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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보육교사입니다.
게시물ID : baby_60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이다
추천 : 21
조회수 : 1434회
댓글수 : 16개
등록시간 : 2015/02/10 09:08:32
이번 주 무도를 보며 태호PD는 진정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을'들의 전쟁, 아니 '병', '정'의 전쟁이라고 해야할까요. 해결이 나지 않을 것이 뻔한 싸움, 싸우고 있는 그들이 아닌, 판을 만든 이들만이 웃을 수 있는 싸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어린이집과 부모의 싸움도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 전직 보육교사입니다. 7년을 어린이집에서 살았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또 많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지요.
 어린이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 아십니까? 민간, 가정, 국공립, 법인, 부모형동, 직장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합니다. 그 중 저는 무려 4가지 형태의 어린이집을 다녀보았습니다. 국공립에서 1년, 가정, 법인에서 각 6개월, 직장 어린이집에서 5년을 지냈습니다.
 
 국공립에서는 평균 13시간을 일했습니다. 새벽에 나가 밤에 집에 들어가야했지요. 제 일을 다해도 원장이 퇴근을 안하면 퇴근할 수 없었습니다. 뿐입니까. 아이들과 놀이하려고 하면 불러냅니다. 공동일 하라고. 왜 놀고 있냐고. 왜 노냐고요. 아이들과 놀이하는 것은 교사가 할 일 없어 하는 행동인가요. 저녁 식사는 2일에 한 번 정도 줍니다. 김밥 한 줄과 딸려나오는 장국. 그것도 감사하라고 말하더군요.
 
 초임이기 때문에 경력에 흠집 내기 싫어 1년을 버티고 교회 법인으로 옮겼습니다. 놀랍게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놀이 시간에는 교구를 만들어야해요. 매주 회의 시간에 있는  교구 평가회에 제출해야하거든요.  아이들과 놀이하고 싶지만 이것을 만들지 않으면 회의시간에 원장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너무 뻔합니다. 퇴근하고 만들면 되지 않냐고요? 6시 이후에는 매달있는 행사. 그거 준비를 해야지요. 야근하며 저녁 시간에 배가 고프다고 원장에게 말하면 '선생님. 나 때는 굶으면서 일했어. 컵라면 먹어' 처우 문제 때문에 견디다 견디다 못해 6명의 선생님 중 4명이 1학기 마치고 나왔습니다. 엄마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시청 직원은 그냥 덮으려고만 하더군요.   
 
 다음에는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가정 어린이집에 들어갔습니다. 18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닭 한마리로 나누어 밥을 먹이는 곳이였지요 사진을 찍어 증거를 확보해뒀었지만 그 동네 보육담당 공무원과 식사하는 사이더군요. 원장이.
 
 다음 해에 직장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학부때 꿈꾸었던 그런 환상적인 곳이더군요. 국가에서 정해준 비율의 반도 안되는 아동수. 넘쳐나는 교구자료, 보육전문가인 교사들. 원장님. 그 사이 나도 모르게 몸에 익어버린 다소 강압적인 상호작용을 벗는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습니다.  하지만 안 벗을 수가 없었지요. 원장님이 지켜보고 있고 동료교사들이 지켜봅니다. 서로가 서로를 평가합니다. 수준에 못 미치는 교사는 버틸수가 없습니다.  마음 깊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선생님들의 프라이드도 많이 높지요. 물론 가끔씩 엄마들의 말에 상처입기도 하고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를 교사라고 불러도 사회는 우리를 서비스직으로 여긴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면 많이 아프기도 했지만요.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던 저와 그 이전의 저는 다른 교사였습니다. 이전에는 아이들과 놀아준 시간이 하루에 1시간도 안되었다면 이제 아이들과 놀이하지 않는 시간이 1시간이 안됐지요. 낮잠 시간 뺀 모든 시간이 아이들과의 놀이였습니다. 낮잠도 놀이같았습니다. 친구들을 토닥여 재운 후 마지막까지 눈뜨고 있는 친구 옆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하다가 아이의 눈이 감길 때쯤 '잘 자~'  '응. 선생님 잘자' 말하며 서로 안고 잠들었으니까요..
 
  저는 강압적인 교사였습니다. 아이들과 놀이하기 보다는 명령하였고 말을 듣게 하기 급급했습니다. 아이들이 말을 빨리 들어야 12시 전에 퇴근하니까요. 저는 사랑이 많은 교사였습니다. 아이들과 미용실 놀이할 때면 내내 손님역을 맡을 정도로요~. 그 덕에 머리 숱이 많이 줄었습니다.
 
 왜 그렇게 달랐을까요. 처우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직장 어린이집에서는 연차를 당연히 쓸 수 있었습니다. 초과 수당이 지급되었고 월급 또한 많이 높았습니다. 배 곯으며 일하는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CCTV요? 6개월 다녔던 법인과 가정 어린이집에는 CCTV가 있었습니다. 직장 어린이집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원장의 마인드가 달랐습니다. 교사에게 있어 최우선은 아동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거든요.
 
 어느 사이트 어린이집 카테고리에 들어가보았습니다. 30개월 조금 넘은 아이가 원은 옮긴지 3달째인데 너무 과격하게 감정 표현을 한다는 글에 'CCTV확인해라', '선생이 과격하게 아이를 대한 것 같다', '불안해서 어찌 어린이집 보내겠냐', '집에 있으면서 왜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냐', '일하는 엄마만 보내라는 법 있냐. 육아 스트레스는 어떻게 할꺼냐', '그러면 왜 애는 낳았냐'  '낳으면 키워준다며', '보육교사가 친정엄마냐', '남편은 뭐하고 엄마만 애를 키우냐'
 
 엄마가 교사를, 교사가 원장을, 워킹맘이 전업주부를, 전업주부가 남편을...  모두 뒤엉켜 할퀴고 물어 뜯고 있습니다. 이 싸움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끼리 치고 받고 하다보면 무엇이 변할까요.
 
 이번주 무도가 기다려집니다. 부디 그 사회에서 만큼은 '을'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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