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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안개9
게시물ID : panic_549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심해로의여행
추천 : 5
조회수 : 6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06 14:57:31
출처 (다음카페-하드론님)
그 낯선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넌 죽었어! 내 눈으로 봤다구!!"

박형사의 말에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죽은 지 어떻게 알았죠?"

그제서야 박형사는 눈치를 챘는지 긴 한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신발!! 핸드폰만 니 거였군."

박형사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그럼 죽은 놈은 누구지?"

"내 조직원이요."

"니가 죽인거야?"

"아뇨. 누구도 죽이지 않았어요. 그냥 그 놈이 죽은 겁니다."

"무슨 말이야?"

"나연이와 그 놈한테 얼마동안 시달리면서 난 정말로 죽을 것 같았소.
며칠 동안 집을 비워두었죠. 그런데 동생처럼 아끼는 놈이 하나 있는데 그 놈이 집을 이사를 해야 하는데
날짜가 안 맞아 들어 갈 집의 이삿짐이 안 빠진거요. 그래서 내 집에 3일 정도만 머물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거요.
처음엔 귀신 나타난다고 경고도 했소. 그런데 그 걸 누가 믿겠소?
그 녀석이 그 집엘 들어가서 3일 째 되는 날 투신한거요.
우리들 폰은 모두 사용 용도가 다른 대포폰이요.
내가 가지고 있는 폰만 5개요.
형사님한테 전화할 때 쓴 건 집에 놓고 나왔소."

"그럼 내가 사건 조사하러 빠에 들락거렸을 때 마두가 누군지 너의 조직원들이 알았을텐데?"

"형사님은 지금 마두라는 이름이 우리 세계에서 쓰이는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는거요?
조직에서 사용되는 내 이름은 '백사'요.
'백사'라는 이름으로 형사님한테 전화한 것 들키면 난 바로 한강이나 서해 앞바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될 거요.
안 그래도 당신한테 장부를 넘기기로 한 날, 난 장부를 손에 쥐기 위해 빠로 들어갔는데
그날 따라 보안이 철저한거요.
여러가지 방법으로 창고 장부를 얻어내려고 했는데 실패했소.
밤마다 귀신놀이를 하고 빠에 드나드는 내 모습이 어떠했겠소?
꼭 그 장부 때문이 아니어도 나의 행동과 몰골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소.
아니나 다를까 주변의 조직원들이 조금씩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겁니다.
곧 그들의 엄청난 정보력이 작동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소.
도망을 칠까, 아니면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아니면 발뺌을 할까 여러가지 방법을 구상하던 와중에
마침 그 동생 놈이 죽은거요.
그리고 경찰들은 그 핸드폰의 통화내역을 보고 그 동생놈을 마두라고 여긴거요.
마두란 실존 인물도 아니니 우리 조직원들은 그 동생놈이 이름까지 바꿔가며 자신들을 배신했다고 여긴 겁니다."

"염병할...완전히 삽질했군.."

박형사는 자신의 머리를 치며 자책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럼 지금 그 장부가 있나?"

박형사의 물음에 백사라는 남자는 갑자기 박형사에게 휴대폰을 던져 주었다.

"회장이라고 불리는 두목의 개인 사무실 금고에 있소.
오늘 밤 그들이 약물, 시체, 장부....모든 증거를 옮길 예정이오.
오늘 밤이 지나면 영원히 그들을 잡을 수 없소.
지금 경찰 병력을 출동시키시오."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박형사는 조용히 버튼을 누르고 통화를 시도했다.

"나 박형사야...내 걱정 안해도 돼...무사해..
지금 그 스탠드바로 형기대, 타격대 모조리 쏟아부어!!
업소 안쪽에 창고까지 모조리 압수수색해!!
영장은 나중에 발부받아!!
내가 책임질테니까 지금 출동해!!"

통화를 마친 박형사는 백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가는 건가?"

"그 놈이 있는 곳...."

"뭐?"

박형사는 나를 한 번 뒤돌아보더니 표정을 살폈다.

"잠깐 그 전에 먼저 뒤에 있는 강형사부터 병원으로 옮겨줘."

"좋소이다. 그 정도야 뭐...."

