몰려왔다.
나는 좁은 통로 속에서 간신히 팔을 돌려 미친 듯이 그 부적을 찾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