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지나가다 어떤 이의 가벼운 글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
누군가는 비쩍 마른 체형을 동경하고
누군가는 건강미 물씬 풍기는 다부진 체형을 선호한다.
다른 누군가는 미처 다 정의할 수 없는 어떠한 특색을 이유로 다른 외모를 또 좋아할 것이다.
이렇게 적는 말조차 어떻게 보일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외모가 어떻든 스스로가 지닌 고유함과 그 매력을 잘 이해하고 반짝이게 빛내는 사람을 나는 찾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내게 하는 소리가 있다.
"말라서 좋겠다."
나는 말라서 좋다고 내 입으로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방패처럼 꺼내 드는 말이,
"난 마른 게 싫어요."다.
정말이니까.
상대적으로 말라 보이는 나의 체형이 나는 아쉽고, 조금 더 근육이 많고 체력적으로 건강했으면 하고 늘 바란다.
먹는 양에 비해 활동량이 많은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말랐다.
근육을 늘리기 위해 양을 초과해서 먹으면서 운동을 해 본 적도 있고,
나름대로는 오래도록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그 시도가 오래 가지 못해 빛을 발하기 전에 사그라진 것들도 많지만.
어쨌든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나는 늘 노력해왔다는 것.
말라 있지 않기 위해.
정말로 간단하게,
마르지 않은 사람에게 마르지 않은 어떤 특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너 ㅇㅇ해서 좋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듣는 사람이 본인이 그러하단 사실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을 때에도.
유독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기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가 따라야 하는 법도 같은 것은 아니다.
나는 내 가늘기만 한 허벅지가 늘 부실해 보여 탄탄해지고 싶고, 힘들지만 여건이 되는 한은 틈틈이 운동을 한다.
마음 같아서는 돈이고 뭐고 때려부어서 태릉 입촌할 기세로 금세 근육을 키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돈도 없거니와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고 싶지는 않아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어쨌거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체중 감량이 목표인 사람이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늘 하는 노력과도 같은 맥락에서.
"난 마른 게 싫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내 말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내가 살집이 아주 든든하게 많은 체형을 가진 사람으로 살면서 체중 감량이 목표인 경우에는 다르게 들어줄 것으로 안다.
"살을 좀 빼고 싶어요."
라고 한다면 모두 자신이 아는 방법 중 한 가지를 추천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마른 사람의 현실은 그냥 이상하다.
"마른 게 싫어요."
"지금 그게 내 앞에서 할 소리냐."
그럼 내 앞에서도 내가 말랐다는 얘길 안 했으면 좋겠다.
굳이 먼저 꺼내지도 않은 얘기로,
자신의 미적 기준에 나를 맞춰 부럽다고 말을 꺼낸 다음,
내 기준이 그렇지 않아 나는 그것이 달갑지 않다고 표현을 하면.
눈치 없는 사람 미운 사람은 나다.
진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상대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할 기회가
나에게는 아주 많았다.
늘 외롭던 부분은 이런 부분들이다.
그래서 어떠다 주제가 나오고 사람들이 이 얘기를 들어주고 있노라면 나는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조잘조잘 내 이야길 누군가 들어주면 좋겠다.
아니 들어주지 않아도 나는 계속해서 할 생각이지만
'상대성'
가만히 불러본 적도 있다.
어느 하루 욕실에 들어가서 수건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든 생각으로 인해서였다.
여담으로
나는 수학을 좋아한다. 물론 수학은 잘 알지 못한다ㅡ몰라도 잘 설침ㅡ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무한함의 공간에서
하나 약속 받을 수 있는 절대성을 보장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그 범위 안에선.
아직까지 한 발자국도 걸어지지 않은 수학의 어떤 구석이라거나 상대적인 수학이라면 또 다른 얘기겠지만.
또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상대성의 뼈대는 절대성이 아닐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
세상을 구조 짓는, 혹은 구성하고 있는 수학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놓고 혼자 합리화를 한다.
상대성도 결국 절대성이 있어야 상대적이라며,
절대성도 상대성이 있어야 상대적이라며,
닭이 먼전지 닭알이 먼전지.
상대성에는 낯선 곳을 달리는 차 안에서 실시간 위치로 카카오택시를 호출해야 할 때처럼ㅡ해본 사람만 안다ㅡ아주 복잡한 느낌만 동동 떠다니지만
절대성에는 그런 것이 없다.
여기부터 거기까지.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