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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하고 슬픈 제 연애담입니다.
게시물ID : gomin_60091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ampjZ
추천 : 2
조회수 : 622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3/02/20 16:03:58

얼마전에 실시간 연애담(?) 지난 연애담 등

오유인 여러분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저 또한 알구있는 모든 사람들이 소설이냐고 물을 정도로 기구한(?) 연애담이 있네요.

오늘 회사가 한가한 관계로 심심하니 썰 좀 풀어 보겠습니다.

여긴 따뜻한 고게니까요^^;;;;;

 

전 올해 34살입니다.

14년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지방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아버지 쓰러지고 엄마 혼자 버는 지지리 가난한 집에서 전액 장학금 받고 우겨서

생활비 한달에 15만원만 받기로하고 억지로 온 대학이였습니다.

현실은 우중충 가난한데도 마음만은 철부지 새내기인 시기였습니다.

1999년은 홈페이지와 채팅등이 막 태통하던 인터넷 초반기...

난생 처음 다음에서 메일만들고

컴퓨터가 칼라다~ 와~ 하며 신기해 했었죠.

(사실 컴퓨터도 대학와서 첨 만져봤죠..ㅎㅎ 친구네 집에가면 공대다니던 오빠들이 밥통크기같은 컴퓨터를 200에 샀니 300에 샀니 아끼던 시기,..)

 

조금씩  발달하던 개인홈페이지를 서핑하다 한 홈피에서 요즘같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주인장과 친해지고 첫 방학에 학교와  멀지 않은 주인장집으로 초대를 받아 놀러갔습니다.

평소 좀 애어른 같았던지라 열네살이나 많은 주인장 부부와도 마음이 잘맞았고

저를 동생처럼 귀여워 해주셨죠.

그리고 남자 주인장의 오랜친구도 마침 연락이 되어  놀러왔는데...

그게 운명인가 싶었어요.

 

저녁겸 술자리에서 처음 뵈었는데 제가 똘똘해보인다며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시고 또 대화가 잘돼니 저도 덩달아 신이 났죠.

일명 코드가 맞는다- 였습니다.

 

그렇게 첫만남에서 정말 강렬하게 인상을 주고받고는 걍 헤어졌지요^^

그런데 아..정말 계속 보고싶은 겁니다.

그래서 집에서 방학을 다 안보내고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돌아와서 슬며시 연락을 취해보았어요.

서로 잘 지내냐고 안부인사 묻고 공부나 할까 싶어 학교로 돌아와있다고 하니

여행이라도 갈까? 하더라구요.

학교가 있는 곳이 유명한 관광지였거든요.

 

그렇게 다시 재회하게 된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졌어요..ㅎㅎ

정말 이 표현 뿐입니다.ㅎㅎㅎ

전 제 인생에 잣대가 예전부터 좀 확실 한 편이라 독신주의를 모토로 살았지만

연애를 못해보는건  억울하겠다 싶었는지도 몰라요..ㅋ

거기다가  아버지의 경제적,가정적 소홀등으로 인해

파더컴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나이차는 저를 안정감 있게 만들어 주었어요.

사랑 받는다, 존중 받는다, 평등하게 대해주지만 많이 포용해준다.등등등.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갖추었었죠.

 

2학기에도 달달한 연애는 계속 됐구요..

2학년 등록을 하고 4일에 수업을 다 몰아넣고 금토일은 서로 만나러 오가며 지냈어요..

호칭은 아저씨에서 오빠로 바뀌었구요..^^

2학년 일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에도 가물가물 할 정도로 초스피디 하게 보냈죠.

그리고 3학년 등록을 하지않은 채 오빠가 사는 서울로 입성! 해서 잠시 몇일 신세를 졌어요.

그리고 아주 지근거리에 방을 얻고  연애질을 해가며 서울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알바도 원없이 하고 교수님 추천으로 몇군데서 일도하며 내 생애 불꽃같은 사랑을 했네요.

