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도 시간도 기억함.
2009년 8월 18일 17시 50분 경.
난 오유병으로 복귀하고 말았음.
여자친구는 유학을 갔음. 캐나다로 2년간 유학감 ㅋ
솔직히 난 여친에게 말했었음.
기다릴 수는 있는데 너만 나 잊지말아라 라고 함.
근 2년을 사귄 사이라 난 확신이 있었음. 결혼까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껏 만나본 여자 중에는 가장 현명한 아이였기 때문임.
걔는 의미심장하게 웃고는 포옹해주고는 출국행 비행기를 탐 ㅋ
솔직히 허망했음.
당장 다음 날 부터, 난 다시 일상의 나로 돌아갔고 알바에 공부에 등등 했음 ㅋ
당시에 카톡이 있어 뭐가 있어..걍 네톤이랑 문자가 끝인데, 문자는 해외라 안 되고.
걔가 살던 부근은 인터넷도 거의 1997년 크레이지 아케이드도 잘 안되는 인터넷 속도랄까?
그래서 네톤도 불가능했음. 또 걔가 가서 일하면서 생활해서 국제전화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이였음.
약 20분? 근데 생각해보면 1분간 안부묻다가 10분은 서로 울었음.
난 걔가 정말 존경스럽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사랑했으니까 울었고
걔는 나만 두고 온 것이 미안하다고 함. (사실 같이 갈라 했는데, 내가 돈이 솔직히 좀 없는 애라...)
그렇게 4개월이 지났음.
날씨도 쌀쌀해지니 뭔가 마음도 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음.
12월 즈음에 내가 군입대를 한다는 것도 걔는 잘 알고 있었음.
고3때부터 사귀다가 종종 '난 언제 군대가냐 ㅋㅋ' 라고 하면 늘 글썽거리면서 '그런 얘기 말아줘'라고 했던 애였음.
근데 언제부턴가 전화가 안왔음. 엄마 말로는 걔 집 근처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엄마가 부탁해서 힐끔힐끔 사는걸 보니 굉장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음.
시간이 흘러 12월 31일. 난 해의 끝과 다른 해의 시작의 기로에 서게 되었음.
그 31일이 지나가면, 누군가는 새로운 날을 맞을 것이고, 누군가는 군대를 가게 되는 거였음.
2시까지 의정부로 오라고 했는데, 난 친구들에게 그 흔한 전화 하나도 안걸었음.
왜냐. 혹시라도 걔가 바쁜 와중에 전화했는데 친구랑 전화하다가 못 받기라도 한다면 안 돼잖아.
친구들은 문자만 하고 결국 난 감 ㅋ
그렇게 지옥같은 혹한기에서의 교육을 받고, 신병 휴가를 나왔던 날.
난 아직도 기억함. 생생히.
정지했던 폰을 잠깐 풀었더니 전화가 단 한 통도 걔에게서 없던 것임.
그 날의 충격은 정말 컸음.
사실 연인이란게, 연락이 없으면 걱정부터 해야 하는데, 난 너무 이기적이고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는지
그만 쌍욕을 하며 잊기로 했음. 걔도 날 잊었을거라고 생각했음.
친구들이 술먹으면서 얘기해주더라.
돈벌러 유학가는 애들은 몸팔아서 돈 번다고.
어릴적부터 친구였던 놈이 그딴 말을 지껄였으니, 주먹으로 한 대 치고 말았지만 난 치면서도 울고 있었음.
배신감이 너무 컸고, 연인때문에 내 친구를 때린 것도 있으니까.
난 휴가 기간 동안 핸드폰을 잡고 살았음. 아무데도 안 가고, 집에만 쳐박혀서 저장문자를 보면서 울었음.
'100일이야!!'
'사랑해~'
'항상 고마워. 잊고 싶지 않은 누구누구~'
문자보면서 진짜 주마등처럼 모든 기억이 나는거임.
청계천에서 걔가 물에 빠졌을 때, 첫 데이트라고 멋있어보일라고 바로 뛰어들어서 손뻗었더니 현실은 30cm 폭 ㅋ 내 머리만 까짐.
그리고 중국집가서, (내가 중어중문) 너무 긴장한 나머지 중국말로 주문했더니 펑펑 웃었던 그 아이.
그 아이(영어)의 유창한 영어실력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남몰래 영어공부를 해서 영어 편지를 쓴 적도. (지금 생각해보면 LOVE만 1000개인듯)
이 문자는 저 시간의 추억이 있고, 저 문자는 또 다른 시간의 눈물과 행복과 포옹과 키스가 서려있었음.
그렇게 허망하게 기다리다가 복귀하는 날이였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음.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거의 상말이 되었을 즈음.
이미 시간은 2011년이 되어 있었음. 2년이 금방 갔구나..라고 허망해하던 찰나.
관물대에서 이상한 사진 하나가 발견되었음.
