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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군대 실연 소설] 구비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2835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권고양이
추천 : 2
조회수 : 409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3/08/09 17:56:28

구비 이야기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그치들은 무언가를 쫓아다니느라 분주했다. 그 까닭에 태연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수화기 너머에서 수현이 조금 작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수현은 큰소리를 못 견뎌했다. 그에게 매번 조금만 작게 말해달라고 하곤 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싸운 것도 그의 목소리 크기 때문이었다. 태연은 이번에도 황급히 사과했다.

“미안해. 주변이 시끄러워서 나도 모르게…….”

“괜찮아.”수현의 말을 잡아채듯 태연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 생각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는 수현이 4학년을 휴학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물며 그 목적이 아르바이트였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땐 공부에 열중하는 게 맞았다. 학년도 낮은 자신이, 그것도 누나인 수현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남자친구였다. 이 정도 말을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수현에게 곧잘 훈수를 뒀다. 그가 이렇게 열을 올릴 때면 수현은 대꾸 없이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묵묵히 들었다. 태연은 자신의 말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 수현의 말이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고양이.”

“어?”

“고양이 소리 난다고.”

 수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그제야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는 생활관 근처에서 가느다랗게 울었다. 그 방향으로 사람들이 몰려갔다. 그는 그 모습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애들이 쫓던 게 고양이구나.

“지금 후임들이 고양이 잡으러 다니나봐. 근데 되게 작게 들리는데 어떻게 들었어? 신기하네. 너 귀 진짜 밝다.”

“그냥 들렸어. 태연아 근데 나 피곤해. 좀 쉴게.”

 그녀의 말에서 짜증이 묻어났다. 그의 어깨가 움찔했다. 태연은 한숨을 참으며 일부러 과장된 어투로 답했다.

“우리 아기 피곤했구나. 응, 푹 쉬어. 사랑해.”

 그렇게 말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뚜뚜뚜…….’하는 소리만 났다. 태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수현이 어디까지 들었을지 궁금했다. 그는 전화 끝에 항상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수현이 그걸 모를 리는 없었다. 그는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들었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괜히 전화기를 툭하고 쳤다. 오래된 전화기의 화면이 깜박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후임들을 향해 외쳤다.

“야! 니들 거기서 뭐하냐?”

 맞후임인 우진이가 대답했다.

“짬타이거 잡고 있습니다. 지금 거의 다 몰았습니다. 유태연 병장님도 보시겠습니까?”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고양이에게 다람쥐나 사슴 정도의 관심만 기울였다. 둘 다 부대에 있으면 종종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그에게 고양이란 그 정도의 생물이었다. 누군가 개냐 고양이냐를 묻는다면 그는 개가 훨씬 좋았다. 태연은 부대에 두 명 있는 군견병 중 하나였다. 멀리서 애들이 둥그렇게 자리를 잡는 게 보였다. 그는 그 모습에서 곧 시선을 뗐다. 생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아쉬워하는 탄성이 났다. ‘그거 하나 똑바로 못 하냐?’, ‘너 때문에 도망갔잖아.’ 둥의 외침이 탄식을 뒤이었다. 곧 바로 군기 든 ‘죄송합니다!’가 울려 퍼졌다. 그는 피식 웃었다. 아마 잔뜩 골이 난 우진이가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재잘거릴 터였다.

 


 점호가 끝나자마자 우진은 태연에게 쪼르르 다가왔다. 그는 아까 있었던 일을 잔뜩 늘어놓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완벽한 포위망을 구성했단다. 그런데 이병이 빠져가지고 그쪽으로 빠져나갔단다. 요는 짬타이거 눈에도 짬이 보이는 것 아니겠느냐. 우진은 그렇게 평했다. 태연은 그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치다 일어섰다. 수현에게 전화를 할 시간이었다. 우진이 시계를 보더니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이 시간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일어서는 그를 보고 우진이 그러다 결혼하겠다고 야유를 보냈다. 태연은 그런 우진을 향해 안 됐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진은 지금껏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 했다. 우진이 태연의 표정을 보곤 으르렁거렸다. 그는 이내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며 탄식했다.

“솔로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모태솔로겠지…….”