가까운 병원에 들린 우리는 응급실로 강형사를 옮기고 백사의 차량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장부에는 뭐가 있지?"

박형사의 질문에 백사는 잠시 쓴 웃음을 지었다.

"몇 년전에 우리 클럽에 김나연이란 갓 스물 넘은 미모의 어린 친구가 들어왔소.
그냥 빠에서 얼굴로 승부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술도 따라주며 손님을 접대하던 여자였소.
처음엔 몰랐는데 생각보다 말도 잘하고, 옷도 잘 차려입더이다.
1년 정도 지나자 그녀의 요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소.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놨지.
그녀와 말 한마디를 나누기 위해 밤새 부산에서 달려오는 손님도 있었고, 사업체 출장근무를 포기하고
날이 새도록 그녀와 얘기하는 손님도 있었소. 심지어 일본에서 오는 손님도 있었소.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만 있다면, 수 백만원의 술값은 문제가 아니었소.
우리 조직은 엄청난 그녀의 힘을 느끼자 손님들을 회원제로 바꾸었소.
최고급 손님들만 받은거요. 그것도 그녀를 만나는 시간을 정해서....
그런데 거기서부터가 잘못이었소."

백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그 다음에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큰 병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라는 친구가 우리에게 요구를 하나 하는거요.
그녀와 잠자리를 주선하면 좋은 거래를 하나 하겠다고 합디다.
그의 말은 조직 입장에서는 실로 군침이 도는 것이었소."

박형사가 잠시 그의 말에 끼어들었다.

"병원 마약이었군."

"그렇소. 병원으로 유입되는 마약 진통제들을 유통시켜 주겠다는 것이오.
그것도 공짜로 말이오.
우리는 흔쾌히 승락했소.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거요. 나연이가 그 원장과 잠자리를 거부한거죠.
우리 조직은 포기할 수 없었소.
상품가치가 떨어질까봐 나연이에게 손만 대지 않았지 온갖 협박을 다 동원했소.
심지어 가족들까지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소.
그래도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소.
그리고 며칠 후 그녀가 갑자기 결근을 한거요.
도망을 친거죠. 우리 조직의 정보력은 이미 경찰 내부까지 닿아 있어서 찾는 건 시간문제였소.
이틀만에 나연이가 잡혀왔소.
그런데 잡아오는 와중에 나연이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나연이의 아버지가 조직원들의 손에 당했소.
고의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죽게 된겁니다."

"신발 놈들...깡패새끼들은 사회의 암덩어리라니까....다 싸그리 총살시켜버려야 해."

박형사의 분노섞인 탄식이 쏟아졌다.

"후후....그 세계 생리가 원래 그런거요.
하여튼 나연이는 반실성 상태로 돌아왔죠.
일을 시켜야 하는데 도대체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 때 그 원장놈이 약을 하나 추천해 줍디다.
펜타닐(fentanyl)....
모르핀보다 100배나 센 진통제라고 하는데 효과는 끝내줍디다.
나연이가 손님들을 접대하기 시작한거요.
원장놈이 나연이와 하룻밤을 보냈다는 소문이 나돌자 발정난 개들처럼 사방에서 고위층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몰려들기 시작했소.
우리 조직은 바보가 아니오."

"혹시 모를 내일을 위해 장부에 그들을 기록해 두었겠군."

"그렇소 사육하듯이 길러지는 나연이가 언제 한 방에 훅 갈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힘있는 자들을 옭아맬 족쇄를 만든거요.
그들이 우리를 배신할 수 없도록 말이오.
특히 그 원장놈의 경우는 나연이과 함께 밤을 보낼 때 우리가 비디오까지 촬영해 두었소.
그 장부에 기록된 명부를 보면 당신도 깜짝 놀랄거요."

"경찰 고위층도 있나?"

"내가 그나마 경찰에게 일말의 믿음을 갖는 것은 당신네 소속은 거기에 없었다는거요."

나는 순간 궁금한 점이 하나 떠올랐다.

"그런데 창고의 여자 시체는 뭐예요?"

"간호사?"

"그래요. 간호사...."

