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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스토커 어떻게 보셨나요?
게시물ID : movie_1507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나리
추천 : 0
조회수 : 82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8/09 10:26:53
음악도 좋고, 미쟝센은 탁월하더군요..
다만..시나리오와 캐릭터의 힘이 너무 부족한것 같았어요

이래저래 한번 리뷰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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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차려진, 예쁘게 내놓은 꿀꿀이 죽?]

나같은 바보가 아마 또 없겠지만,
한국인에게만 통할 이 영화의 반전은, (스포없음)
스토커는 우리가 알고있는 스토커가 아니라,
주인공 가문이름이다. 한마디로 성씨.
우리나라로 치면, 김가네 뭐 그쯤.
어디까지나 영어 스펠을 확인 안해본 내 잘못이다.

자, 일단 출연진 촬영진을 보자. 화려하다.
석호필이 쓰고 박찬욱이 찍었다.
니콜 키드먼과 마야 와시코브스카 그리고 매튜 굿까지.
석호필이 각본 쓴다는 얘긴 처음 들었지만
이쯤 나열했으면, 그리고 박찬욱 영화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호기심이 자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봤다. 
일부러 아껴뒀었던건
모두의 관심이 한발짝 물러났을때 보려고.

잔인하다, 충격적이다 그런 말을 하는 우를 범하진 않겠다.
그건 박찬욱 영화를 공동경비구역 JSA만 봤거나
그의 필모그래피 중 아무것도 보지 않았단 증거니까.

정갈하다 싶을정도로 신경쓴 미쟝센 역시 그답다.
교차편집도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 때처럼 익숙하다.
배우들 연기도 네임벨류에 걸맞게 준수하다.
매튜 굿의 섬뜩한 표정도, 니콜 키드먼의 백치미도,
결국 떡밥들이지만 마야의 연기도 좋았고. 

자, 칭찬은 여기까지.
미리 말해두건데, 
(굳이 말하자면) 난 이 영화를 재미없게 봤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특히 복수 3부작들을 아끼며,
니콜 키드먼은 아직도 백인누나들 중 
세계 최고로 이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뭐냐면, 
재미없는 영화리뷰를 뭣하러 쓰느냐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이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까는거라는거,
까도 내가 깐다는거. 

영화를 보는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가,
영화가 끝난뒤부터 다시 시작되는 영화다.
그니까 영화를 다본뒤 곱씹어봤을때 
우러나오는 또 다른 이해와 새로운 관점들의 발견들 
그런것들을 즐김으로써 
영화는 그 영화 고유의 향기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엔딩 크레딧 올라가기 전
시퀀스들의 개연성과 시나리오의 구체적 이해
그니까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명료한 주제가
충분히 이해됐는지의 여부를 확보했을때나 가능한 향기다.

이 영화는 그런면에서 참 안타까운것이
(이게 이 영화의 리뷰를 쓰는 가장 큰 이유)
스토커는, 보고나서 한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어떻게든 이해해보고 싶게끔 만드는데는 탁월하지만,
다시 되돌아봤을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은 점들이
눈에띄게 많은 영화란 점에서 안타까운 '수작'이다.

의도된 교차편집의 과용과 
수많은 메타포들 속에서 
관객이 중심을 잃지 않게끔 집어넣은
클로즈업은 애처롭다.
의도된 친절함이, 과하면 부담스럽듯 말이다.

곳곳에 흩뿌린 떡밥을 다 주워 담지 못할거면
거시적으로 봤을때 
뿌려진 떡밥들이 그림이라도 되게 하던가 해야되는데
이건 마치 '이거 보세요, 나 이렇게 떡밥 예쁘게 뿌렸어요'
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리광같다.