 그는 우진의 말을 정정하곤 도망치듯 생활관을 빠져나왔다.

 


 산에 위치한 까닭에 부대는 추웠다. 11월부터 입김이 속절없이 나왔다. 전화기는 생활관에서 제법 멀리 있었다. 그는 걸음을 서둘렀다. 입김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하얗게 피어나는 입김을 보고 있자니 담배 생각이 났다. 그는 습관적으로 품을 뒤적였다. 빈손만 덩그러니 나왔다. 주변을 살펴봤으나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옅은 한숨이 나왔다. 수현은 항상 그에게 담배 좀 끊으라고 말했다. 태연은 알겠다고 하고는 우진에게 담배를 다 줘버렸다. 그게 며칠 전 일이었다. 그의 기억으로는 일곱 번째인가 여덟 번째 금연시도였다. 그는 침을 뱉고는 바닥에 굴러다니던 자갈을 찼다. 자갈은 맥없이 굴러가 공중전화박스에 닿았다. 그의 눈이 전화박스로 향했다. 문득 오늘도 금연했다고 자랑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익숙한 그녀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길게 이어졌다. 그런데 신호만 길게 이어졌다. 수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항상 이 시간에 전화를 했고, 수현이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 날에는 그녀가 항상 먼저 언질을 줬었다. 태연은 전화를 두어 번 더 걸어봤지만 수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전등이 깜박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전등을 봤다. 형광등의 양끝이 까맸다. 수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뚜렷한 이유 없는 불안감이 그를 덮쳤다. 태연은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가, 이내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는 까만 밤 속에 홀로 서있었다.

 그녀는 며칠째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성과 우진이 핸드폰이 고장 났거나 바쁜 일이 있을 거라며 그를 위로했다. 페이스북에라도 글을 남겨볼까 했으나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사실 겁이 났다. 어쩌면 헤어지잔 말이 돌아올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미 남겨져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태연은 컴퓨터 근처로도 가지 않았다. 설령 헤어지더라도, 그런 말을 인터넷으로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그는 드문드문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연은 자주 전화기 근처를 서성였다. 그 모습을 본 민성이 그의 등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고 갔다. 태연이 힘없이 미소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민성이 파이팅 포즈를 해보였다. 그러고는 농구공을 튕기며 통합사무실 쪽으로 올라갔다. 민성은 처음 자대에 왔을 때부터 한결 같았다. 그가 올라가는 걸 보고 있자니, 옆에서 우진이 그를 불렀다. 우진은 별 말 없이 담배를 내밀었다. 태연이 그에게 주었던 담배였다. 그는 태연에게 담배를 들고 가라는 시늉을 했다. 태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힘내십쇼.’라는 말을 남기곤 민성이를 쫓아 뛰어갔다.

 


 토요일 오후는 한적했다. 밖을 돌아다닐 날씨는 아니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전형적인 겨울날씨였다. 추웠다. 그가 숨 쉴 때면 하얗게 입김이 피어올랐다. 그는 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수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태연은 머뭇거리며 조각 조각난 단어들을 엮었다.

“잘 지냈어? 오랜만이네……. 8일만이야. 서울 날씨는 어때? 여긴 벌써 춥네.”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태연은 침 삼키는 소리를 냈다. 그는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둘 사이로 바람 소리만 오갔다. 그녀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있잖아. 이제 연락 그만 했으면 좋겠어.”

 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올게 왔구나. 수화기를 붙잡은 그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페이스북 못 봤니?”

 여전히 대답 없는 그에게 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그만하자. 헤어져. 이제 지쳤어.”

 태연은 왼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 틈 사이로 대답이 새어나왔다. 그런데 왜? 그의 물음에 그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말이 분명했다.

“내가 이유를 알려주면 넌 그 이유를 고치겠다고 할 거잖아. 헤어지기 싫으니깐. 이미 그 이유와는 아무 상관없는 결과가 됐는데. 그러니까 이유는 알려줄 수 없어. 이제는 중요하지도 않고. 중요한 건 내가 이제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잖아?”

