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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선택에 따르는 고통
게시물ID : panic_560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심해로의여행
추천 : 24
조회수 : 4755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3/08/16 16:46:16
선택에 따르는 고통
내가 대학교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않았을때였다.
당시 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처음 겪어보는 대학생활에 신선함 반 두려움 반으로
어리버리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같은과 친구 민석에게 소개팅 제의가 들어온것은.
당시 여자친구라는건 귀찮기만 할것이라 여겼던 나였기에 거절했지만..
녀석의 필사적인 메달림에 결국 마지못해 승낙했다.
대충 밥이나 한끼 먹고 헤어질 심산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개팅에서 처음만난 그녀는 김지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학교 학생이었는데,
이성의 대한 무심한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얼굴이 그렇게 미인인것도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대화를 하면할수록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사이처럼 친근하고 평온했다.
그녀도 내가 싫진 않은 모양이었는지 우리는 자연스럽게 번호를 교환했고
두어번의 만남을 통해 결국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핑크빛으로 보내던 어느날이었다.
그날은 우리가 만난지 100일이 되는날인데다가 그녀의 생일까지 겹쳐있었다.
때마침 오전 수업밖에 없었던 난,
저녁에 그녀를 위해 작은 이벤트를 위해 기숙사가 아닌 집으로 향했다.
기숙사에 있는 옷들은 전부 빨아버렸기에 이참에 집에있는 옷들중 괜찮은것을 챙겨올 심산이었다.
때마침 쨍쨍했던 하늘이 회색빛으로 물들며 비를 쏟기 시작했고,
난 우산이없어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던 도중 난 전날 술을 많이 마셨던 탓인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오늘 조금 일찍 보고싶어 우리 학교앞에 도착했다고 했다.
난 최대한 빨리 갈테니 카페에 앉아서 커피한잔 하고 있으라고 전화를 끊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난 부랴부랴 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비는 더욱 거세져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이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난 어쩔수없이 택시를 잡기위해 집앞 편의점 앞 큰길에 서서 택시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10분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난 택시를 잡아 탈수 있었다.
그런데 비가와서 그런지 어느순간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난 괜시리 여자친구가 걱정되 조금 늦을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기위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11시 30분 부재중 전화 1통. 민석'
액정에 떠있는 부재중 전화에 난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무슨일이야?' 라고 입을열었을때 수화기 너머에선 내가 아는 민석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남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내게 전해주었다.
민석이 뺑소니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저장되있는 번호의 사람들중
누구와도 연락이 닿질않아 걱정이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교통사고를 목격한 사람중 하나가 민석을 병원으로 데려간 모양이었다.
지금 OO병원 이라는 말에 난 내가 그리로 곧 가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서둘러 민석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받지않으셨다.
마음이 조급했던 난 택시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차가 밀릴땐 지하철만한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난 정말 인간이 낼수있는 최고의 스피드로 민석의 집에 도착했고
민석의 집앞에서 동네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민석의 어머니를 발견할수 있었다.
그녀는 집에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고 했다.
민석의 어머니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무섭게 그녀와 난 택시를 잡아타고
민석이 있다는 병원으로 향했다.
하늘이 도운것인지 때마침 거리는 뻥 뚫려 차가 밀리는 일은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다행히 빠른 시간안에 도착할수 있었고 민석은 무사히 수술실로 들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2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담당의사에게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민석의 어머니와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긴장이 풀린탓인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던 난 문득 여자친구가 생각났다.
그리고 무심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을 꺼내자
배경화면에 14통의 부재중 전화와 1통의 문자메시지가 와있었다.
-12시 40분 여자친구-
-12시 41분 여자친구-
-12시 42분 여자친구-
-12시 43분 여자친구-
-1시 29분 지현-
-1시 30분 지현-
-1시 31분 지현-
-1시 49분 지현-
-1시 58분 지현-
-2시 07분 지련-
-2시 10분 지현-
-2시 11분 지현-
난 여자친구가 1분 간격으로 4번의 전화를 했고,
그녀의 친구중 안면이있던 지현이 여자친구의 마지막 전화 이후 40분후부터
10통이나 걸었다는걸 알수있었다.
민석의 사고 소식에 정신이 없었던 터라 휴대폰 진동을 못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한통의 메시지....
그것은 여자친구가 보낸 메시지였다.

