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만.
요즘들어 이 시간이 되면 바깥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건 무려, 진격의 거인 1기 오프닝...
꽤 높은 층임에도 높은 음정과 우렁찬 크기의 휘파람이 또렷하게 들려
오더군요. 여기까지 들리게 하다니 재주도 좋습니다.
아마 도로 작업 하시는 분 같은데 늦은 밤이고 주변에 인적도 없어 딱히
듣고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하셨겠죠.
그래서, 혹시 싫었냐구요?
설마요. 같은 애니메이션 동지로써 피가 끓을 뿐.
그래서 저는 응답하기 위해 창문을 열고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같은 곡조의. 같은 박자로. 저 멀리 도로에 있는 그에게 닿도록 힘차게.
갑자기 똑같은 노래가 들려온 탓인지 뚝 멈추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 휘파람에 맞춰 같이 부르기 시작합디다.
어둠을 해치고 울려퍼지는 홍련의 화살. 지진트 다스 에센 뷔어 진트 디 예거.
잠시 묘한 상승감과 설레임에 화음을 이루던 저는, 합주를 마치고서 기쁜
만족감에 젖었습니다. 이 어두운 거리 어딘가에 저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니...
저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 멋진 공연을 마친 동료를 찾아 나섰, 다던가
하는건 없었고. 그냥 돌아서서 하던 일을 계속 했습니다.
뭐 인기있는 애니 니까요. 길가에 있는 인부 아저씨도 집에 가면 맥주캔과
함께 리바이x앨런을 외친다던가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리고 몇일 후, 오늘 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제 등 뒤 창문에서 또 다시 그 오프닝이 들려옵니다. 밝고 높은 휘파람으로.
이 묘한 비현실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애니 음악에 손가락이 움찔거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리얼.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기승전결의 전 같은건 없습니다.
따라서 전 신경쓰지 않기로 하고서 한창 보고 있었던 '남자고교생의 일상 11화' 를
마저 시청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 진격 18화를 봤었구나 하는걸 떠올리며...
밤이 늦었네요. 이 더운 날씨에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하시는 그 분께 건투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