 그는 그러냐고 대답하려고 했다. 단어는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대신 왼손으로 전화를 끊었다. 태연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함께 수화기도 축 늘어졌다. 그건 그의 눈앞에서 흔들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수화기를 쫓았다. 이렇게 끝나는 거야? 대답은 수화기에서도,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2년을 사귀었다. 그리고 끝이 났다. 영문도 모른 채. 그는 쪼그려 앉은 채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었다. 하늘은 눈이 시리게 파랬다.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 울고 싶었다. 누군가를 부여잡고 통곡하고 싶었다. 나 힘들다고 목청껏 외치고 싶었다. 그는 그 생각을 솔직히 인정했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은 속에서 맴돌기만 했다. 출구 없는 슬픔은 이내 혼란으로 바뀌었다. 왜 떠났을까? 하지만 그로선 알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처박았다.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일주일 전쯤 수현과 통화를 할 때, 아마 그녀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을 통화에서, 그때 들려왔던 고양이 소리였다. 문득 태연은 까닭 없이 저 고양이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저 소일거리가 필요한 걸지도 몰랐다.


 그 고양이는 뒷다리를 절었다. 어릴 때 선임들에게 한 번 잡혀서 그렇다고 했다. 선임들이 데리고 놀다가 떨어트렸다고. 고양이는 그 순간 도망갔다고 했다. 아마 다리는 그때 다쳤을 거라고, 이기태 병장이 알려줬다. 우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탈영병인 셈이다. 그 고양이는 불편한 다리 때문인지 다른 고양이들보다 더 자주 잔반통 근처에 나타났다.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야위었고 경계심이 많았다. 작은 인기척에도 금세 도망갔다. 우진이 왜 그렇게 잡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고양이는 한마디로 얄미웠다. 그라면 탈영은 반드시 잡아야하는 중범죄라고 표현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얄미운 고양이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허무하게 잡혔다. 고양이는 청소도구함 아래에서 잡혔다. 수현이 태연에게 이별을 고한 바로 그날에. 사실 그건 구출에 가까웠다. 고양이는 청소도구함 아래에 갇혀 있었으니까. 고양이가 갇혀있다는 걸 알려준 건 우진이었는데, 그는 막상 고양이를 잡을 수 있게 되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태연은 민성과 함께 고양이를 잡았다. 

 민성은 고양이를 잡은 채 태연을 바라봤다. 고양이는 그가 끼고 있는 방한장갑을 이리저리 물어뜯었다. 혹 장갑을 안 꼈다면 그의 손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을 기세였다. 고양이에게서 역한 냄새가 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양이의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 긴 상처가 있었다. 영역 싸움 중 다친 듯싶었다. 태연은 그걸 보고 혀를 찼다.

“다쳐서 여기 갇혀있었나?”

태연이 청소도구함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오래된 청소도구함은 그가 발로 찰 때마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가 했다.

“야, 근데 이 애 어쩌려고?”

민성이 물었다. 난감하단 기색이 역력했다. 태연는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군견막사 쪽에 괜찮은 곳이 있던데……. 거기면 사람들 눈에도 잘 안 띠고 괜찮을 것 같아.”

그는 그리 말하며 고양이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다가오자 고양이는 하악질을 했다. 그는 싱긋 웃고는 고양이 목에 개목걸이를 묶었다. 둘은 적당한 상자에 고양이를 담았다. 그들은 당직사관을 피해 군견막사를 향했다.

군견막사에 도착한 태연은 근처 언덕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반쯤 묻힌 드럼통이 있었다. 그건 언뜻 보면 비닐하우스처럼 보였다. 태연은 드럼통 근처 나무에 개줄을 길게 묵었다. 혹여나 목이 졸릴까봐 개줄 두 개를 길게 이어 묶었다. 고양이는 상자 밖으로 나오자마자 드럼통 구석으로 숨었다. 민성이 말문을 열었다.

“비는 안 맞겠네.”

“괜찮지?”

