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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 아시나요?
게시물ID : gomin_7998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르슈
추천 : 4
조회수 : 890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08/11 01:22:32
하하 저는 사지멀쩡한 스물넷 남자사람입니다..
물론 여자친구는 헤어지고없습니다ㅎㅎ
가방끈이 길지않아 맞춤법이 틀릴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ㅎ
글쓰는 재주가 좋지 않아서 많은분들이 읽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중학교때까지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운동을 그만두고 일반 학교로 전학을 왔다.

운동을 그만두고 방황을 하던중에 미용이라는 것에 관심이 생겨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생소했던 미용고등학교로 입학을 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한 미용실에서 일이 그렇게 좋은기억이 아니여서 였을까 미용을 그만두고 학교마저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두번째 방황이 시작됬다. 

매일 피시방과 집을 오다니는 생활을 반복 하던중.. 열여덟살 겨울무렵

네이트 판에서 4개월만에 천만원을 모았다라는 글을 보게된다. 그 글의 글쓴이가 했던 일은 호스트바 선수였다.

그때당시 우리집은 그리 넉넉한 상황도 아니였을 뿐더러 항상 돈을 여유있게 쓰던 친구들이 부러웠던 나는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우리집에서 지하철로 십오분 정도 거리에 있는 호스트바에 면접을 보게된다. 

나는 키가 크지 않다. 옷을 잘입지도 않았다. 물론 말주변도 좋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 간곳에서는 이일과 어울리지 않을것 같다며 나를 보냈다.

이상한 오기가 생겨 집에 오는길에 피시방에 다시들렸다. 그리고 그 당시 호빠가 제일 많던 방배동에 있는 호빠 번호 하나를 저장하고 다음날 전화를 하고 면접을 보러갔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대답은 똑같았다. 그때당시 내주머니엔 만원 남짓 있었고 우리집까지 차비가 만오천원 이상 나오는 거리였다.

지하철도 없는데 한번더 찾아가보자 라는 생각으로 피시방에서 번호하나를 더 저장하고 세번째 면접을 보러갔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그때당시 나는 엄청 촌스럽고 볼품없는 모습이였다. 무슨자신감이였을까...ㅎㅎ

쨌든 세번째 면접에서도 그런소리를 하더라 나이도 어린데 다른일 열심히해보라고..

오기가 생겼다. 

"형 여기 월급 주는거는 아니죠? 그럼 일만 시켜주세요"

이말 한마디에 그때 면접을 보았던 형은 그러라고 했고 그때부터 내 화류계 생활이 시작됬다.

우리집에서 가게까지 거리는 약 한시간 난 돈이 많지 않았기에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했다. 출근 시간이 한시까지 였는데 그러다보니 매일 매장문을 내가 열었다.

그렇게 한달내내 쉬지않고 출근했는데.. 오십만원? 정도 벌었더라.. 

그때나는 뭐하나 잘난게 없었다. 술도 못먹었고 말도 못했고 키가크지도 잘놀지도 아무것도 잘난게 없었다.

내가 일한지 두번째달에 갑자기 사장형이 지각비를 만든다고했다. 이지각비는 모아서 한달 출근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했고

당연히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던 내가 받았다 두번째달에 총받은돈이 오백만원이 조금 넘었던걸로 기억한다.

돈을 받고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담배한갑 카드한판 안치지 하고 모은돈을 내가 받았다는게 내가 거지가 된 기분 이였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노는것을 연습했고 테이블에서 남은 양주를 집에 가지고와서 매일 글라스잔에 원액 한잔씩 먹고잤다.

세번째달 지각비도 내가 받았고 네번째달부터 내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때는 여러방에 들어간다 생각도 안했고 여기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했던것 같다. 

온몸에 술을 뿌리고 오만가지 더러운짓은 다했던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른가게에서 들어갔던 손님들이 우리가게로 와서 나를 찾기 시작했고

네번째 다섯번째달부터는 다달이 천만원 이상씩 가져갔던것 같다.

너무 어린나이에 큰돈을 만져서 였을까.. 진짜 하고싶은거 다했고 쓰고싶은대로 돈을 다썼다.

매일 지하철 타고 다니던 내가 어느순간 하루에 삼사만원씩 내고 택시를 타고다니고

카드를 치게되고 그러면서 불운의 시작이 된거같다. 내나이 스무살에 노름빚이 사천만원이 넘었다.

한달에 천만원 넘게버는데 빚이 자꾸 늘어난다. 일이 너무 하기싫었다. 일을 쉬고 집에 있었다. 

그렇게 허송 세월을 보내던중. 스물한살 일월쯤 일본 호스트빠에 대해서 알게됬다. 

그렇게 스물한살에 나는 일본으로 나가게 됬다. 일본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은 나이가 많다. 오는 손님들도 나이가 한국손님보다 많다.

그게 좋았던것이였던지 나는 동생같다 귀엽다라는 걸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내 빚을 다 갚았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올때 한국돈으로 약1400만원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군대 면제 대상이였다.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셨다. 

고민을했다. 다시 일본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군대를 지원해서 갈까..

화류계 생활 사년동안 너무 많은걸 알게되었고 사람에게 많이 데여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내의지로 그만두기 힘들다는 생각에 자원입대를 했다.

전역후 내나이 스물셋. 명품샾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모든게 재미있었고 열심히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만큼 보상이 없었고 오히려 더 악용을 당했다.

그러다가 그만두고 쉬고있었고 쉬는동안 미용이 너무하고싶었다. 항상 하고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다 내나이 스물넷 5월말압구정 한 미용실에 입사를 한다.

너무 재밌었다 일하는것 사람들과 어울리는것 다좋았다. 그렇게 일하던중에

갑자기 숨이 안쉬어졌다 죽을거같았다 그상황이 너무 무서웠고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 괸찮아진후에 병원을 갔다 아무 이상이 없단다. 인터넷에 쳐봤다. 공황장애라는것을 알게 됬다.

정신과를 찾았다 공황장애가 맞단다. 안정제를 처방받고 나왔다.

별로 알리고 싶지않았다. 하지만 알려야될 일이였기때문에 말을 했다. 

증세가 점점 심해졌고 심할때는 실신까지 했었다. 병가를 한달 내고 쉬었다.

일할때보다 많이 괸찮아 져서 일해도 되겠다 싶었다 출근을했다. 나아진게 없었다.

오늘 퇴사를 했다.. 다 나은후에 재입사를 하기로 하고 나오는데 너무 슬펐다. 이제야 떳떳한 일을

이제야 내가 하고싶은 일을 시작했는데 세상은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것을 원하지 않는것 같다.

너무 힘들다. 모든게 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내주변 누구한테도 말하기 싫다. 약한모습을 보이기 싫다. 당당하고싶다.

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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