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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史
게시물ID : history_111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몬맛젤리.
추천 : 3
조회수 : 897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8/15 13:50:23

Kim_Sowol.jpg

시인. 평안북도 구성 출생. 본관은 공주. 본명은 정식(廷湜). 아버지는 성도(性燾), 어머니는 장경숙(張景淑)이다. 2세 때 아버지가 일본인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되어 광산업을 하던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고 성장하였다. 사립인 남산학교(南山學校)를 거쳐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에 다니던 중 3 · 1운동으로 폐교되자 배재고등보통학교에 편입,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동경상과대학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9월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였다. 오산학교시절에 조만식(曺晩植)을 교장으로 서춘(徐椿) · 이돈화(李敦化) · 김억(金億)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 특히 그의 시재(時才)를 인정한 김억을 만난 것이 그의 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문단의 벗으로는 나도향(羅稻香)이 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광산 일을 도우며 고향에 있었으나 광산업의 실패로 가세가 크게 기울어져 처가가 있는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에서 동아일보지국을 개설, 경영하였으나 실패한 뒤 심한 염세증에 빠졌다. 1930년대에 들어서 작품활동은 저조해졌고 그 위에 생활고가 겹쳐서 생에 대한 의욕을 잃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34년에 고향 곽산에 돌아가 아편을 먹고 자살하였다.

진달래꽃

시(時). 1922년 〈개벽〉에 발표한 처녀작. 시집명(時集名)이 될 만큼 많은 사람에게 애송된 대표작의 하나. 주제는 이별.
「나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4연 3행으로 된 이 시의 첫 연에서, 먼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예상하고, 그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했다. 만나자 이별을 예상하는 점, 만류나 반발 대신 고이 보내 주겠다는 점에 동양적인 체념이 엿보이지만 한편으론 님의 태도 여하와 관계없는 절대적인 사랑이 나타나 있다.
2 · 3연에서는 이런 태도를 발전시켜, 유명한 약산의 진달래를 꺾어다가 길에 뿌릴 터이니 그것을 밟고 떠나가라 한다. 이것은 이별의 슬픔을 축복으로까지 승화시킨 것으로, 그만큼 그 곳에 담긴 비애가 커 보이기도 한다. 이런 비애는 끝 연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에서 절정에 이른 느낌이 없지 않다. 눈물을 아니 흘리겠다는 것은 눈물을 흘리겠다는 것보다도 더한 비애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우리가 전통으로 이어 받은 서글픈 정서를 소월이 솜씨있게 표현해 보인 작품이며, 그가 민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점에서 민요시인이었다면, 그 본보기가 될 만한 시(詩)다.


초혼

발표연대 미상. 전 5연, 1연 4행으로 된 시. 그의 시 중에서 드물게 보는 격정적인 작품이다. 원래 초혼이라는 말은 고대중국의 풍속과 관계가 있다. 그들은 사람이 몹시 놀라거나 슬픔에 부딪치면 그 혼백이 몸에서 떨어져나간다고 믿어 무당을 시켜 넋을 부르는 의식을 올렸던 것이다. 《초사(楚辭)》에 나오는 송옥(宋玉)의 《초혼》이라는 시는 바로 이것을 다룬 것이다. 그러나 소월의 《초혼》은 산사람의 혼이 아닌 죽은 사람의 그것을 부르는 뜻이었던 모양이다.
제4연의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같은 표현이 그것을 보여 주며, 전체의 시귀(詩句)가 불러도 돌아올 가능성이 전무한 절망으로 차 있다. 여기에 반복되는 「이름이여!」, 「사람이여!」의 이름과 사람이 누구를, 혹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꼭 집어 말하기 어렵다. 소월이 그렇게까지 사랑한 사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떤 특정인은 아닌 것이 확실하며, 굳이 잃어 버린 조국이라 해도 무방하겠으나 요컨대 자기의 비애를 잃어 버린 애인에 가탁(假託)하여 호소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격정적인 데다 리듬이 명쾌하므로 오랜동안 애송되어 왔다.


엄마야 누나야

단시(短時). 발표연대 미상. 비교적 초기의 것으로 추측되는 4행으로 된 시. 내용도 자연에 대한 강렬한 동경을 노래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능숙한 언어구사로 완벽한 음악화에 성공한 작품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1행과 4행에 반복되는 이 음악적인 호소는 이 시의 핵심이며, 그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여기에서 「어머니」 · 「누님」하는 일상용어 대신 어린이의 말투인 「엄마」 · 「누나」가 쓰였고, 호격조사(呼格助詞)에 있어서도 갓난애의 말인 「야」가 사용되었음이 주목된다. 또 「강변」이라는 낱말의 밝은 음향, 「살자」라는 반말 같은 것이 모두 인위적인 허식을 털어버린 천진하고도 솔직한 호소이어서 이 시가 많은 독자를 사로잡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보여진다. 하여간, 자연을 노래한 소월의 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짜여지고 음악화에 성공한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산유화(山有花)

발표연대 미상. 전4연, 1연 4행으로 된 시. 자연에 대한 사랑이 주제.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갈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 이 제1연에서는 하늘에서라도 부감하는 듯 영원의 위치에 서서 자연을 관조(觀照)한다. 가을 · 봄 · 여름을 가리지 않고 피어 있는 꽃, 그것은 언제나 불변하는 산의 영원상(永遠相)이다. 그러나 사람은 영원 속이 아닌 시간에 사는 처지기에, 제2연에서는 눈 앞에 있는 구체적인 꽃으로 시야를 돌렸다.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이것은 순간에서 파악된 꽃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는 고독한 꽃이며, 언젠가는 스러져야 하는 가련한 개별자다. 1 · 2연의 이러한 영원성과 순간성의 대조가 이 시에 깊이를 주고 있다.
제3연에서, 거기서 울고 있는 새들은 산이 좋아서 늘 거기서 사는 것이라고 하여 산중에서 사는 작가 자신의 심경을 은근히 나타냈고, 제4연에 오자 다시 영원의 위치로 돌아가 산에서 언제나 지고 있는 꽃을 노래하며 전체를 맺었다. 제1연이 꽃이 피어 있는 모습, 즉 꽃을 그 실(實)의 면에서 다룬것이라면 끝연은 그 허(虛)의 모습을 보인 것으로서 이 시가 일말의 애조(哀調)를 띠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라 하겠다. 어쨌든 소월이 자연을 노래한 시 중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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