 태연은 그의 말에 대답하며 사료와 물을 꺼냈다. 그릇으로는 쌀국수 통을 썼고 사료는 군견용 사료를 썼다. 고양이 사료면 좋겠지만 군대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쌀국수 통에 사료와 물을 적당히 부었다. 로만과 알마니가 고양이를 알아챘는지 끊임없이 짖어댔다. 그 개들은 작은 비둘기만 봐도 짖기 일쑤였다. 개들이 짖기 시작하자 고양이는 구석에서 작게 떨었다. 민성이 손전등을 조심스럽게 비췄다. 고양이는 고등어태비였고, 눈이 노랬다. 웅크린 모양을 보니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되어 보였다. 어린 고양이었다. 둘은 한참 고양이를 바라봤다. 태연은 뭔가를 궁리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민성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름은 구비로 할래. 군대 더하기 나비. 그래서 구비.”

민성이 구비가 뭐냐고. 무슨 구비문학, 전래동화냐고 핀잔을 줬다. 태연은 민성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양이는 구비가 되었다. 구비는 두 사람이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자 그제야 움직였다. 사료를 조금씩 먹었다. 태연이 그 모습을 보곤 맑게 웃음 지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렇게 웃는 모습에 민성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태연에게 그만 가자고 채근했다. 곧 점호시간이었다. 둘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들의 뒤로 개와 고양이만 남았다. 로만과 알마니는 구비를 향해 계속 짖었다. 그래서 그날 밤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소리에 태연은 밤새 잠을 설쳤다.



  다음날 아침점호가 끝나자마자 태연은 생활관을 나섰다. 사료 약간과 물을 챙겨 그는 구비에게 향했다. 밤새 들려온 개 짖는 소리가 영 불안했다.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따라 언덕길이 발을 잡아챘다. 막사에 도착했을 때,

 구비는 앞에 나와 있었다. 태연은 반갑게 다가섰다. 고양이는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그러고 보니 개들이 짖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구비에게 다가섰다. 구비는 얌전히 누워있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구비의 몸에 닿았다. 고양이는 숨을 쉬지 않았다. 사료도 물도 거의 줄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섬주섬 구비의 목에서 목줄을 풀었다. 줄은 약간 느슨했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그가 목매어 죽인 건 아닌 듯싶었다. 날이 추웠고, 고양이는 상처를 입은 채였다. 그래서 죽은 거라고. 어쩌면 그가 잡지 않았어도 밤을 넘기지 못 했을 거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살았을 수도 있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구비의 몸은 아직 따스했다. 고양이의 체온은 사람보다 높다. 그래서 눈을 감은 뒤에도 이렇게 따스하구나. 이렇게 따뜻한데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구비의 가슴을 눌러봤다. 숨소리가 났다. 태연의 고개가 훽 돌았다. 그 소리는 다시 나지 않았다. 가슴이 압박되자 폐 속의 공기가 나왔다. 그게 다였다. 구비는 죽었다.

어쩌면 죽음은 멀리서 오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오기에 그토록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도 몰랐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별도 그럴 터였다. 얼어붙은 땅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속에서 맴돌던 울음이 그제야 터져 나왔다. 그는 구비의 시체 앞에서 수현과의 이별을 목 놓아 울었다.



  구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뒀다. 차게 식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고양이는 시린 땅에 그대로 누웠다. 그날부터 태연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목줄이 그의 목에 휘감겼다. 구비는 목이 졸린 게 아닐 터였다. 몇 번이나 확인했었다. 하지만 목이 졸려 죽은 것일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가능성만으로 그를 괴롭혔다. 어쩌면 그 어린 고양이는 개들을 피해 무리하다가 목이 졸렸을지도 몰랐다. 목이 졸려 괴로워하는 구비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졌다. 그러나 고백하건데, 고양이의 죽음은 밤의 시작이었지 결코 끝은 아니었다. 밤은 놀랍도록 온갖 것으로 가득 차있었다. 눈을 감고 있자면 온갖 소리가 들렸다. 시계 재깍이는 소리가, 분대원들의 숨 쉬는 소리가, 당직계통이 순찰 도는 소리가 그토록 큰지 몰랐다. 그리고 그 소리들은 수현을 떠올리게 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그녀와 닿아있었다. 밤은 이내 수현으로 가득 찼다. 그 밤들은 비유가 더 이상 비유로 남아있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슴이 부서질 것 같다.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다. 그런 말들에서 ‘듯한’이나 ‘같은’ 따위의 말들이 지워졌다. 고통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태연은 고통 속에서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면 수현은 마지막 통화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 전화를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작게 흐느꼈다.