[12시 18분 : 오빠ㅏㄴ;ㅏ;칼ㅔㅉ찔ㄹㅕㅅ썻,ㅣ;]
오타가 심하게 나 있었지만 난 여자친구에게 무슨일이 생겼다는걸 직감적으로 알수있었다.
애초에 부재중 전화만 보더라도 충분히 유추할수 있는 생각이었다.
빠르게 그녀에게 번호를 입력한다.
그러나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무심한 기계음만 들릴뿐이었고,
난 지현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상황과 어울리지않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얼마안있어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빠 왜 이제서야 전화를해요!! 지연이가...지연이가...흐흑..."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건 그녀가 까페 화장실에서 누군가의 칼에 찔려...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참담한 모습을 발견한 종업원이 내가 민석의 사고로
정신이 없는와중에 전화를 걸었던 거였고, 이후 지현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소식을 들은 지연이 이후 내게 미친듯이 연락을 한것이었고.
그리고 여자친구의 오타 투성이인 문자는 아마 칼에찔려 죽어가는 그 시간속에서
내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눈앞이 캄캄하다.
이럴순 없었다.
하루아침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지?
왜 내게 이런 몹쓸...
어지럽다.
현기증이난다.
몸이 마치 달리는 차안에 있는것처럼 들썩거린다.

"손님!!? 손님!!"
'헛!'
난 헛바람을 들이키며 잠에서깨어났다.
거세게 내리고있는 빗방울이 차창에 부딫히며 주륵주륵 흘러내린다.
꿈이었단 말인가? 이렇게 생생한게 꿈이라고?
난 멍하니 잠에 취한듯 몽롱한 상태로 창밖에 내리는 빗물을 보고있었다.
"손님!! 어디까지 가시냐구요!!!"
귀를 찢어발기는듯한 택시기사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심코 집으로 가주세요 라고 말하려던 나는 조금전 경험한 기이한 경험에
'죄송합니다' 하고 차에서 내렸다.
덕분에 몰아치는 비를 쫄닥 맞아야 했다.
대충 급한대로 근처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간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조금전 경험으론 내가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그녀에게 학교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게된다.
우리집까지의 거리는 택시로 30분.
그녀의 집이 우리학교에서 1시간 거리인걸 감안한다면 지금쯤 그녀는
이미 출발해서 이쪽으로 오고있을터.
난 재빨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 조차 느리게만 느껴진다.
이윽고 그녀의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지현아 너 혹시 지금 우리 학교로 오고있어?" 란 내 물음에
"어떻게 알았어? 이제 거의 다와가. 놀래켜주려했는데..." 라는 그녀의 대답이 이어졌다.
시발.
나도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꿈이랑 똑같다.
그리고 내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꿈에서 내가 민석의 부재중 전화기록을 봤을때 분명 11시 30분이었고,
그걸 내가 확인한건 11시 40분이 넘어서였다.
그건 이미 민석이 사고를 당하고 누군가가 병원에 옮긴뒤에 걸려온 전화.
즉 민석이 사고를 당하는건 그 전일것이다.
여자친구가 죽어가면서 내게 문자를 보낸 시간은 12시 18분.
그리고 그 이후 종업원이 발견해 전화를 걸어온것이 1시 반쯤인것 같았다.
종합해보자면 지금 급한건 여자친구보다 민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이 몇시지?
수화기를 떼고 시간을 확인한다.
'10시 51분'
'신발!!'
"왜 아무말도 없어? 실망했어?" 라는 여자친구의 말에 나는 그녀에게
"집으로 당장 돌아가있으면 내가 가겠다" 고 대충 둘러된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자친구가 사고를 당하는 시간은 12시가 넘어서다.
지금은 무엇보다 민석이 중요하다.
제발 아직까지 아무일도 생겨선 안돼!
난 떨리는 심장을 뒤로하고 재빨리 민석의 전화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낮은 민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어디야!"
"아 귀아퍼 받자마자 왜 소린질러 새끼야"
"빨리 급하다고 너 어디야!! 설마 밖이야?"
민석의 목소리 외에도 빗소리와 차들 소리로 민석이 밖이라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나? 지금 잠깐 뭐좀사러 나왔지 왜? 너 설마 나 대출해주기로한거 까먹은건 아니겠지..?"
"민석아 너지금 혹시 주변에 차들 많아!!? 가령 횡단보도라던가!!"
"뭔소리하는겨. 어라? 야 신호 바꼈다."
"안돼!!!!!!!!!!!!!!!!!!!!"
