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부 VS 갑을오토텍 기업노조

갑을오토텍에는 2개의 노조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산하에 있는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와 지난 3월 새로 생긴 또 다른 노동조합입니다. 2010년 1월1일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2011년 7월1일부터 한 사업장에 복수의 노조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기사에서 새로 생긴 노조는 ‘기업노조’라고 칭할 예정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지난 17일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공장 곳곳에 붙은 현수막을 일방적으로 뗐습니다. 이 현수막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붙인 겁니다. 갑을오토텍 노사는 현재 임금교섭 중입니다. 하지만 지난 1일 교섭이 결렬됐습니다. 노조는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했습니다. 금속노조는 임금교섭과 관련해 사쪽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공장 곳곳에 내걸었습니다.

기업노조의 현수막 훼손은 두 번째였습니다. 지난 15일에도 현수막을 훼손했죠. 현수막을 떼려는 기업노조 조합원들을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막아섰고, 기업노조 조합원들이 폭력을 쓰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로 확대됐습니다.

“당시 20여명 넘게 다쳤고 8명이 입원했으며 1명은 중환자실에 있는 상황이다. 그런 사람들과 불안해서 같이 일할 수가 없다.” 전병만 급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사무장의 말입니다. 이에 금속노조는 18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고, 기업노조 조합원들의 출근을 막게 된 겁니다.

갑을오토텍. 사진제공 정운
갑을오토텍. 사진제공 정운

17일 부상당한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 사진 금속노조 제공
17일 부상당한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 사진 금속노조 제공

‘노-노 갈등’이라 하기엔 석연찮은 증거들

겉으로 보기엔 일반적인 ‘노-노 갈등’입니다. 그러나 폭력을 행사한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라고 하기엔 의심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금속노조는 지난 4월부터 기업노조 조합원들에 대해 “회사가 금속노조를 와해시킬 목적으로 신규 채용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노동계에서 ‘노조 파괴’는 낯선 용어가 아닙니다. 2010년~2011년 유성기업,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 등에서 회사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없애거나 무력화시켰습니다. 경비용역업체를 투입해 폭력을 행사하고, 회사에 우호적인 노조를 세우는 방식으로 말이죠. 복수노조에 따라 새로 생기는 노조를 기업노조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속해 있던 조합원들은 회사의 폭력과 압력 등을 견디지 못하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옮겨가거나 회사를 떠났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2011년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런데 갑을오토텍의 경우는 이런 전형적인 노조 파괴 수법에서 한발 더 나갔습니다. 회사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와해할 사람들을 아예 신규 채용해서 복수노조를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거죠. ‘신종 노조파괴 수법 의혹’입니다. 지난 4월7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 이런 의문을 제기했을 때는 ‘익명의 제보’밖에 근거가 없었습니다. 또 갑을오토텍 사쪽도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 노사 관계에서 그런 것들이 용납될 수 없다”며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2달 동안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가 제기한 의문은 하나씩 현실화했습니다.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이 사쪽의 노조파괴 공작 과정과 관련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금속노조 제공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이 사쪽의 노조파괴 공작 과정과 관련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금속노조 제공

그 근거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지난해 12월29일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신입사원 60명 중 절반 이상이 경찰·특전사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갑을오토텍 노사는 2014년 9월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면서 부족한 인력의 신규채용에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한정우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부지회장은 “신입사원은 보통 30대, 많아도 40대일텐데, 60명의 평균 나이가 47살이고 50대 이상도 20명이 넘었다. 경찰·특전사 출신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천안고용노동지청이 조사한 결과, 신입 사원 가운데 경찰 출신이 13명, 특전사 출신이 19명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들 가운데 12명은 이런 경력을 이력서에 쓰지 않았습니다. 갑을오토텍 사규 위반입니다. 천안고용지청은 5월1일 “사규에 따라 신입사원 60명 중 허위 이력을 제출한 12명의 입사를 취소하라”고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사쪽은 이런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2. 입사 전부터 노조 파괴와 관련한 사전 교육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갑을오토텍 신입사원 가운데 한 명은 금속노조 쪽에 입사 전인 지난해 9~10월께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 모여 사전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워낙 노조가 강성이니까 회사 말을 잘 듣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가서 노조의 반대편에 서서 회사 편의 복수노조를 만들자. 노조와 맞서는 일을 하고 나중에는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교육을 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신입사원들은 갑을오토텍 단체협약에 따라 입사와 동시에 금속노조에 자동 가입했다가, 지난 3월 기업노조가 설립되자마자 단체로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사전에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이 약속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법 합니다. 그런 의혹의 근거는 한 문자 메시지입니다. 사쪽은 신입사원들을 몇 개의 팀으로 나누고, 학급 반장처럼 리더 역할을 하는 팀장을 선임했습니다. 한 신입 사원은 ‘각 팀장의 권유에 따른 기업노조 가입은 원서를 받아놓고 다음주 화요일 즈음에 하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팀장들이 금속노조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을 독려했다는 추정이 가능한 겁니다.

