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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있는아이님께 조선시대 유교식 역사서술에 대한 오해.
게시물ID : history_60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27
조회수 : 672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2/10/17 20:16:20

일단 기본부터 집고 넘어가야 겠네요.

 

1. 주장하시는 일제가 우리나라 역사서를 20여만권을 모두 소각해서

한국의 고대사 사서가 사라지게 되었다는 말 자체가 틀렸습니다.

해당 정보를 보신 책을 다시 읽어 보시길 바람니다.

 

20여만 <종> 이 아니라 20여만 권이라 나오죠? 

진실은 20여만권이 20여만개의 다양한 다른 역사를 지칭한게 아니라

51종의 서적이 20여만개 출판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51종류의 해당 역사서책은 우려하시는 바와 같이 숨겨진 우리의 고대사 서적이 아니라

전부 근대에 출판된 민족주의 사상을 담은 역사서들입니다.
당시 압수된 역사는 근대의 서적이고 이유는 그것이 민족주의를 고취하니 일제가 금서로 지정했기에

51종류가 시중에 나도는 20만권을 수거한것이죠

 

더불어 아셔야 하는 것이

당시 일제가 해당 51개의 서적을 전국에서 압수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책들이 소멸된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디나. 당연히 이런 행위를 하였다 하여 5천년 한국사가 소멸하는게 불가능하죠

 

고대 진시황도 분서갱유를 하며 서책을 소멸시키고자 하였죠. 유교서적들이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당시엔 서책을 죽간에 깍아 기록하고 책 자체가 귀했던 시절이었음에도 이런 서책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고대도 아닌 근대에 책을 수거해서 태운다 한들 모든 역사서를 제거하고 기록을 은폐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죠.

 

진실을 말씀드리면

한단고기 계통의 사이비 역사학자들이 역사에 무지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만든 거짓말입니다.

일제가 20여만권을 불태웠다는 건 님이 말씀하신바 처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단지 그 책들이 전부 근대서적들이고 또한 지금도 전해질 뿐이죠


 

또한 첨언하면 이런 논리로라면 도무지 전승되지 말았어야할 수많은 역사서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찾아보지 않으셔서 그러시지 우리가 편찬한 역사서만 수백종이고 지금도 전해집니다.

서울대 규장각과 같은 곳에는 아직 해독조차 못한 고서들이 쌓여있죠.

해독이 안된 이유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 한학을 공부한 연구자가 그렇게 많지 않기에
규장각에 소장된 서적을 모두 해독하는것 자체가 어려운일이여서입니다

지금도 조금씩 해독하며 디지탈화하고있는 현쟁진행중인 일입니다.

 

정말로 일제가 한국의 고서들을 수거해 역사를 말살하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제 1 순위로 규장각 부터 소각했겠죠. 근데 아니거든요 

 

또한 대부분의 역사에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만을 언급하는건 이것만 역사서로 남아서가 아닙니다.

이것이 가장 오래된 사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삼국유사, 삼국사기가 중요하단 것입니다. 
상식으로 접근하시면 이해 되실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2. 주장하시는 근세조선에서 조선이 사대주의에 찌든 친중파들이기에 역사를 왜곡했다는 말도 과장이고 사실이 아닙니다.

 

 

아마 국사교과서에도 나올 것인데 조선 초기 편찬된 사서들은 기자를 국조로 보지도 않았고 단군을 국조로 보며자주적인 역사서를 편찬했죠.
실제 이때엔 고려 때도 없던 단군에 대한 제사가 국가적으로 이뤄졌고

심지어는 수나라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이나 고구려왕 영양왕도 그 공을 인정받아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도 개천절에 하는 마니산의 제사는 조선시대 소격서에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정도전의 요동공략 주장과 그때의 상소문을 한번 찾아 보시면 패기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조선이 요와 금나라가 되지 못할게 뭐가 있냐며 중국이랑 한판하자고 하던 분들입니다. 친중파로 보이시나요?

 

만약 이런 상황에서 정녕 당시에 한단고기와 같은 기록이 존재했다면 당연히 인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겠죠.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때도 모두 삼국유사, 삼국사기 또는 중국사를 인용했습비다. 그게 전승된 역사거든요.

 

단지 조선 중기를 넘어서며 유교의 성리학이 철학화되어 정착이 되고 대명외교도 초반의 갈등을 씻고 안정기에 접어들며

사대외교가 중심이 되자 기자조선과 중국중심의 사관이 이후 편찬되는 [역사관]의 주류가 되었던 것이죠.

[역사적 사실]이 변하거나 왜곡 된 것이 아닙니다.

 

3. 생각해 보면 재야사학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모두 유교사상과 그 역사서술에 대한 이해의 부족 때문이 아닌가합니다.


유교에 대해 크게 오해를 하시는데 유교라는 학문은 사대주의 학문이 아니라 합리주의 학문입니다. 사대는 그 과정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고요 

개인의 수양을 통해 군자로 성장하고 이들을 통해 정치를 하자는 것입니다. 배움을 통해 깨달은 합리적인 판단으로 사회를 안정시키고

그 시스템의 유지해 나가자는 것이 요지죠. 이를 위해 제사와 같은 종교의식이 따르는 것이죠 이것을 유교는 예라고 부르고요.

 
이런 것입니다.

어떤 종교든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고 이에 대한 의견을 내놓습니다. 불교는 윤회를 말하고 기독교는 천당과 지옥을 말하죠
하지만 유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이 죽게되면 혼백이 나오는데  혼백은5대를 지나면 음양의 원리에 따라 혼은 승천하고 백은 땅으로

흩어져 소멸한다. 하지만 뛰어난 영웅과, 제왕, 성인은 혼백이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더라

 

이게 말하는게 무슨 의미라 보시나요.