 

그때 방을 얻었던곳이 홍대 바로 옆블럭(?) 상수동이였는데요..

어린나이에 시골 촌구석에서 서울 상경하여 정말 많은 추억을 쌓고 살았네요..

시골 촌소녀에게는 마냥 신기한 서울 젊은이들의 세련됨, 문화들을... 충분히 구경 했어요..ㅎㅎㅎ

(체득을 못한건  체질이 범생이 체질이라서임..)

 

주말이나 쉬는날이면 우리는 주로 서점엘 갔고 고궁, 인사동,  공원, 한강, 극장 어느 연인이나 다니는 평범한 연애를 했죠..

어차피 저희 부모님께는 인사 시킬일도 없고 그저 이렇게 잘 지내면 그만... 우리는 결혼이라는 틀에 얽매이지도 않았습니다.

오빠는 딸이 하나 있는 이혼남이였어요..

달은 시골에서 어머니,아버지가 키우고 있었고 다달이 적당한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었죠..

우리집엔 못가지만 오빠네집엔 몇번 찾아뵙고 여자친구입네 인사도 드리고 했었어요..

7형제 중에 다섯째인 오빠의 밑에 남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괄시를 받았죠..

나이 어린 애가 형 옆에서 용돈이나 뜯으려고 만난다는 눈치였죠^^;;;;;; 전 알 수있었음..  

 

제가 서울로 오고나서  딸아이를  주말에는 가끔 데려와서 같이 지내기도 했지만..

저도 그때는 미성숙한 인간이였는지라 그렇게 잘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오빠가 이혼남이라도 이 아이만 안딸려있다면 어쩌면 결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며

마음속엔 미움과 구박이 가득 했었습니다.ㅜ.ㅜ

여튼 그렇게 연애는 행복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정말 다시는 맞이 하고시지 않은 시련이 닥쳤죠..

제가 서울 온지 3년째 되던 해 봄. 저는 스물 네살이 되고 오빠는 서른 여덟이 되던 해

어느날 오전만 하고 일을 마친 오빠와 만났습니다.

지난밤 몸이 너무너무너무너무 간지러워서 정말 죽을것 같았다구요..

피부를 보니 긁어서 약하게 피딱지가 나 있는 겁니다.

지금도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가려고 일을 일찍 마쳤다더군요..

집이 홍대근처니 신촌쪽으로 나와 병원을 찾기 시작했어요..

허름한 피부과가 하나 있었고 저희는 진료를 받았어요..

나이 지긋해보이는 의사선생님이 저희가 진료실에 들어서서 앉기도 전에

오빠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몸 가려우시죠 하는겁니다.

그래서 정말 눈 동그랗게 뜨고 네!!! 하니

피부과가 아니고 내과로 가셔야합니다. 눈에 황달이 심합니다. 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즉시 주변에 적당한 내과를 찾았고 혈액검사,  간 초음파를 받았습니다.

간 초음파 결과가 나오자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당즙이 분비 되는 담도에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염증일 수도 있고 다른 좋지않은 무엇일 수 도 있습니다.

그 무엇인가가 담도를 막아서 담즙이 역류해서 혈액에 섞여 미친듯이 간지러운 겁니다.

지금 즉시 병원을 나가셔서 대학병원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소견서를  줄테니 바로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불과 한시간 만에 저희는 패닉상태에 빠졌어요...

 

바로 세브란스로 달려가서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차례를 기다렸어요..

대학병원 응급실이란 곳은 정말로 응급환자가 많습니다.

피가 터지고  울고불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눈치가 늦었죠...

그 험해보이는 다른 환자를 제치고 접수 후 일사천리로 혈액,CT,MRI 검사를 받았습니다.

 

 

헉.. 쓰다보니 왜리렇게 길어진거죠.....;;이제 마무리 하러 업무로 돌아가야겠어요.. 듣

고싶은분들 계시면 더 이어 써드릴거구요..

없으면 걍 묻히겠죠..;;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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