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북한 김정일은 획기적 경제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야심 찬 전략의 일환으로 「신의주 특구」신설을 발표하고 특구장관으로 어우야(歐亞)그룹의 양빈(楊斌)을 임명하였으나, 중국은 곧바로 양빈을 구속ㆍ구금시켜 버림으로써 김정일의 전략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을 중국의 속국(屬國)으로 만들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속셈은 북한의 독자적 경제발전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고, 중국당국에 의한 양빈의 구속은 그들의 논리에는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 밖에 없었다. 양빈사건이 국제적으로 부각되어 중국의 입장이 궁지에 몰릴 상황이 전개될 즈음에 한국의 남가좌동 모처에서 중국의 주관으로 일본ㆍ미국ㆍ러시아ㆍ한국 등 북한을 제외한 官ㆍ民 정보담당자 및 전문가들이 모였다. 신의주 특구장관에 이해당사국들이 모두 찬성하는 명망있는 국제적 인물을 찾아내어 김정일에게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과 포철의 박태준 회장을, 미국과 일본은 미국 LA의 한인동포인 부산 동아대학 출신인 미모의 여성을 임명 운운하기도 하였다.
이날 회의 결론은 싱가폴 前총리인 이광요(李光耀) 선임장관을 만장일치로 지명했고, 이것은 북한에 즉각 통보됐고, 북한도 쾌히 승락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광요 선임장관에게 신의주 특구장관을 맡아달라고 부탁을 올리냐는 것이었다. 결국 필자가 지목되어 장문의 서신을 11월 15일 보냈고, 그해말인 12월 4일, 이광요 선임장관으로부터 회신이 왔다. 답은 정중히 사절한다는 것이었고, 이것에 대한 해명도 전달되었는데, “동양의 정치는 공ㆍ맹자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사상이 근간을 이뤄야 하는데 나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는 근본적 사상이 다르고, 또 중국의 속셈은 홍콩과 마카오처럼 대만을 흡수한 다음에 북한을 속국으로 한다는 동북공정의 전략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나를 비록 찬성한다 해도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어려울 수 밖에 없어 거절한다”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이광요 수상의 회신을 보관하고 있다.)
● 북한난민 수용소를 준비했던 중국 동북3성 해방군 사령부와 러시아 연해주 당국
이듬해(2003년) 3월, 중국 심양주재 해방군 사령부와 러시아 극동관구 사령부에서 만약을 전제로 북한 내부에서 폭동이 일어나 중국과 러시아로 북한 난민들이 몰려온다면 국제환경에 따라 상당수의 난민들을 양국은 받아 줄 수 밖에 없는데, 식량과 의류ㆍ의약품 등 생필품은 한국측이 부담해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상의를 해왔다.
필자는 이것에 대한 구체적 사항을 접수하고 그들의 자문에 따라 난민의 숫자는 중국에 약30~35만명, 연해주에 25만명을 1년 6개월 동안 수용할 때 필요물자를 파악하고 불교계를 포함한 한국 최대의 신도를 자랑하는 3대 종교단체와 기타 다양한 NGO단체에 협조를 구했다. 당시는 불행히도 정권교체기였고, 진보좌익세력의 노무현 정권은 도무지 이것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민족종교라고 표현하는 D교와 W교, 그리고 T교 교단에서 현장답사후 상기 내용들이 사실일 때 절대적 협조를 하겠다는 약속에 조사단을 만들어 현지를 방문ㆍ확인했다.
중국 해방군 당국자는 구속된 신의주 특구장인 양빈이 건설한 심양시내의 허란춘(荷蘭村)에 25만명, 흑룡강성 하얼빈시내에 있는 한국인 정강환(鄭康煥) 회장이 건설한 쌍태전자성내에 6만명, 길림성 용정 유수천 발전소에 3만명 등의 수용계획을 이미 세워두었고, 특히 연변조선족자치주 구역에 있는 용정의 유수천 발전소의 경우는 이미 발전소는 타지역으로 옮기고 난민을 접수할 완벽한 준비를 해두고 있었다. 조사단 방문일이 마침 휴일이라서 빈 건물 경비책임자인 교관(校官)급 고위장교(한국은 영관급, 북한은 좌관급이라 칭함)는 무심코 이런 말을 하였다. “북한 난민 수용계획의 제2안 예산이 확보되면 차라리 난민들의 중국진입을 철저히 막고, 아예 중국의 부담으로 생필품을 대량 실은 트럭 4만대가 중국에서 북한을 건너가는 11개 다리를 통하여 북한에 전달한 후 그곳에 눌러 앉는다는 계획도 검토되고 있다.”
그날 조사단 일행은 훈춘을 거쳐 자동차로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연해주 아르춈에 있는 구소련 시절 최대규모인 10만 8천두의 어미돼지를 키우는 양돈장의 시설을 둘러보고, 모돈 한마리당 3평의 면적이라서 25만여명의 북한 난민은 충분히 수용할 것으로 결론짓고 그곳에서 영농을 하는 D종교단체가 식량을 무상공급한다는 양국 상호약조를 하였다. 600만평이나 되는 초대형 첨단 축산건물들은 난민을 수용한다는 조건이나 이런 사태가 없을 때는 영구히 한국측에 양도한다는 MOU를 체결했는데 공사비 미화 1억8천만불이나 든 건물을 단돈 미화 5십만불에 한국측에 매도한다는 러시아 당국의 결정에 조사단 일행은 감격했다.