"원장하고 내연의 관계에 있던 여자야. 원장이 나연이에게 맛들려 있는데 그 여자가 눈에 들어오겠냐?
게다가 그 원장 놈이 병원 장부 조작하다가 그 여자한테 들킨거야.
그 여자는 그걸로 원장을 협박하면서 다시 만나주길 바랬고..
그 때 원장이 하고 싶었던 건 뭐였겠냐? 뻔하지 뭐....
결국 원장이 부탁해서 조직원들이 처리한거야..."

"신발새끼들...오늘 내로 니 들 모두 평생 콩밥이나 먹을 준비나 해라.."

박형사는 마치 총이라도 있으면 쏴죽일 기세로 그를 몰아 붙였다.

"너무 흥분하지 마쇼. 형사나리...나는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강아지들...."

어느새 차량은 큰 대로에 진입했다.
백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 상류층 모임을 '사일런트 엔젤'이라고 불렀소."

뒷좌석에 앉아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귀가 쫑긋 서는 기분이었다.

"사일런트 엔젤이 그거였군요. 그 말 한마디에 난 죽을 고비를 몇 번을 겪었고..."

"시간대를 정해 그녀를 만나니 나연이를 상대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서로 모르는거요.
물론 그들도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오. 오로지 나연이를 만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우리는 나연이의 상품가치를 길게 끌어야 했소.
그래서 약도 펜타닐에서 비교적 약한 염산페치딘으로 바꾸었소.
그런데 그게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거요.
나연이가 현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거요.
나연이를 감시하면서 보살핀 사람은 나였소."

그는 갑자기 지난 기억에 대한 아픔이 밀려오는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 처음에 업소에 들어온 날부터 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소.
그녀가 출퇴근을 할 때는 매일 같이 차로 동행했소.
조직에서 시킨 일이었지만 나에게 일이 아니었소. 그냥 행복 그 자체였소.
그녀와 같이 있는 1초, 1초가 나에게 너무나도 즐겁고 짜릿한 시간이었소.
한 번은 내 생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차 안에서 작은 초콜렛 케익 상자를 하나 건넵디다.
살아오면서 온갖 험하고 거친 일을 모두 겪으면서, 오로지 독기와 증오, 투쟁만으로 얼룩진 나에게 나연이는 하나의 커다란 오아시스였소.
그 순간 나연이를 품고 싶었지만 그것은 곧 우리 서로에게 종말을 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소.
나는 우리 조직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오.
오랜 시간이 흘러가도 난 나연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버릴 수가 없었소.
나연이가 그렇게 망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의 심정이 어떠했겠소?"

어느덧 그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 돌아온 나연이가 어느 날 저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합디다.
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소.
조금만 견뎌보자고 그녀를 위로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소.
그런데 얼마 후 난 내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된거요.
사일런트 엔젤 중에 시의원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 놈 보좌관이란 녀석이 항상 따라다녔소.
아주 핸섬하고, 매너있고 굉장히 유식한 놈이었소. 게다가 참 착해 보였소.
이름이 박태수란 놈이었는데 그 놈도 나연이에게 푹 빠져 버린거요.
의원놈이 그녀와 술자리를 하는 동안 보통은 밖에서 기다렸지만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에 동석을 하는거요.
나연이가 의원놈을 설득해서 그런 거라오.
나는 육감적으로 알아챘소. 그녀도 그 보좌관 놈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나를 떠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소..."

백사는 잠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저 깊은 곳으로 사라졌던 독기와 증오, 분노가 그 놈을 보는 순간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소.
안개가 자욱하던 어느 날 밤 나는 ㅇㅇ대로로 그를 유인했소."

"죽였군."

박형사가 끼어들어 그가 할 말을 대신 해주었다.
백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음 말을 이었다.

"그 놈을 죽이고 나니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고, 이젠 자신감까지 붙었소.
모든 것을 터뜨리고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작정한거요.
그래서 당신한테 연락을 한거요."

"너를 죽이겠다고 나타난다는 놈이 박태수 그 놈이야?"

"그렇소"

백사는 힘없이 대답을 했다.

"박태수.....결국 그 사람이었군요...."

나는 진실에 맞닥뜨렸지만 지금 이 순간 어떠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지 정할 수가 없었다.
잠시 몇 초간의 침묵이 차량 안을 맴돌았다.