사전 교육 증언에서 나온 “나중에는 폭력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은 4월30일부터 현실화됐습니다. 이날 오전 6시20분께 기업노조 조합원들은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의 아침 출근 선전전 현장을 찾은 금속노조 간부들을 때렸습니다. 지난 17일 대규모 물리적 충돌은 사실상 전조가 있었던 겁니다.

3. 문제의 신입사원들이 ‘노조파괴 전문단체’ 소속일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문제의 신입사원들 가운데 19명 정도가 기업을 돌아다니며 노조를 파괴하는 ‘전문 꾼’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23일 갑을오토텍의 모기업 갑을상사그룹이 또 다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 지난해 11월24일자로 보낸 인사 발령 관련 ‘업무연락’ 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이 문서를 보면, 지난해 12월29일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신입사원 가운데 19명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명이 갑을오토텍에 입사하기 한달 전인 11월24일에는 동국실업에 입사했었음이 확인된 겁니다. 이들이 갑을상사그룹 소속 자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노조 파괴 공작을 하고 다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법 하지요. 구체적인 진술도 나왔습니다. 금속노조 동국실업 경주지회장은 지난 4월 이 19명에 대해 “그룹 본사에서 왔다며 노사교섭에 관여했고, 생산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출입을 못하게 했고, 노조원들과 몸싸움도 유발했다”는 진술서를 천안고용지청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노조, 부당노동해위 고소…고용지청·경찰서 묵인·방조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오늘과 같은 상황을 우려해 지난 4월 이미 천안고용지청에 회사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하고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한 노조와 달리 천안고용지청은 2달째 수사를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4월30일과 지난 17일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와 기업노조의 충돌이 있었을 때, 경찰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계는 천안고용지청과 아산경찰서의 ‘방조’가 오늘의 사태를 낳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노조가 성명을 통해 “노동부·검찰·법원은 현재 차일피일 사건을 미루고만 있다. 경찰은 갑을오토텍에서 지난 두 달간 벌어진 노조파괴 용병들의 불법행위를 묵인, 방조하고 있다”고 비판한 까닭입니다. 천안고용지청 최영준 근로개선지도1과 과장은 이에 대해 “노노 갈등이라고만 보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있다. 수사는 이번 주 안으로 끝낼 예정이다”고 말했습니다. 충남지방경찰청도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사건을 수사하는 중입니다.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두드러지는 노조 파괴, 하지만…

2010년 이후 경기도 안산시 에스제이엠(SJM), 경기도 평택 등에 공장을 둔 만도, 경남 구미 케이이씨(KEC), 대구 상신브레이크, 세종특별자치시 보쉬전장·콘티넨탈 오토모티브 일렉트로닉스, 충남 아산 유성기업 등 유독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에서 회사의 계획적인 ‘노조 파괴’가 문제가 됐습니다. 방식은 비슷했습니다. 회사가 노조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 뒤 노조가 집단행동을 하면 직장을 폐쇄하고 용역을 투입한 뒤 회사에 우호적인 새 노조를 만드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회사의 부당노동행위가 제대로 처벌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노무사가 회사와 손잡고 짠 시나리오대로 노조파괴가 이뤄졌던 유성기업 등 5곳은 검찰이 부당노동행위를 무혐의 처분했죠. 법원에 검찰의 불기소를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재정신청’까지 이뤄진 끝에야 이들 회사는 겨우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 기본권입니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반노조 정서’가 정부와 기업에 만연한 한국에서 이런 사태를 방조하는 우리도 공범이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