  다음날 우진이 그에게 얼굴이 말이 아닌데 괜찮냐고 물었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민성이는 고양이는 잘 있냐고 물었다. 죽었다고 하자 그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나 더 이상 묻진 않았다. 태연은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태연은 평소처럼 밝게 웃었고, 야한 농담을 했으며, 다만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리고 밤은 매일 찾아왔다.

새벽 2시에 그는 커튼을 바라봤다. 커튼은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가 갑자기 창문을 슬쩍 열었다. 찬바람이 슬금슬금 들어왔다. 바람에 커튼이 펄럭였다. 그건 우습게도 그녀의 원피스 자락을 떠올리게 했다. 투박한 군용 커튼과 수현의 치맛자락은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그녀는 하늘거리는 소재를 좋아했다. 태연이 보기에도 그녀에게 원피스는 퍽이나 잘 어울렸다. 살랑이는 봄바람 같았다. 그는 커튼을 살며시 들어올렸다.

그가 수현의 원피스 자락을 잡았을 때, 당황한 수현의 손이 번개같이 내려왔다.

“뭐하는 거야?”

태연이 당황하며 얼른 손을 치웠다. 그는 애써 담담한 척 굴었다. 그의 얼굴이 점차 붉어졌다.

“그냥 하늘 하늘거리기에 예뻐서…….”

수현은 싱긋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그랬어요?”

아이 취급에 태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수현은 그가 말하기 전에 얼른 그의 손을 잡아채서 벚꽃나무를 가리켰다.

“저기 좀 봐봐. 예쁘다!”

흐드러진 벚꽃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천천히 꽃잎을 떨어트렸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으로 꽃잎 몇 개가 지나갔다. 수현이 꽃잎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꽃잎은 얄밉게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꽃잎을 잡으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봄바람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수현의 치맛자락이 하늘거렸다. 얇은 치맛자락을 따라 볕이 흘렀다. 그는 수현의 손을 잡았다. 마주잡은 두 손 사이에 꽃잎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은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드문드문 연인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돗자리를 펴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태연이 맥주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입맛을 다시는 그를 보고 수현이 샌드위치를 꺼냈다. 수현이 자신이 도시락을 준비하겠다고 했을 때, 태연은 잔뜩 기대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대를 채울만한 맛있는 샌드위치를 준비해왔다. 그녀는 유명한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왔다. 그녀는 가방에서 ‘카프레제 샌드위치’, ‘클럽 샌드위치’라고 적힌 샌드위치들이 나왔다. 그걸 보고 태연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수현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맛있어. 내가 먹어본 곳 중 제일 맛있었어. 내가 준비해온다고 했지, 만들어온다고는 안 했잖아?”

그녀는 포장지를 뜯으며 말했다. 수현은 태연에게 얼른 먹어보라고 재촉했다. 그는 샌드위치를 먹는 대신에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의 입술에 꽃잎 하나가 붙어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서 꽃잎을 뗐다. 대신 그는 입술을 포갰다. 벚꽃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첫 키스를 했다.

  우진이 콜록거렸다. 태연은 우진을 바라보곤 창문을 닫았다. 생활관 공기가 싸늘했다. 그는 우진의 이불을 바로 덮어줬다. 수현과 꽃놀이를 했던 날, 둘은 서로 싸우고 헤어졌다. 사소한 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만약 그때 싸우지 않았다면, 먼저 사과했다면 지금과 달라졌을까? 그는 알 수 없었다. 창밖에는 달이 낮게 떠있었다. 달은 희부옇게 달무리를 둘렀다. 그는 달을 향해 입김을 불었다. 달이 흐릿하게 유리 밖으로 물러갔다. 태연은 거기에 수현이라고 썼다. 물방울들이 방울지며 조금 흘러내렸다.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이름을 거칠게 지웠다.



  아침부터 우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태연을 보고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매번 말을 삼켰다. 그는 태연의 눈치를 봤다. 태연은 우진을 힐끗 보고는 창밖을 봤다. 어젯밤에 달무리가 끼어있더니 기어코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태연이 그에게 담배나 피자고 했다. 둘은 흡연 구역으로 나갔다. 눈발이 점점 굵어졌다. 그는 망설이다가 태연에게 물었다.