"김나연은 어떻게 죽은거야?"

"자살했소...."

"뭐? 자살? 신발 거짓말 아냐?"

"거짓말 아니오. 정말 자살까지 할 줄은 몰랐소.
그 보좌관 놈이 안보이자 우리가 처리했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스스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은거요.
그 만큼 그 놈을 사랑했으니까 그랬겠죠....."

"그래서 사체를 정화조에 버린거야?"

백사는 박형사의 물음에 대답을 거부한 채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나연이가 우리 업소에서 죽은 걸 엔젤들이나 경찰들이 알기라도 하는 날에는 끝장이었소.
우리는 나연이의 일가 친척에게 다가가 얼마의 돈을 쥐어주고 실종신고를 하라고 했소.
우리 입장에서는 나연이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되니까 경찰들에겐 큰 의심을 사지 않을거라 생각했소.
그 친척들이 우리의 행동을 의심할 만도 했는데, 돈 앞에는 꼼짝 못하는거요.
우리도 쓰레기였지만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소.
나연이와 떨어져 사는 아버지를 그 누구 하나 돌봐 주지도 않았으면서, 우리가 돈을 건네자 나연이의 실종을 자기 일처럼 슬퍼하는거요.
그런데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거요.."

"뭐가?"

백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멍하니 전방을 주시했다.
자신이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걸까?

"아저씨...정신차려요!!"

나는 그의 정신을 깨우려 소리쳤다.
그제서야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분명히 산속 깊은 곳에 묻었소.
그런데 나연이가 정화조에서 발견된거요.
우리가 나연이를 묻은 산과 정화조는 가까이 있지만 이건 누군가가 옮기진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오."

밤 10시가 훨씬 넘었음에도 대로에는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이 넘쳐났다.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
익숙한 이 길.....

"이봐요. 아저씨....지금 여기는?"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더니 이해할 수 없는 미소를 보냈다.

"항상 진실은 가까운 곳에 있는거야...."

이에 박형사가 그의 말을 제지했다.

"야! 너 무슨 말 하는거야?"

그는 아무 대꾸없이 파손된 가드레일 옆에 차량을 급정지시켰다.
내가 사고를 낸 지점이었다.
그는 차에서 천천히 내려 그 정화조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둘러 따라 내린 우리는 무표정한 그의 옆모습을 살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입을 열었다.

"임무라니?"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을 아시오? 이젠 맘 편히 떠날 수 있겠네..."

뜬금없는 그의 말에 박형사는 게속 물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거야?"

그제서야 그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무서운 눈빛으로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화조가 너무 얕다고 생각해 본 적 없소?"

순식간이었다.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그가 갑자기 대로로 뛰어들었고, 고막을 찢는 듯한 타이어의 스크래치음이 들렸다.
큰 트럭에 치어 공중으로 떠오르는 그가 보였다.
10미터 이상을 날아간 그의 몸이 힘을 잃은 꼭두각시 인형처럼 나동그라졌다.
트럭에 뒤이어 여러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섰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들었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박형사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갔다.
서서히 사람들 틈 사이로 그가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 이유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다.
사고의 처참함이 아니었다.
처참함으로 따진다면 핏물로 머리를 감은 듯한 나와 박형사의 얼굴이 더 구역질을 유발할 것이다.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 하나는 엿가락처럼 휘어 머리까지 닿아있는 지금의 그의 자세도 아니었다.
정작 우리의 눈을 의심케 만든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악스런 그의 모습이었다.

수개월을 굶은 사람처럼 볼은 함몰되어 있었고, 몸의 수분을 쫘악 빨아낸 듯 몸은 말라 있었다.
짙은 다크써클로 둘러싸인 눈알은 그 크기를 보여주기라도 하는냥 얇은 가죽이 된 눈꺼풀로 간신히 덮여 있었으며,.
조금 전까지 혈기왕성했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저승사자 같은 청백색의 얼굴빛은 그가 조금 전에 죽은 사람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묘한 미소를 띠며, 죽어있는 그의 모습 앞에서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박형사는 숨소리같은 속삭임으로 넋두리를 했다.

"신발...이젠 형사질도 못해 먹겠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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