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아쉬운 결말은 제쳐두더라도 관객 몰아가는 솜씨 하난 빼어났죠. 오늘은, 연기나 연출, 시퀀스의 개연성 얘긴 잠시 미뤄두고 얽히고 설킨 관계와 욕망의 인간군상들에 대해 얘기해보려구요.
이 영화의 명대사는, 저 말빨 뛰어난 하정우의 '폭파하시라고'도 아니며, 쥐락펴락 갖고놀던 이다윗의 '사과하세요'도 아니다. 다름아닌, 이경영의 '끝나고 한잔하지'.
퇴장과 함께 짧게 치고 빠지는 저 대사 한줄에, 겉치레, 가식, 영혼없는 위로, 지키지도 않을 약속 등등의 온갖 욕지기를 일으키는 여러 의미들이 담겨있지만 이 허무한 한문장의 진가는, 갑질로 떡칠된 이 영화에, '넌 이제 그 갑질마저 쓸모없게 된 무가치한 존재다' 란것을 매정히 알려주기 때문이죠. 이렇게 비정해요, 사회가.
갑과 을이 교차되는 순간, 관객은 짧은동안, 환멸감과 동시에 묘한 희열을 느낍니다. 그니까 마포대교 폭탄이 터지기 전의 갑이 윤영화라면, '장난치지말고 한번 해보세요 씨발놈아'와 폭탄 터진 후에야 박노규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필요한 존재 즉, 갑이란걸 깨닫고 '선생님'을 남발하며 거짓 '을'질을 하는 윤영화는, 이해관계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게 굉장히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저마다의 욕망에 충실하는건데 그게 뭐가 나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때 얘기. 지키지도 않을 약속은 뒷통수 쳐 깨뜨리고 이용만 한 채 치고 빠지니 사람 얼마나 못되쳐먹었나요. 생존의 문제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여기에 쓰면 안됩니다. 그건 너무 과도한 물타기인게, 어쩔 수 없이 죽을 위기에 처한 윤영화와 박노규를 제외한 전부는, 다 한 몫 챙겨볼려는 사람들 뿐이지, 생존의 문제까지 끌고 들어갈만큼 절박함이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생존을 위한 갑질?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영화를 보고있노라면 마치 수산시장 꽃게바구니마냥 누구도 서로 올라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거나 자기는 피해 안보고 남 짓밟고 올라갈 생각들만 가득합니다.
이 영화의 호흡이 남다른 이유는, 변명연기의 지존 하정우의 연기도 연기지만 말도 안되게 사방에서 쏟아지는 갑질들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없는 갑의 미션들에 을은 선택, 선택 그리고 다시 또 선택을 하고 그 와중에 좌절과 공포, 분노 아주 약간의 안도감 같은 을의 정서들을 쉴새없이 몰아치기 때문에 이 영화는 특유의 호흡을 경주마처럼 속도감 있게 가져갈 수 있었던게 아닌가싶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을에게 상대적으로 공감을 하게 마련이고, 이 영화의 전략은 영원한 갑은 없다란 어줍잖은 위로를 하기보단 갑질 그득한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을'들의 분노를 질주시키죠.
갑질로 떡칠된 영화를 보고나니 문득 기억난 한마디가 있습니다. 영원한 갑은 없으니 갑질 적당히 해라란 말.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그러죠. 업보. 카르마. 그외 등등.. 영원히 칼자루 쥔 사람은 없다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을의 능동적인 선택으로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상하관계를 박차고 테이블 뒤엎을 용기와 객기가 있는 을의 경우에나 한하는 말이니까요.
영화가 보여주듯, 계속 그렇게 살건가? 라는 질문을 이 땅의 을들이 스스로 묻기엔 세상은 혹독하게, 쉴새없이 몰아붙입니다. 욕심에 따라, 나를 둘러싼 거의 모든게 세상이 갑일 수 도 있어요. 심지어 윤영화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내조차도 윤영화가 사랑과 재혼을 구걸해야하는, 상대적 갑으로써 존재하고 그렇게 갑질을 하고 있는걸 봐도 그렇죠. 이렇게 정신없는 갑질에 지쳐있는 을들은 때에따라 갑이 되고 그렇게 된 을들은 그리도 신물난 갑질을 과연 안할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배운게 도둑질이라 갑질을 하는게 대다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그런 을들의 정신적인 상태는, 아직도 '을'을 덜벗어난 수준으로 밖엔 안보입니다.
사회 통념이 그렇게 썩어빠진 상하관계라는걸 인지함에도 그걸 바꾸려는 노력은 커녕 기류에 편승해 더 한짓을 하면 했지 덜하진 않겠단거니까, 이들은 겉보기 혹은 일차원적으론 상대적 갑일지 모르나 결국 거대담론의 정신적 노예를 못벗어난 셈이지요. 발버둥쳐봐야 을 중의 갑인 것입니다.
맞는 말이라고는 합니다. 그러면서 패러다임을 바꾸는게 쉬운 줄 아느냐, 모난 돌에 정맞는다, 낭중지추 같은 말들을 허울좋게 늘어놓지요. 근데 저한텐 그말들이 아직도 갑질에 쫄아있단 말로 밖엔 안들립니다.
그렇게 평생 을로만 살다 가는거죠.
영원한 갑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을은 있을 수 있어요. 이런 을들 때문에 자꾸만 갑과 갑질이 늘어나는겁니다. 갑이 을에게 종용하는게 아니라 을이 갑을 만드는겁니다. 영원한 을은 그렇게 영원한 갑을 만들죠. 영원한 갑은 없게 좀 하자구요.. 그니까 갑 될 생각 하지말고 쫄지맙시다.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