“요새 밤에 안 자고 뭐 합니까?어제도 다 봤습니다.”

태연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 우진이 기침하던 게 생각났다.

“조금 설치기는 하는데.”

우진이 걱정스럽단 표정을 지었다.

“헤어져서 그런 겁니까? 헤어진 거 맞지 않습니까?”

태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담배를 꺼냈다. 우진이 불을 붙여줬다. 그는 이어 자신의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둘은 잠깐 동안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근데 왜 헤어지셨습니까?”

“이유 못 말해준다.”

“바람났습니까?”

태연의 표정이 살벌했다. 우진은 잠시 딴청을 피웠다.

“아니 수현이 이유 자체를 못 말해준단다.”

“바람났네. 그거 여자들이 바람나고 흔히 하는 말 아닙니까?"

태연이 인상을 썼다. 그의 담배가 빠르게 타들어갔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셨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럴 애 아냐.”

“그런 거 아니면 왜 안 말해준답니까? 진짜 아닌 거 확실합니까?”

그는 기어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태연은 들고 있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야, 시발.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야 되냐? 어? 언제부터 상병 새끼가 병장한테 지랄하게 됐냐? 하! 군대 잘 돌아가네.”

우진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모자 챙 사이로 서운한 표정이 보였다. 걱정해서 묻는 건데 왜 그러냐는 표정이었다. 태연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방송이 나왔다.

 

- 전 장병은 제설도구 지참하여 통합사무실 앞으로 모일 것. 반복 전달.

전 장병은 제설도구 지참하여 통합사무실 앞으로 모일 것. -

 

둘은 이구동성으로 욕을 내뱉었다.



  태연은 넉가래를 질질 끌면서 군견막사로 향했다. 그의 흔적이 뒤로 길게 이어졌다. 오늘 제설은 혼자 해야 했다. 군견병 후임인 민수는 휴가를 나갔다. 그는 하늘을 쳐다봤다. 눈송이가 징그럽게도 쏟아졌다. 민수가 원망스러웠다. 날도 잘 잡았네. 그가 군견막사로 다가가자 개들이 짖었다. 어느새 주변은 하얗게 덮여있었다. 제법 많이 올 것 같았다. 언뜻 기록적인 폭설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치워봐야 좀 있으면 다시 쌓일 건데……. 그는 그리 생각하며 막사의 문을 열었다. 개들은 목줄에 매인 채 눈밭에서 컹컹거렸다. 답답하겠지만 목줄을 풀어놓을 순 없었다. 그렇게 하면 이 군견들은 막사를 탈출하기도 했다. 그럼 부대를 뛰어다니며 개를 잡으러 다녀야했다. 그는 작년 여름의 기억을 떠올리곤 진저리 쳤다.

그는 고개를 처박은 채 제설을 시작했다. 고개를 들면 반쯤 파묻힌 드럼통이 보였다. 구비가 있는 자리였다. 벌써 눈에 덮여 구비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는 묵묵히 눈을 쓸었다. 머릿속에는 우진의 말이 맴돌았다. 바람난 건 아닐 것이다. 싫어졌다면 싫어졌다고 할 아이니까. 그럼 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눈발 사이로 하얗게 입김이 피어올랐다. 그는 눈으로 입김을 쫓았다. 그의 눈에 군견 막사 앞쪽이 보였다.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앞쪽을 다하고 뒤로 넘어왔는데, 어느새 앞쪽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었다. 대체 이걸 왜 하나 싶었다. 그는 넉가래를 막사 지붕으로 던졌다.

개들은 매년 보는 눈인데 지겹지도 않은지 열심히 컹컹거렸다. 그는 개들에게 다가가 목줄을 풀어줬다. 로만과 알마니가 신나서 막사를 뛰어다녔다. 많이 답답했겠구나 싶었다. 그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 제설이 끝날 때까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제설하라고 끌려갈 테니까. 로만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로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개들은 활기차게 돌아다녔다. 그는 개들이 뛰어다니는 양을 한참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구비가 있을 자리를 봤다. 거긴 온통 눈밖에 없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어쩌면……. 어쩌면……. 수현은 숨이 막혀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녀의 목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녀를 위한다고 했던 일이나 말들이 그녀를 숨 막히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비에게 그랬듯.