다 잊을거라고 미친듯이 와서 관물대 정리하던 이등병 시절의 내가, 1년이 지나 상병이 되어
아직까지도 못 버렸던 사진을 우연히 본 것임.
그것은 고3 수능 끝난 날 찍음 사진.
보는 순간 또 울컥함.
몇 달 있으면 전역인데, 혹시...라는 생각이 듬.
사실 난 핸드폰도 다른 것으로 바꿔버렸고, 번호도 바꿨기에 그 아이가 연락을 내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였음.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전역을 했고, 학교 복학을 몇 개월 앞둔 2011년의 가을.
정말 문득 생각이 들더라.
2년전 8월, 유학을 갔다면 지금쯤 와있다는 것이.
그 생각들자마자 소름이 돋았음.
정말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가 살던 집으로 향했음.
평택역에서 택시비 2만원 깨져가면서 걔네 집 앞으로 갔음.
막상 가니 겁도 나고, 화도 나고, 눈물도 났음.
진짜 분명히 보면 소리지르면서 나쁜년아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아려오는 가슴은 허용치 않았음. 진짜 머리론 열받고 그만 울어라 하는데, 가슴은 계속 주룩주룩 흘러내리더라고..
그렇게 집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린 지 어느덧 8시간.
밤이 되어서 걍 집에나 가야지..하며 진정된 가슴을 쓸어내리려던 그 때.
익숙한 여자아이가 걸어오고 있었음.
골목(코너??라고 하면 되나? ) 에서 여자친구가 걸어오고 있었음.
진짜 이건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2년간의 슬픔이 반가움으로 바뀌는 느낌.
이름은 x수정이다.
"수ㅈ..ㅓ....ㅇ....ㅇ...ㅏ"
하지 못했음.
옆에는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서있었기 때문.
군복 차림의 남자가 자기 앞에 서있으니, 그것도 전역모쓰고 멍하니 울고 있으니
걔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가자 수정아" 이러더니 끌고 가더라.
하지만 난 안다.
걘 당황하면 다리가 풀린다는 것을.
남자친구는 데려간 것이 아닌, 끌고 간 것이였다. 말 그대로.
질질 끌리는 신발 소리에 다시 결심했다.
잊기로.
그렇게 2012년이 되었고, 이런 저런 수소문 끝에 나와 마주친 그날 그녀도
남자친구와 결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근데.
어느날 연락이 먼저 오더라.
시간없다고 하고 도망쳤다. 난 뭐가 두려웠을까.
근데 걔가 끝까지 우리 대학까지 찾아와서는..결국 차나 한 잔 하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너무 사는게 바빴다고 했다.
캐나다로 가긴 갔지만,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다가 정말 시골 깡촌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한인끼리 종종 모이는 곳에 가서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마시며 매일 밤을 울었단다.
차를 마시면서 내 손이 떨리는 만큼이나 걔의 눈동자도 떨렸다.
차를 다 마시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결국 재결합은 없을 거라고 못박았다. 내가.
여자는 또 펑펑 울었다.
주위 사람들이 여자울리는 개새끼로 날 봤겠지만 괜찮았다.
뭔가 무서웠다..
근데 그 날...다시 전화가 왔다.
평택의 한 경찰서란다. 핸드폰 주인이 만취해서 전화번호를 뒤지다가 내가 나왔단다.
택시타고 심야 돈 다 내가면서 도착했더니 가관이였다.
울면서 내 이름을 부르더라.
솔직히 흔들렸다. 이러면 안되는데...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마음이 먼저 가더라...
개를 데려다주려다가, 문득 그 아이 부모님께서 늦게 들어올 바에야 외박하라는 것을 항상 강조하셨던 분이기에
근처 모텔로 데려갔다. 사귀기 전에도 한 번도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기에, 난 아무런 생각도 안들었다.
그냥 침대에 던지듯 눕히고, 답답해보이는 옷만 제거(?)하고, 이불을 덮고 편의점에서 속풀이용 음료나 사오려고 했다.
편의점에서 나오면서...내 주머니에 들어있던 걔 핸드폰을 열어보니...정말 신기했다.
09년까지 찍었던 모든 사진들이 옮겨져 있었다. 문자도 말이다.
또 내 이름은...닭살이겠지만 99를 누르면 단축번호로 전화가는 그 이름...MD였다.
My Destiny의 약자였다. 그리고 난 그걸 보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영어편지에 썼던 첫 글자가 To. My Destiny였으니까..
뭐 그날 밤이 지나고...
난 다시 그녀와 사귄다.
처음의 설렘은 아니지만, 이제는 세월이 깊게 박힌 나이테같은 사랑이 되었다.
그윽한 향기를 가진 그녀가 다시는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술먹고...그냥 이런 저런 얘기 친구들이랑 하다가...종종 폰으로 눈팅하던 오유에서
연인 이야기가 자주 나오길래..나도 올려보고 싶었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