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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영웅, 레클리스
게시물ID : military_602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나의20년
추천 : 13
조회수 : 176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5/12/11 01:58:04
 
한국전쟁 전에는 아침해라는 경주마로 활동하였고, 한국전쟁 중에는 탄약 운반에 어려움을 겪던 미 해병 에릭 페더슨 중위가 마부에게 250달러를 주고 아침해를 데려와 포탄과 탄약을 나르는 군마로 만들었다. 당시엔 산악지형 고지전투가 많아 차량으로 탄약보급이 어려웠다.
 
보통의 말들은 찢어지는 폭음과 총소리에 겁을 먹고 도망치는데 반해 아침해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1953년 3월, 5일 동안 계속된 중공군 120사단과의 고지전인 네바다 전초전투 때에는 단 한번의 길안내를 받고서는 혼자서 보급기지에서 산 정상까지 386회 왕복에 4톤 무게의 탄약을 공급하였다. 당시 포탄이 터지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탄약을 실어 나르는 아침해의 그런 용감한 모습을 보고 해병 동료들은 Reckless(무모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 그때부터 아침해는 해병마 레클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레클리스는 이름 그대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400kg 밖에 안 되는 몸집으로 전장에서 수없이 탄약더미를 나르며 해병들을 지원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미해병대는 레클리스를 미국으로 데려갔고, 레클리스는 캘리포니아 해병대 1사단 본부에서 지냈다. 이때 적군의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레클리스의 용맹함이 해병대 1사단장에게 알려지면서, 1959년 미군 역사상 최초로 말에게 하사관 계급을 부여하였고, 이듬해에 성대한 전역식을 치르며 은퇴하였다. 레클리스는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로를 인정받아 생전에 퍼플 하트 훈장, 선행장, 미국 대통령 표창장 등 각종 훈장과 상을 수여받았다. 1968년 레클리스가 죽자, 미 해병대는 성대하게 군 장례로 치러주었고 캘리포니아 해병 1사단 본부 내에 레클리스를 매장하였다.
 
 
레클리스 1.jpg
 
레클리스 4.jpg
 
레클리스 3.jpg
 
sgt-reckless.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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