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가 아닌 욕을 하는 글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이다. 그것만을 일삼는 이들은 지난 정권에도 항상 '퇴진'을 요구하며 적의를 앞세워 사람들을 선동해왔다. 대신에 내세울 어떤 것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나는 최근에 그 외에 다른 것들을 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들은 대체로 '게임의 법칙'에 입각하여 테이블 밖으로 밀려났지만, 테이블을 엎자고 일어나는 명예를 모르는 행위보다는 보다 생산적인 행보를 택했다. 이들을 보며 진정한 어른이란 어떤 것인지도 눈여겨보게 되고, 또 솔직히 입장은 다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첫째 파티는 노회찬과 진중권 측이다. 걸출한 시대의 두 인물은 나란히 당당히 패배했고 비록 쓰지만 미소를 머금고 수긍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한 배를 타고 차분히 항해중이다. 나는 대학가에 걸린 "빨갛게 물들기 좋은 가을"이라는 왠지 위험천만해 보이는 현수막을 만날 수 있었다. 남들이 "빨갱이"라고 욕하고 폄하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의 정치, 경제 이론들에 대하여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당히 '한번 들어보지 않겠는가' 하며 권하고 있다. 이정도 되면 색깔론을 들고 나온 쪽이 머쓱할 지경이다. '진실성'을 무기로 정면승부하는 그들의 사 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둘째 파티는 임종인 전 의원 측이다. 그는 임기중에도 그랬고 대선 및 총선 중에도 그랬다. 미디어에 노출되길 꺼리지 않았지만, 어떻게 노출될까를 걱정하지도 않았다. 노조현장, 학생운동 현장에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나타나 '이름값'을 했다. 마치 대중가수가 동반하는 '진정한 실력'에 대한 의심스런 눈초리를 자신의 삶의 행보로 증명하듯이, TV에 나와서는 토론을 했고, 국회 밖에서는 노동자 곁에 섰다. 현재 그는 북유럽을 돌며 국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시찰하며 공부하고 있다. 그의 자금을 지금 누가 대고 있는지 알길은 없지만 앞으로 사 년 후, 그의 정치 유학의 결실은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셋째 파티는 혜성과 같이 나타난 성공회대 사회학파다. 그들은 다소 촛불을 등에 엎고 포퓰리즘에 기대어 세를 불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난 정권 이후 산산히 흩어졌던 '이론적 전문가'들이 이 곳을 중심으로 모여들어 국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진보는 그간 실제적 진군을 하느라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이론적 토대에 이제는 '낡은'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어도 변명할 구실이 없었다. 이제 진보는 '신 자유주의' 정권의 사회적 실험들을 관찰하며 학문적으로 토대를 굳히고 많은 '진짜' 지식을 생산하며 말 그대로 '진보'할 필요가 있다. 촛불 대신 들 '새 책'을 달라.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따르면, 역사는 '정신'의 자기인식 과정이라고 한다. 냇물이 시간에 따라 불어 도도한 강물이 되듯이, 멈추는 듯 보이고 후퇴하는 듯 보여도 이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시련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국'을 보자.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정부의 지원과 보호 아래 디지털 산업과 통신 산업을 전략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에너지 산업과 자동차 산업 등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기 힘든 분야도 탄탄히 키워왔다. 다 자란 아이를 과잉보호하게 되면 종국에는 그 아이를 망치고 만다. 이만큼 키웠으면,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추기 위해 내수에 의존하기 보다는, 집을 떠나 큰 물에서 경쟁해야 한다. 현 신 자유주의 정권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가능할 것이다.
'마른 비만'이네, '덩치만 컷네' 하는 말이 있다. 영양의 불균형 때문에 풍요속 빈곤이 발생하는 사람이나, 덩치에 비해 실속이 없는 사람더러 하는 말이다. 지난 10년간 매해 공무원 수는 늘어가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는 인력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했다. 조직이 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덩치만 가지고는 말할 수 없다. 조직의 유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지난 참여정부에 이어, 현 정부에서도 '공직 메리트' 소거 작전에 돌입했다. 다소 부작용을 동반할 수도 있는 이 국가적인 다이어트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효과를 볼 것이다. 재정지출의 삭감으로 인한 경제지표에의 순영향이 첫째요, 공시나 고시에 목매는 국가적 인력낭비의 감축이 둘째다. 솔직히 '눈감고 아웅'하는 식의 행보 때문에, 그리고 장기적인 복용효과라는 측면에서 첫째 효과는 논란의 요지가 있다. 그러나 '철밥통'에 목매는 젊은이들이 하나 둘 제 살길을 찾아 떠나는 둘째 효과는 아마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업데이트' 없이 평생 같은 것만 가르치는 중, 고등 학교의 늙은 선생님들을 보며 가슴을 치던 젊음들이 같은 길을 가고자하는 한심한 가치관을 받아주는 곳은 이제 없다. 반평생 100만원 받고 사느니, 중소기업으로 달려가는 편이 낫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면서도 '불안'과 '대안'이라는 이중주에 놀아나던 노량진과 신림동의 젊음은 사그러지는 편이 마땅하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오직 시의적절한 처방만이 있을 뿐이다.
증명할 길 없는 희망으로 사람을 농락하는 것. 역사를 끌어다 국민들 가슴에 적의를 지펴 '원한'을 조장하는 것.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하여 습관처럼 누군가를 욕하는 것.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 행간을 읽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 차갑게 화내고 웃으며 설득하는 것. 아마 이것이 쓸개를 빠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