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름날씨가 나날이 깊어지면서 공포게시판으로 더위를 식히는 눈팅유저입니다.
많은 분들이 직접 겪으셨던 경험담을 올리신 것을 보고 저도 예전에 겪었던 일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쓸 데 없이 장황한 점 양해 바랍니다.
지금껏 평범하게 사는 동안 조금은 섬뜩했던 경험담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대다수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의 정거장에서 내리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왕래를 합니다.
물론 걸어서도 갈 수 있지만 계단도 없고 경사가 상당하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마을버스를 타고 갑니다.
가난한 학생인 저는 대중교통 이용으로 인한 환승혜택이 아니면 왠만해서는 집에 걸어 올라갔습니다.
일반적인 길은 경사도 경사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터라 귀차니즘으로 인해 지름길을 찾는 도중 비교적 편한 경로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언덕 언저리에 위치한 자그마한 산동네를 지나는 것으로 짧은 거리에 드문드문 계단도 있어서
집으로 가기까지의 시간과 체력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산동네에 관해서는 이미지가 그닥 좋지 않았습니다.
따닥따닥 붙은 한옥스타일의 집들..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꼬불꼬불하게 굽은 거리.. 가끔씩 집 앞에 앉아 담배를 피는 어두운 표정의 어르신..
마치 쥐를 물어뜯어 먹은 것처럼 입가가 새빨간 채로 저를 물으려고 했던 개.. 등등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마을버스와 비슷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어 꺼림칙 하지만 나름 뿌듯해 하면서 자주 드나들던 길이었습니다.
군 입대 후에 그 곳을 다시 지나가게 된 것은 일병 휴가 때로 2007년 9월 무렵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동네 친구들과 밤 늦도록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시간은 새벽 3시 정도로 기억합니다. 마을버스도 끊기고 비싼 택시요금도 내기 싫어서 저는 오랜만에 그 지름길로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예전에 새벽에 몇 번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조금은 무서웠지만 가로등도 있었고 별 일이야 있겠어? 하는 생각에 개의치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름길의 입구 부분이라고 해야 할 까? 가로등이 깨졌는 지 불빛도 없이 어두컴컴한 거리를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쎄~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시 망설이면서 뭐지? 이건? 익숙치 않은 느낌에 당황했지만
군인 신분으로 별 것도 아닌 거에 괜히 겁먹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빨리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싶다는 생각에 개의치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들어서자마자 무심히 왼쪽에 있는 집을 바라봤습니다.
새빨간 주둥이로 저를 물려고 했던 개가 살던 한옥집..
문이 훤히 열린 채로 마당이 어둡게 보이고 안방으로 추측되는 곳의 창문에는 창이 깨졌는 지 커튼같은 것이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소복을 차려입은 채 한풀이춤을 추는 여인을 연상시켜 소름이 쫘~악 돋았습니다.
애써 외면한 채 고개를 다시 돌린 저는 담벼락에 무언가 쌔빨간 것을 보았습니다.
' 죽을 때 까지 저주할 거야 '
담벼락에 빨간 색 락카로 휘갈겨 써놓은 글씨.. 그 당시 놀라서 정확한 내용은 떠오르지 않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쓰쳤습니다.
그 당시 전후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무렵으로 기억합니다.
시의원 후보자들이 여기저기서 재개발.. 뉴타운.. 등등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재개발 열풍이 불었던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동네도 재개발 이야기로 적잖이 나왔고, 이를 미루어 보아
그 조그마한 산동네가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곳 전체가 텅 비어버리게 된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그 동네 주민들이 한 것인지 아니면 용역깡패들이 한 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담벼락에는 온통
너희들을 저주할거다. 우릴 내쫓은 놈들 기억할거다. 등등의 글귀가 락카칠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섬뜩한 기분에 속으로 X됐다.. 씨발씨발 거리면서 아 그냥 돌아갈까 망설였지만
돌아가자니 반시간은 족히 걸릴거 같고 이 곳만 지나가면 눈 앞에 집이 보인다.. 달리면 30초 안에도 지나갈 수 있다.. 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포감을 제압하는 귀차니즘과 귀소본능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조금씩 나아갈 수록 담벼락의 갖가지 욕과 섬뜩한 글귀는 더욱 많아졌고,
폐허가 된 채로 방치된 집들은 주변의 공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집은 길 모퉁이 옆에 바로 있어서 저도 모르게 꺠진 창문 사이로 어렴풋이 거실과 방 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집안을 보니.. 괜히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면서.... X발 땅만 보고 가자 그러면 좀 나아지겠지..
전에 많이 드나들던 길이라 고개를 숙인 채로도 지날 수 있다,,, 며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오른쪽 길.. 왼쪽에서 곧 코너.. 바로 오른쪽으로.... 좀 있으면 거기다..
가끔 마주쳤던 담배피는 어르신이 항상 앉아 있던 곳.. 그 곳을 확인한 뒤... 여기서 몇 걸음만 더 가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큰 길이다.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땅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제 시야의 오른쪽 언저리로 하얀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뭐지? 이런 생각도 없이... 그냥 무심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그것을 봤습니다.
제 오른쪽에는 땅에서 한 뼘 정도 뜬 상태로 하얀 소복을 입은...
두 눈두덩이가 까맣게 뚫려 있고 도드라지게 씨뻘건 입으로 미소짓는 처녀귀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당시 기분을 뭐라고 표현을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온 몸을 수 만개의 자그마한 바늘로 찌르는 듯 가시가 돋치고
순간 사고도 정지되었습니다.
한 동안 멍하니 있는 데 귀신의 바로 위 쪽으로 무언가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 죽여버릴거야 '
귀신의 모습과 그 글귀가 매치가 되자 더더욱 소름이 끼쳤고..
이제 어떻해 해야하지.. 이대로 죽는 건가? 온갖 생각이 들면서 그나마 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사고가 가능하자 순간 이상한 점이 들었습니다.
귀신이면 왜 말을 하지 않고
만화책의 캐릭터와 같이 머리 위에 말풍선처럼 '죽여버릴거야' 라고 써져 있지?
이러한 의문을 품고 자세히 보니까 그건 진짜 귀신이 아니라
누군가가 폐허가 된 집 대문에 락카로 귀신의 형상을 그려 놓고 그러한 글귀를 쓴 거 였습니다.
순간 귀신이 아니였구나 하는 안심과 함께 허탈감... 당혹스러움.. 왠지 모를 또다른 공포 등 여러가지 미묘한 감정들이 뒤엉키면서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우선 여기를 벗어나는 게 최우선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곳을 벗어나 큰 길로 나가는 동안에는 별다른 일을 없었고,
곧장 집으로 달려가 씻지도 않고 엄마방으로 갔습니다.
너무나 긴장을 한 탓인지 눕자마자 긴장이 풀려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지금까지 그 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 곳은 없어졌습니다.
다음 휴가 때 본 그 곳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그 산동네를 파버려 엄청나게 큰 공사현장만 보였고
전역 한 뒤에는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고급 아파트 단지로 변해버린 그 곳을 지나갈 때면 가끔씩 그 일이 생각납니다.
당시에는 무섭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지만
나이가 조금 먹은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알게 모르게 용역들과 각종 압박에 시달리며 궁지에 몰렸을 사회적 약자의 모습과.
그들의 삶을 허문 곳에 우뚝 솟아 있는 고급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배치되면서
오히려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