그후 한국 농림부의 예산으로 매입할 즈음 콜레라 파동으로 예산은 다른 곳으로 전용되었고, 경기도 용인시(당시 이정문 시장)가 매입코저 했으나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난민사태는 일어나지 않았고 양돈장은 러시아와 네덜란드의 합작회사에 미화 6천만불에 2005년 7월에 매각되어 버렸다.
● 당신은 39.5도선을 아십니까?
중국 북경올림픽 한달 전인 7월, 싱가폴의 이광요 선임장관은 한국과 대만에서 당신을 찾아온 양국의 정치지도자에게 비슷한 내용의 진지한 대화를 나눈바 있는데 이것은, 중국 북경올림픽은 역대 어느 대회와 비교해도 최고의 행사로 성공적으로 치뤄질 것이고, 이것을 추진동력 삼아서 중국과 각을 세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국들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만접수화」는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뿐만 아니라 북한 붕괴에도 깊이 관여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생필품을 공급받는 북한의 상당지역은 사실상 중국의 속국으로 전락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고, 이것의 대비책은 있느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오늘(2008년 9월 16일) 현재 북한 김정일은 병들어 누워 있고, 2004년 4월 22일 용천역 폭파사건은 베일을 벗겼으나 中ㆍ朝간 당국자의 묵인으로 덮어둘 수밖에 없었고, 38도 휴전선을 지키는 전연 군단장들과 두만강과 압록강을 지키는 후방 군단장들간의 새로운 주도권 싸움은 치열한 경쟁양상을 보이고 있고, 북한정권은 사실상 주인 없는 집단지도체제의 마비상태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해방군의 대북전략 원칙대로 「현재진행형」이다. 중국은 북경올림픽 직전에 백두산 관광단지를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 길림성 정부직할구역으로 떼어내고 「장백산 비행장」을 개설하여 한국인들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 경유 백두산 관광을 차단했고, 압록강하구 단동에서 두만강하구 훈춘의 권하를 거쳐 방천까지 북한과의 국경 1,200km길이에 완벽한 비상도로망을 건설하고 포장화 작업을 끝냈고, 비상시 철교위에 자동차가 갈 수 있는 목판작업도 완료했고, 북한 난민이 중국으로 건너오지 못하도록 2중철조망 설치작업을 끝내고, 그곳에 국경수비대 10만명을 배치했다. 한편 심양 진베이(金杯) 화물자동차(블랙박스 부착차량) 생산공장을 3배로 확장하여 1일 5천대를 생산할 수 있도록 라인을 증설했고, 이것은 비상시 4만대의 트럭이 북한 난민의 지원물품인 생필품을 싣고 8시간안에 11개의 中ㆍ朝 통로로 북한전역에 동시 진입한다는 전략이다.
예컨데, 오늘 북한이 내부분열로 인하여 붕괴되었다고 가정할 때 굶주린 북한 인민들은 식량과 자유를 찾아 중국과 한국으로 몰려 올 것은 자명하나 중국의 국경선은 어제와는 달리 원천 봉쇄되어 월경은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고, 남한쪽으로 몰려와도 비무장지대 지뢰밭을 넘어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때 중국 해방군과 이미 내통하고 장래를 보장받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지키는 후방 군단장들의 안내에 따라 생필품을 실은 4만대의 중국해방군 트럭이 동시에 북한에 진입하여 굶주리고 헐벗은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우리의 생필품 공급능력으로는 39.5도선 이북인 서해안 청천강에서 동해안 용흥강까지 한반도에서 서해와 동해의 가장 짧은 거리(180km)인 북쪽만 지원할 수 밖에 없으니 그 이남 지역은 한국과 미국 등 당신들 우방측에서 생필품을 담당하라고 한다면 바로 그곳이 한ㆍ중 국경선으로 고착되고 만다.(이 라인은 6.25전쟁때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이 휴전선으로 거론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으로 북진했다.)
중국은 평안북도ㆍ자강도ㆍ양강도ㆍ함경남북도 등을 확보하여 북한전체 면적 3/4를 얻는 대신 인구는 2천4백만명중 8백만명만 떠안게 되고 북한 전체 지하자원중 85%를 차지하는 셈인 반면에, 한국은 값어치가 별로인 1/4의 국토와 입으로만 양기가 오른 평양ㆍ개성ㆍ남포 등의 직할시 등 골수 공산당 주민이 대부분인 1천6백만만 떠맡게 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북한이 붕괴되면 과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영토가 진정 한국의 영토이고 바로 이곳이 한국과 중국의 국경이라고 수 차례나 표현한바 있다. 서해안쪽 청천강과 동해안쪽 용흥강의 물길공사는 불과 10km만 뚫으면 서로 관통된다. 이곳을 한ㆍ중 국경선으로 한다는 중국의 침략야욕은 김정일의 변고로 시작되고 있다.
친애하는 탈북자동지 여러분! 그리고 북한 및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 여러분! 중국 해방군 고위 군관수첩에는 분명히 「39.5도선 전략」개요가 적혀있다. 이 문건을 찾아내서 철저히 분석하고 한국의 대북ㆍ대중 정책에 새로운 전략이 수립되도록 우리 모두 MB정부에 충언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