박찬욱 탓만 하는건 결코 아니다.
그는 원래 자기가 쓴 각본으로만 찍는 사람인걸 알고있고,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연출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이만큼 나왔다는건 칭찬은 아니더래도,
'애썼다 욕봤다, 비록 재미는 없지만' 하고 
격려(?)까진는 해줄만하다.
그래도 시나리오 선구안이 별로였단건 어쩔 수 없으므로,
그저 안타까울 뿐이지. 

그니까 문제는, 시나리오 자체의 중구난방이다.
석호필형, 그니까 본명 웬트워스 밀러의 탓을 좀 해보자.
내가 알기로 스토커는 그의 각본 입봉작이다.
프린스턴대 영문학 석사를 나왔건 안나왔건
붙잡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거냐고.

히치콕의 오마쥬란 변명만은 듣고 싶지 않다.
그래서 네가 감히 히치콕의 영화세계를 까는거냐란
그런 말을 듣기엔. 예쁘게 찍은 사진들 오려붙인
초등학교 3학년 미술수업 수준 모자이크를 별로라고 하니까
너 지금 이 사진이 어떤 사진인줄 아냐,
이 사진작가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긴 아냐
하는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리 캐릭터들이 준수한 연기를 펼치면 뭐하나,
왜 나왔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김빠진 캐릭터들은
잘빠진 미쟝센안에서 공들인 대사를 쳐봤자
보는 사람의 몰이해만 도울뿐 
영상미가 시나리오에 비해 지나치게 좋다보니
관객들은 긴장과 몰입을 마구 하게 된다.
'뭔가 더 있을거야 그니까 제발 날 이해시켜줘' 하는 기대.
영화는 그 기대를 참혹히 배신한다.

회수하지 못한 떡밥들만 가득 안은채
애매모호한 수미쌍관으로 끝내버리니
허무함도 이런 허무함이 있을 수 없다.

차라리 몰입이라도 안됐으면 불평이라도 안할텐데,
이건 마치 최고급 재료들을 가지고 만든
그것도 정말 예쁘게 끓인 '꿀꿀이 죽'인 셈이다.

열받게도 그 꿀꿀이죽은 
정말 예쁘디 예쁜 비싼 그릇에 담겨나왔고
너무나 예쁘게 담겨진 그 프레젠테이션에
관객들은 속는다.
'오 이거 방송에 나온 그 맛집이래니까 분명 맛있을거야'
하고 그릇까지 싹싹 비운 셈이다.
소화라도 잘되면 다행인데,
이건 뭐 속이 더부룩해 트름도 안나와.

음식점엘 가면, 음식이 맛있어야 다시 가지,
가게 분위기가 좋고, 서비스도 좋으며
그릇이 이쁜데다 담겨나오는 모양까지 정갈해봤자
음식이 더럽게 맛없으면 두번 다시 안간다.
물론 서비스가 안좋아도 대개 안가긴 하지만,
음식이 어지간히 맛있으면 매니저나 사장한테 꼰질러서라도
버릇을 뜯어고친뒤 다시 가야지.
하지만 음식이 맛없으면..그땐 증말..답이 없는거다.

그래도 난 박찬욱의 다음 영화를 볼거다.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이 아니라면.'

어설프게 여름 신메뉴 하나 그럴싸하게 내놔본답시고 애쓴,
그러나 맛은 처참해서 그 메뉴만큼은 다시 안먹되
그 단골맛집을 다시 찾는건 
내가 알던 그 맛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맛을 기대하는건 아니다.
늘 먹던 그 맛을 기대하는거지.
어차피 새로운 맛은 다른 집 가면 되는거거든.
발전은 바라지도 않는다, 변하지만 말아다오.

이 리뷰는 단골맛집의
신메뉴를 맛없다고 까는, 
하지만 다시 찾아올거니까 더 신명나게 까는,
그런 애증의 글이 되겠다.

그래도 굳이 꿀꿀이 죽이 얼마나 예쁘게 담겨나왔나 궁금하거든
직접 보고 느껴라, 하지만 충격과 공포의 그 맛은 보장못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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