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음속에 품어 오고 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적는거고
구두로 전해 들은 말을 글로써 적다보니 실제 대화체가 아니어서 오글거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학 때 만난 친구 한명 중에 소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차를 보유할 정도로 집도 여유 있는 편이고 평소 행동이나 생활 패턴이
소와는 개연성을 찾아보기 힘든 친구였다.
수업 땡땡이도 많이치고 필 받으면 한밤중이라도 다 팽겨치고 바다로 날아갈 정도로 무식하게 놀기도 많이 놀고 하면서
주말 이나 방학때 각각의 친구들 집을 한번씩 방문하면서 부모님께도 인사도 드리고 친구가 살아온 환경도 둘러보고
겸사겸사 나름 좋은 시간을 갖기도 했었는데, 당시 한 친구의 집에서 소를 키우고 있었다. 두 마리
소를 본 한 친구녀석이 아무 꺼리낌 없이 여물도 주고 볼도 쓰담쓰담 해주면서 얼굴엔 아빠미소를 하고 있었다.
이 친구가 소를 좋아하는 친구이다.
보통 일반적인 경우 다는 아니겠지만, 소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소똥냄새라던가 소우리의 외관 모습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는 편일 것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댁에서 키우던 소를 봐오던 나 또한 그때까진 그랬었다.
그러면서 날이 저물고 술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소에 관해서 물어보게 되었다.
나 : 아까보니 소 좋아하는것 같더만... 안 무섭나? 처음 보는거 아니가? ㅋㅋ
친구: ㅋㅋ 나 소 좋아한다. 나 아주 어릴때 큰 할아버지 댁에서 키우던 소하고 많이 놀아 봤다
나 : 아 그래? 난 시골 근처에도 안가본 도시촌놈인줄 알았더만..ㅋㅋ
친구: ㅋㅋㅋㅋ 방학때나 한번씩 다녀오고 그랬음.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사시던 곳도 다 정리한 상태라 갈 일도 이제 없다
...
친구: 내가 소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이야기 해줄까? ㅋㅋ
나 : 어, 뭔가 있나? ㅋㅋ
친구:
여름 방학 때 한번씩 큰할배댁에 가서 곤충도 잡고 방학 숙제도 하고 뭐 그러면서 종종 놀았는데
큰할배가 소 데리고 들판에 풀멕이러 한번씩 가시는데 같이 따라가고 그랬었거던
한날은 할배한테 그랬지 오늘은 내가 소데리고 가서 풀멕이고 와도 되냐고..
할배가 하늘 한번 스윽 보시더니...
'오늘 비온다켔는데... 금세 올것 같지는 않으니 너무 오래는 있지말고 한두시간만 있다 오너라'
그래서 넵 하고 좋다고 소 고삐잡고 끌고 나갔더랬지..
좀 나가서는 소가 길을 아는지 앞장서서 나를 끌고 가더라고
아니지 고삐를 잡고 있었어서 끌려감 ㅋㅋㅋ
할아버지가 매번 풀을 멕이는 개울가 옆 뜰에 자리 잡고 그러고 있는데,
개울 건너편에 보니 싱싱한 풀이 엄청 많은거라
그래서 소 더 좋은 풀 많이 먹게 해줄려고 개울을 건너 가보자 했지,
개울에 보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자주 다니다 보니 다니기 쉽게
나무판 같은걸로 이어놔서 그냥 길가듯 편하게 건넜어.
소도 싱싱한 풀들을 보니 좋았는지 와구와구 잘 먹더라고 ㅋㅋ
그러고 한시간쯤 지났나..? 조금씩 하늘이 어둑해지고 빗방울이 서기 시작하는거야..
그래서 에이 나온지 얼마 안됐는데 가야돼나
싶어서 밍기적 밍기적 거리고 있는데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지.
안돼겠다 싶어서 돌아가야겠다 하고 소를 데리고 아까 건너온
보 쪽으로 갔지... 그런데 보가 안보이는거야..
'어? 지나쳤나'
싶어 다시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안보이고 분명 이쯤이었는데 하고
가만히 보니 개울물이 아까 보다 많이 불어나 있는것을 알아챘지..
그래서 아..잠겼나보다 하고 기억을 더듬어 가보니 물아래 보가 보이는거야
'아 ㅅㅂ 잠겼네 큰일났다. 어떡하지? 집에가야하는데 할배 걱정할낀데...'
더 있다가는 물이 더 불어서 완전 오도가도 못할 것 같고
아직 물 아래 보가 보이는 상황이라서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지금이라도 건너가야겠다 했지.
물살이 생각보다 강했지만 소도 처음엔 머뭇머뭇 뒷걸음질 치더니
내가 앞에서 살살 고삐 잡아 끄니깐 따라 오더라고..
