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상에 대해 설명하고 납득하는 방법으로, 과학적 해석과 종교적 해석이 있겠다.
과학적 해석은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하거나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보편적 정당성을 기반으로 가설을 세우고
또한 그 가설이 가시적인 증거, 혹은 또다른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또한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하며 발전하고
또다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발전하면서
더 넓은 현상과 새로운 발견으로 폭을 넓혀가며 인류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발전을 보장 할 수 있다.
그런데 종교적 해석은
묻지마적 믿음으로 신화적 해석을 해버린다.
가령 무지게가 왜 생겨요 하는 물음에도 신의 뜻이다.
사회에 전염병이 돌아도 신의 분노다.
모든게 이런식으로 해석되어버리고 이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만을 요구하게 된다.
합리적이고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 어떤 발전적 근거로 삼을 수도 없다.
하늘에서 폭풍우가 치고
화산이 폭발하고
뇌우로 산불이 나고 하던 모든 자연현상과
전염병과
들짐승등...
모든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신이라는 절대자를 찾았던 이유로 종교가 생긴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 당시는 모든게 신을 통해서 정치적 집행이 되고 의학적 수단이 되고 종교적 의식이 되었다.
인간 주변의 모든것이 다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지금의 종교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또 다른 하루, 한주, 한 해를 희망으로 새출발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너무 논리와 과학으로 모든걸 설명하려하는 현실사회에서 오히려 그런 논리와 과학은 삶을 메마르게 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이성보다는 감성을 충족해주고
논리적 이해보다는 공감의 이해를,
과학적 설명보다는 느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정도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이 과학적인 세상에서 올바른 포지셔닝일 것이다.
지금이 마녀사냥을 해도 그것이 곧 사회의 정의였던 중세시대도 아니고,
현실적인 부분에서 대부분의 것이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이 시대에
왕보다 더 큰 힘을 가졌던 시대처럼 종교가 영향력을 미치겠다고 하는건 시대과오적 착오다.
초등학생 3학년 교과서에 있는 것들만으로도 성경의 신화적 해석을 진실이라 외치는 목사가 있다면 탈탈 털릴 수 있는 시대니까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