선잠을 잤다. 시간은 이제 겨우 밤 11시였다. 누운 지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그는 눈가를 비볐다.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오후 내내 제설을 했으니 잠이 들 법도 했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상념이 눈꺼풀을 비집고 들어왔다. 수현이 숨이 막힐 법 했다. 그는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사사건건 토를 달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깐. 헤어진 이유는, 아마 그 이유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날 밤도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여행을 갔었다. 1박 2일로 강화도로 갔다. 당연하게도 피서가 목적은 아니었다. 태연은 이 이 여행을 가자고 부단히도 졸랐다. 그가 끈질기게 조르자 그녀는 결국 허락했었다. 둘은 손을 잡고 펜션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에 약간의 주저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둘은 미리 사온 고기를 구워먹었다. 약간의 술도 곁들었다. 수현은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 그녀는 약간 초조해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붉었다. 그녀는 자주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석양이 밀물처럼 밀려와 방을 적셨다. 둘은 손을 잡은 채 석양을 바라봤다. 그러다 태연이 주뼛거리며 물었다.

“씻어야겠지? 먼저 씻을래?”

수현은 발그스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수건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곧 이어 ‘쏴아’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태연이 욕실 쪽을 뚫어지게 봤다. 그는 그러다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타구니 쪽이 뻣뻣했다. 그녀가 욕실에서 나오자 태연이 씻으러 갔다. 그러고 나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둘 다 처음이었고, 서툴렀다. 그녀의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수현은 아파했고, 태연은 주저했다. 태연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곤 물었다.

“그만 할까?”

그녀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녀는 오늘밤이 마무리되길 바랐다. 그가 다시 수현을 애무했다. 내심 이번에도 안 되면 그만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어갔다. 태연을 안은 수현의 손이 힘이 들어갔다. 그의 등에 손톱자국이 났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녀의 입에서 잇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수현의 귓가에 대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녀도 그렇다고 했다. 둘은 오랫동안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는 뒤척였다. 거기가 서있었다. 그는 그 사실이 서글펐다. 마음은 미치도록 슬픈데, 몸은 마음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좆같은 일이었다. 마음대로 안 되기에 그런 표현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정말 좆같은 일이었다. 그는 그곳을 잡았다. 태연은 자위를 했다. 그건 정말, 정말로 좆같은 일이었다.

그는 얼마 안가 사정을 했다. 왜인지 안도감이 들었다. 눈물이 조금 났다. 그는 막연히 내일 구비를 묻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묻지 않고는 나아갈 수 없었다. 구비도. 수현도……. 그는 눈가를 문질렀다. 잠이 쏟아졌다. 그는 눈을 감았다. 태연은 며칠 만에 처음으로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그는 평소보다 일찍 생활관을 나왔다. 그는 구비에게 향했다. 구비에게 가는 길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가는 길에 몇 번이나 넘어졌다. 드럼통은 눈에 덮여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눈을 파헤쳤다. 구비는 딱딱하게 누워있었다. 그는 주변의 눈을 더 파헤쳤다. 구비의 묏자리가 어느 정도 나왔다. 그는 삽으로 있는 힘껏 땅을 내려찍었다. 하지만 삽이 박히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더 내리쳤지만 마찬가지였다. 동토는 조그마한 고양이가 누울 자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둘 수도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삽 위에 올렸다. 그는 고양이를 삽에 얹은 채로 외곽 펜스 쪽으로 향했다. 최소한 눈에 보이는 곳에 둘 순 없었다. 펜스 밖으로 넘길 셈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구비를 던졌다. 구비는 중간에 한 번 윤형철조망에 걸렸다. 철조망이 철렁했다. 털이 조금 날렸다. 그리고 떨어졌다. 소름 끼치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는 발걸음을 돌려 통합사무실로 향했다. 부서에 상번할 시간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 상사님이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그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간단히 고양이가 죽었다고 대답했다. 반장님은 손이나 씻고 오라고 했다. 시체를 만졌으니 손을 씻어야 했다. 그는 비누로 손을 박박 문질렀다. 손에서 검은 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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