그래서 소와 소의 고삐에 의지한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가서
보의 1/3 지점을 지날때쯤이었나.. 갑자기 발이 쑥 빠지면서
앞으로 넘어지며 손에 쥐고 있던 고삐도 놓쳐버렸어.
그러면서 물살에 휩쓸리면서 보 아래로 쓸려 내려 간거야.
물이 불어 나면서 보 틈사이 위에 걸쳐놓은 나무판도 떠내려 갔는지 그 사이로 쑥하고 빠진거지 ㅋㅋㅋ
너도 알다시피 보 아래쪽은 물살에 땅이 패여서 깊잖아.
완전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나왔다하면서 허둥지둥 하고 있었지.
와 그땐 진짜 이대로 물에 빠져 죽는구나 하고 정신 없는 와중에도
이런저런 생각 다 떠오르면서 그러고 있는데...
손을 막 허우적 대고 있었는데 손에 뭔가 잡히는듯 한거야..
그래서 그쪽으로 좀 더 손을 더듬 더듬해보니 밧줄 같은게 잡혔어
진짜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꽉 잡고 안 놨지.
그랬더니 점점 그 줄쪽으로 몸이 끌려가는 거야, 순간
'아.. 누가 지나가다 나를 구해주려 줄 같은걸 던졌나보다..' 하고
안도하며 의지한체 끌려나가 물가에 다다르서야 정신을 챙기면서 둘러보니
사람은 뭐 고사하고 소랑 나만 덩그러니 있는거야
정신도 없고 어찌된 영문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찌돼었든
아.. 너도 무사히 건너왔구나 다행... 라고하면서, 문득 줄 잡은게 떠올라서
손을 봤는데 내가 꽉 움켜쥐고 있던 그게......
소 꼬리 였어...
ㅅㅂ 갑자기 폭풍눈물이 나더라 ㅋㅋ
그래서 한동안 소 부둥켜 안고 울었어
고맙다고...
살려줘서
그땐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물에 빠져서 허우적 대고 있을때 뭔가 첨벙하는 듯한 소리? 느낌 같은게
들었는듯 했는데...아마 그때 소가 물에 빠진 나를 보고 물속에 뛰어들었나봐
그러곤 나에게 자기 등을 내준거지... 잡으라고
집에 돌아가서 할배한테도 방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할배 저 소 팔지마, 절대 팔지마... 팔려거든 나한테 팔아 내가 나중에 돈 벌어서 살테니깐...'
울먹이며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 했지 ㅋㅋ
그 때부터였다. 소를 좋아하게 된게...
말 나온 김에.. 너그한테 처음 이야기 하는거지만 나 지금 아버지 설득중이야 재수하려고
그래서 축산 관련 학과를 갈려고... 그러고 졸업해서 최종 목표는 축사하나 운영하는거다 ㅋㅋ
초목이 풍성한 넓은 들에 축사하나 지어서 방목하면서 키울라고..
그때 소똥치러 함 온나ㅋㅋㅋ
그때 그 소 결국은 팔았어..ㅋㅋ 뭐 바로 판것은 아니지만..
그날 이후 한 5년 지나서 즈음인가
할배도 안팔라고 했는데 급전이 필요해서 팔 수 밖에 없으셨다더라..
그래서 그 소한테는 못해준거 다른 소들한테 해줄라고 ㅋㅋㅋ
...
지금 이 친구와는 연락이 끊겨 근황은 알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었을 때 나눴던 대화가...
나 : 살아있나?
친구 : 재수중이다 ㅋㅋㅋㅋ
나: 오~ 진짜가 열심히 해라 ㅋㅋ
친구 : 다시 공부할라카이 대굴빡이 안돌아가네 ㅋㅋ
나: 잘 돌아가게 해줄까? ㅋㅋㅋ
친구 : 뭐 ? 우째줄낀데?ㅋㅋㅋ
나 : 우리집 소키운다 ㅋㅋㅋㅋㅋ
친구 : 헐, 와 진짜가...아.. ㅈㄴ 부럽네
나 : 뭐 내가 키우는건 아니고... 아버지가 ㅋㅋㅋ
친구 : 그래도... 구경 함 가도 돼나? ㅋㅋ
나 : 와라, 재수 마치고ㅋㅋㅋ, 얼마전 송아지 놨는데 ㅈㄴ 귀엽다
친구 : 염장지르지 말라..ㅋㅋㅋ ㅅㅂ 공부할끼다
나 : 나 좀 멀리 나간다.. 해외로
친구 : 뭐할라꼬? 걍 짱박혀 있지? 완전 가는기가?
나 : 아이다, 나갔다 다시와야지 ㅋㅋㅋㅋ 갔다 와서 보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