"아나 새끼 왜그래 진짜!"
"민석아 제발부탁인데 지금 그자리에서 멈춰!!
건너지말고 빨리 아무건물에나 들어가!! 제발 제발좀!!!"
"야.. 왜..왜그래 무섭게."
"제발 부탁이다 제발 제발..!!!! 내가 그리로 갈테니 그때까지라도 제발!!!"
"아.. 알았어..알았다고..아 너 뭔일있냐?"
뭔일있냐고 묻는 민석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울려퍼짐과 거의 동시에
누군가의 비명소리와 급정거하는 차량의 기분나쁜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설마... 민석아..설마..
"민석아!!!!!!!!!!!!!!!!!"
"어....어...지금...내 눈앞에서...사람이...차에.."
"민석아? 너 무사한거야!!?!"
"너.. 알고있던..거야...?"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일단 어디든 들어가있어! 알았지? 꼭이다 꼭!!"
떨리는 목소리로 알았다는 민석의 대답을 듣고나서야 전화를 끊을수 있었다.
역시 꿈과 똑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말 간발에 차이로 간신히 민석의 죽음을 막을수 있었다.
다른생명이 희생되버린건 의외였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0시 54분'
민석이 사고를 당하는 시간은 10시 54분이었던 것이었다.
이제 남은건 여자친구다.
12시 10분 이후에 칼에 찔린다 했으니 지금이라면 시간이 충분했다.
아직 시간은 1시간 이상이나 남아있었다.
미적지근한 한숨을 내뱉고는 대충 저렴한 비닐우산을 하나 사서 편의점을 나왔다.
도저히 지금같은 기분으론 집에 들렸다 올 엄두를 내지 못하겠던 난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
무작정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지금 가고있다" 는 문자를 보내고
무심하게 차창에 흐르는 빗물을 멍하니 바라본다.
대체 내게 왜 이런일이 일어난것일까.
지금껏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하늘이 내게 생명을 구할수있는 기회라도 부여해준것일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
여자친구의 집에 도착할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집에 가고있는거 맞지!?" 라는 물음에 여자친구는 많이 실망한듯 한껏 토라진 말투로
"가고있다" 고 했다.
'후, 다행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여자친구의 집 근처에 도착한 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 본다.
'11시 57분'
차가 밀리는것을 감안하면 그래도 제법 빨리 도착한 것이었다.
사망예정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난 서둘러 다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집에 가있으라며. 집앞 카페야 지금."
"카페라고!?"
난 여자친구를 데려다 줄때 가끔 들렀던 A카페를 떠올리곤 거기서 꼼짝말란 말과 함께
전화를끊고 택시에서 도망치듯 내렸다.
우산을 펼 정신도 없었다.
다른곳도 아니고 카페란다.
여자친구가 카페 화장실에서 끔찍한 봉변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오금이 저려왔다.
미친듯이 달려 A카페의 문을 열고 뛰쳐들어갔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따위 상관없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여자친구를 찾는다.
'12시 08분'
카페 한편에 대문짝만한 아날로그 시계가 내게 시간을 알려준다.
사고를 당한다면 지금 이 시간대가 분명할것이다.
여자친구가 보이지 않자 난 미친듯이 여자화장실이 있는곳으로 뛰었다.
"아 깜짝이야!"
"죄..죄송합니다. 제가 급해서.."
"오빠!!?"
여자친구를 찾겠다고 무턱대고 뛰어가다 부딫힌 사람은 다름아닌 여자친구였다.
그녀는 놀란눈으로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젖어있는 모습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남자를 정상으로 볼턱이 없다.
그건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는거지!??!"
"어..어어.. 오빠 왜그래! 무슨일인데!!"
"후....다행이다...다행이야..."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자친구는 울것같은 얼굴로 나를 계속 다그쳤고 난 별일 아니라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12시 10분'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들자 현재시각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발신자는 알수없는 모르는 번호였다.
한껏 지친 목소리로 "여보세요" 라고 전화를 받자,
무심한 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내는 내게 "미안하지만 둘다 살릴순 없어!" 라고 쏘아붙이곤 그대로 끊어버렸다.
그리고 전화가 끊기기 무섭게 민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내가 바랬던 민석의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흐느끼는 민석 어머니의 목소리만이 수화기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민석..민석이가...교통...사고로......으흐흑.."
"안돼!!!!!!!!!!!!!!!!!!!!!!!!!!!!!!!!!!!!!!!!!"
