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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신비인 칼럼/ 종교는 실천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게시물ID : sisa_59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신비인
추천 : 8/15
조회수 : 513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04/05/25 22:58:10
종교는 실천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유사 이래로 수많은 형태의 신앙을 가져왔다. 그중에는 신을 믿는 종교도 있고, 
자신의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도 있으며, 자신의 몸을 닦아 
불로장생을 꿈꾸는 종교도 있었다. 이러한 종교들은 그 양상이 어떻건 
모두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들이 인간의 욕심과 결합하여 기복적인 면만이 강조되고 인간을 미혹함으로써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상실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산업혁명 이후 물질 문명이 발달하며 
오는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의 괴리감을 타고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 되었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상의 선구자인 칼 맑스(Kal Marx)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게 된 것이다. 이처럼 종교는 이미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린채 
사람들에 기생하는 하나의 착취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 이러한 종교의 역기능만을 보고 종교는 모두 무용하다고 우리는 말할 것인가라고 
묻는 다면 그 답은 아니요일 것이다. 비록 현재의 종교가 전반적으로 종교를 빙자한 
집단들의 이익을 위한 단체로 전락을 했다고 하여도 이것은 종교가 가진 본래의 기능도 
목적도 아니며, 종교 자체의 문제이기 보다는 그 종교들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물이 오염되었다고 강을 버리지는 않는다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중 범죄자가 있다고 모든 인간을 멸종 시켜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종교의 역기능만을 보고 종교를 모두 없에야 한다고 하는 것은 한면만을 보는 
극단적인 논리인 것이다. 2500여년전의 붓다나 2000년전의 예수도 이러한 종교의 모순들을 
깨고 나온 실천적 혁명가였다. 지금은 비록 이런 실천 정신은 퇴색하고 
종교들은 다시 교조적 권위주의에 빠져 자기의 역할을 잃어버렸지만 
그렇다고 성현들의 정신마저 그 빛이 바래진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이런 성현들의 정신을 이어 받어 새로운 의식 개혁을 통하여 
종교가 제자리를 찾을수 있는 쇄신운동을 벌여야 한다. 아마도 붓다나 예수께서도 
이러한 법(진리)ㅢ 혼란과 타락을 예상하여 말법이나 말세를 이야기하고 
오실분인 미륵 메시아를 말씀하신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정신을 
이어 받어 종교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기여하는 본연의 자세를 찾을수 있는 강력한 실천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일들은 종교인들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고여 썩은 물이 스스로 맑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듯 
자신들의 이익과 권위에 사로잡힌 기존의 종교인들에게 이러한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정을 하고 이것이 점차 
기층세력으로 번져 점진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기존의 종교집단의 타락을 더 이상 방조하거나 
방치해서는 안되며, 성현들이 가르치신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철저히 지키고, 
이러한 의식의 운동을 위해 종교를 가진 신도들과 의식 있는 종교인들이 단합하여 
이러한 정신개혁 운동을널리 전해야 한다. 

이제 종교는 실천하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신분의 사람을 제자로 두시고 
평등한 자비의 정신을 펼치신 붓다도, 도둑과 창녀와 문둥이와 함께 하셨던 예수도 
모두 이러한 실천을 몸소 실행하셨던 분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러ㅓ한 실천을 본받어 
인간이 만든 인간의 굴레가 되어가는 종교를 혁신하고 인간의 행복을 위한 
사람들의 종교를 만드는데 앞장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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