바로 사람의 죽고 그 사람의 존재가 영혼처럼 인식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유교에서 혼백이 아직 소멸하지 영혼을 5대조까지 조상님으로 모시며 제사지내는 것은

보통의 인간들이 고조,증조,조부 이런식으로 5대가 내려가면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니 굳이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예외로 둔 영웅들, 성인들의 영혼은 영원하다는 것은 이들의 업적으로 사람들이 이들을 본받아 기억하니
이들 역시 영원히 제사를 하자는 뜻입니다. 굉장히 합리적이지 않나요? 

 

타종교에서 천당이니 지옥이니 죽음에 대한 공포로 겁을 줘서 윤리를 강요하는게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죽음을 바라보며 이를 바탕으로 현재에 충실하자 말하는게 유교의 생사관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상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 즉 죽음에 대한 존중 의식을 담은 제사를

 

유교에서는 예법이라 부르죠 사람에 대한 예의란 뜻입니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간관이 유교의 본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학에서 말하는 역사란

그 자체로 유교가 말하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록이자 수단입니다.

고금을 통털어 유학을 배운 모든이이 가장 두려워 하고 경외한 것이 "청사에에 어찌 내가 기록되는가" 였지요

자신의 과오와 실수가 곧 역사에 남겨져 비난이 될것이고 후세가 자신을 기억하는 모습이 될 것이기에
당대 유학을 배운 이들은 이것을 두려워하며 지금의기독교도들이 지옥을 두려워 하듯

꾸준히 자신을 수양하고 윤리적인 군자가 되는 힘으로 삼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시야로 역사를 경외하는 유교에서 그토록 신성시 하는 역사라는 것을

자신들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이유로 또는 정치적 이유로 왜곡하는 행위를 함부로 할 수 있다고 생각되시는지요

이는 얼마전 게시판에 오른 조선왕조 실록을 보셔도 아시겠지만

설령 권력을 가진 집단에서 적대진영을 기록하며 역사적으로 안좋은 평가로 기록하였다 한들

이후 그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이들이 다시 권력을 다시 잡았다 하여 함부로 해당 기록을 지우거나 고친게 아니라
수정실록이라는 방식으로 전혀 다른 시야의 실록을 함께 편찬함으로써

후대가 양자를 비교해 평가하도록 한것을 보면 알수 있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유교의 역사 서술 원칙인 바로 술이부작입니다.
역사는 그 자체가 당대의 사상을 담은 가치관 학문이기에

서술하며 사관이나 당대의 관점이 개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

악평이던 호평이던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가고 안들어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평가의 가치관에 따른 [역사관]의 차이일 뿐이지

이를 위해 존해하지 않았던 사실을 창작하여 꾸며내거나 하는 것이 아니죠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의 사서들과 기록된 역사가 말하는 것은 

이른바 [역사관]의 싸움일 뿐 우리가 논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싸움이 아닙니다.

 

[술이부작 : 저술하되 창작하지 않는다] 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서를 편찬하되 이에 대한 평가는 할 뿐이지
존재하지 않은 사실을 창작하지 않으며 존재한 사실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유교사상이 가진 기본적인 역사서술 원칙입니다
이는 유교의 뿌리와 닿은 중요한 부분이고 이것을 안지킨다면 그건 유학이라 부를수가 없습니다.  

 

유교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의미가 이러한데 이들이 단군조선과 기자조선 등을 두고
또는 삼국이 행한 행적을 통해 이를 사대주의적으로 바라보든 자주적으로 바라보든 이는 시각의 문제일 뿐이죠

 

한단고기등과 같은 서적이 주장하듯

 

무슨 조선시대에는 사대주의에 찌들어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른 거짓입니다.
조선의 역사서술 을 이렇게  평한다면 혼백이 흩어진 유학자들도 돌아와 분노할 그게 바로 진정 왜곡이겠죠


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철수가 학교에 간다"  라는 사실이 존재하는데

이를 두고 조선시대에 "성격 드러운 철수가 학교에 갔다" 라 서술했다고 하여 사실을 삭제한게 아닙니다.

현명한 현대의 사학자라면 [철수가 학교에 갔다] 라는 역사적 사실과

왜 조선시대 당시에 [철수는 성격나쁘다] 평가했는가를 구분하여 사서를 관찰하겠지요

이게 올바른 역사관찰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조선의 사대주의사관에 입각한 역사서는

 

[사실의 기록] + [사대주의 사관]를 따로 구분해서 해석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일부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조선시대엔 사대주의에 입각해 역사를 왜곡됐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인지 이해가 되셨으리라 봅니다.

 

이는 역사를 관찰하며 [역사사실] [역사관]을 구분하지 않은 이들의 오류가 아닌가 하네요.


 
한단고기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나라 역사 기록은 일제시대때 소각된 바도 없으며
그렇다고 조선시대 때 왜곡된 바도 없습니다.

 

단지 전승된 사료의 내용과 양이 너무 적었을 뿐입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외교방식인 사대주의가 수치스럽고
사대주의적 관점의 사서들이 마음에 안든다 하여

 

비판해야 할 그 사대주의 관점을 비판하는게 아니라

엉뚱하게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건 말이 안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렇다 하여 나아가

역사도 아닌 창작물에 불과한 한단고기를 믿는다는것 역시 타당한 주장이 아닙니다.

 

한단고기와 같은 저작은 역사를 논하자는게 아니라

창작을 높게 평가하는 문학의 영역에서나 거론될 내용이라 봅니다.

 

그들이 욕하던 조선시대에 조차 술이부작이라는 역사의 기본원칙을 준수했는데

조선시대보다 퇴보한 역사관을 들고와 이것이 단지 맘에 든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은 내용을 창작한 서적을 문학이 아니면 무어라 불러야 할까죠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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