"아 정말 장난하세요 손님? 어디로 가실꺼냐구요!!"
"...네...네?"
익숙한 택시안 주륵주륵 내리는 차창너머의 빗방울들.
난 또다시 집으로 가기위해 택시를 잡아탄 시점으로 돌아와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하늘의 장난질이란 말인가? 난 또 꿈을 꾼건가?!
택시기사의 짜증스럽다는 말투를 뒤로한채 난 묵묵히 차에서 내렸다.
쏟아지는 빗물이 내 몸을 적셔간다.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났다.
"둘다 살릴순 없어" 라는 낯선사내의 말.
그 사내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두번째 꿈같은 현실에서 난 둘다 구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민석이 죽어버렸다.
이걸로 사내의 말이 사실이란건 이미 증명된것이나 마찬가지었다.
난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바라본다.
'10시 47분'
민석이 사고를 당하는 시간까지 10분도채 남지 않았다.
서둘러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설마 우리학교로 오고있어?" 라 묻자 예상대로
"어떻게 알았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택해야만 한다.
둘중에 누굴 살려야 하는건지.
지금 민석을 구한다해도 여자친구를 구해버리면 또다시 민석은 어떤 이유로든 죽을것이다.
낯선 사내의 말이 없었다면 민석을 구하고 여자친구가 도착하면 같이 움직이며
민석을 다시 구할생각이었겠지만 이미 내게 선택권은 주어진것이었다.
참으로 단순한 선택일 뿐이었다. 둘중 하난 죽는다는.
'10시 51분'
시간은 이제 5분도채 남지않았다.
친한 친구를 선택해야하는게 옳은걸까.
아니면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택해야 하는게 맞는걸까.
"신발!!"
입에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눈을 질끈 감는다.
애초에 어느 생명이든 소중한건 다 마찬가지다.
둘중 하나만 살릴수 있다니 이건 너무 가혹하잖아!
당장이라도 그 낯선사내자식을 찢어죽이고 싶었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것인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했던가?
지독히 잔인하게도 난 두 생명을 내 주관대로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10시 54분'
난 이미 선택했다.
그녀를 살리기로.
민석의 웃는 얼굴이 희미하게 스쳐지나간다.....
"미안하다. 민석아.. 네가 나였어도..."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 얼굴을 때릴 뿐이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당시 겪었던 일이다.
예상대로 그날 민석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여자친구는 무사할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가봐야 하는거 아니냐는 말에도 난 녀석의 장례식장 조차 갈수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학교를 자퇴하고 또한번의 수능을 치뤄 여자친구와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
그녀가 졸업하고 직장에 자리잡을 무렵 난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학교에 복학했고,
우린 사랑을 지속적으로 키워왔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달 나와 여자친구는 결혼했다.
어느새 민석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였고,
앞으로 여자친구와 행복할 미래만을 꿈꾸며 한껏 들떠 있었다.
달콤한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결혼식날 찍은 사진들을
앨범에 차곡차곡 끼워넣고 있었다. 그리고 난 민석을 보았다.
직계가족끼리 촬영한 사진을 제외하고 모든 사진속에는 녀석이 차갑게 웃고 있었다.
마치 나를 보는듯한 서늘한 눈빛.
그러나 여자친구는 민석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듯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쳤다.
난 여자친구 몰래 민석이 찍힌 사진들을 전부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두번다시 민석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렇게 민석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는듯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몇일전부터 집에서 비릿한 피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방향제를 뿌리고 벽지를 새로붙이고 닦고 또 닦아도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 난 보일러실에 희끄무리한 누군가의 실루엣을 보았다.
난 분명 민석이라 생각한다.
난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내가 민석을 살리고 여자친구를 죽게 놔뒀다면 아마 여자친구가 나타났을테지..?
보일러실이 천천히 열린다.
뿌연 안개 비스무리한것들이 공기중으로 흘러나온다.
몸을 움직일수가 없다.
심지어 눈조차 감을수 없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는걸 넋놓고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문이 전부 열렸다.
예상대로 역시나 민석이었다.
사진에 찍혔던것과는 전혀 다른 온몸이 피투성이인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데리러 왔어. 넌 날 버렸어도 난 널 버리지 않을 작정이거든."
"....."
"우린 친구니까....."
녀석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찢어진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었다.
출처= 못된야옹 님
출처= 네이트판 바코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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