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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1. 인신매매와 원양어선
게시물ID : humorbest_6086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ithrandir
추천 : 21
조회수 : 3844회
댓글수 : 1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1/15 18:59:05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1/15 16:34:58

몇 년전 겨울이었다. 피시방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두고 피시방 단골 손님 소개로 C를 배웠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프로그램 언어 C를 배웠다.


역시 학원에서 6개월 과정으로 배우는 걸로 현업에 바로 뛰어들기는 무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한심한 결정이었다.


몇 년이나 하고 있던 WOW를 하러 내가 일하던 피시방으로 여느때 처럼 발걸음을 옮겼고,


아이언포지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채팅이나 하고 레이드 준비나 했다.


당시 고정 공대 메인탱커였던 나는 레이드 끝나고 집에 가봐야 눈치나 보이니까 가족들 모두 잠든 후에 들어가려고 시간을 더 때우는 중이었다.


우리 공대장이 막공을 모았고, 골드나 벌겸해서 메인탱커로 들어가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탱힐만 있으면, 딜러는 어디서든 주워올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인원을 금방 모아서 후다닥 돌고 오자며 출발 했다.


그날만큼 힘든 막공이 있었을까.


25명중에 우리 공대원이 몇 명 있었고, 오며가며 눈에 익은 아이디들이 몇 명 더 있었으며, 나머지는 생판 초보였던 것이다.


정공이었으면, 큰소리 내며 진행했을 공대장은 애써 침착하려는 노력이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고, 듣다못해 내가 마이크를 잡고 진행했다.


수 년간 와우를 하면서 온갖 발컨들을 만나왔지만, 그 공대는 발컨의 완전체였다. 10명 가량이 레이드 자체가 처음이었던 막공.


일반몹 구간에서도 전멸을 해가면서 차근차근 설명 해가면서, 네임드 하나당 10분 이상씩 설명을 해주면서 새벽 두 시나 되어서 막공이 끝났다.


귓말이 왔다. 3파티인가에 있던 흑마.


어마어마한 사고가 곁들여진 막공이었는데도, 차분하게 진행하는 내 목소리가 맘에 들었단다. 물론 그 사람은 여자.


며칠 동안 접속해서 귓말도 하고 인던도 같이 다니고 그렇게 친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내 생일이 코앞이었는데, 밥먹자는 걸 내가 밥이나 한끼 사달라고 했다. 내 생일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궁금했었다.


그녀가 보내준 사진은 뭐랄까....


사람을 외모만 가지고 판단을 하면 안되지만, 정말....정말 못생긴 여자가 사진속에 있었다. 몇 백년 혹은 몇 천년 후엔 미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단연코 아니었고, 내 취향은 커녕, 알고 지낸 짧은 기간 자체를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다.


그렇다고 이미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못생겼다는 이유로 취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사람이기 전에 한 남자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약속날.


아침부터 피시방에 나와있다가, 약속 시간에 맞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며,


단골 손님들이 무슨일이냐고 물어봤고, 나는


"형...저 오늘 인신매매 당할지도 몰라요. 나 안돌아오면 원양어선에서 고기 잡는 줄 아세요."


라고 유언을 남기듯 말하고 출발했다. 


그 무시무시한 사진은 그 형들도 이미 봤었고, 형들은 좋다며 키득거렸다.


약속장소에 5분 정도 먼저 나가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어 전화를 했다.


금방 도착 한단다. 서성서성이다가 전화가 온다.


그녀였다. 어디있냐고 물어보는데, 사진과 전혀 다른 사람이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었다고 해야하나? 밥을 같이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는 동생이랑 같이 있었는데, 사진을 보내려다가 장난을 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사진을 퍼와서 나에게 보냈다고,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도 무덤덤하게(사진 보내주던 당시 음성 채팅중이었음) 밥먹자고 하니 내가 되게 궁금했었다고 했다.


그 뒤로 3년 조금 넘게 연애를 했었다.


지금은...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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