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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지도 허무맹랑하지도 않다
실제로 이같은 청년정책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시의 ‘(가칭)청년보장’(Youth Guarantee), 성남시의 ‘청년배당’(Youth Dividend) 사업이다. 두 지방자치단체는 각각 전문가들에게 사업 연구용역을 맡긴 뒤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누구보다 지자체장들이 적극적이다. “청년의 일·주거·생활안정 등을 패키지로 묶는 청년활동 보장제에 대한 연구를 하반기에 진행해 2016년부터 실시하도록 준비하겠다.”(7월19일 ‘서울청년의회’ 개회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기본소득, 청년배당 들어보셨나요? 실현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세요.”(6월25일 이재명 성남시장 페이스북)
먼저 서울시가 구상하는 ‘청년보장’ 사업의 뼈대가 나왔다. 지난 7월 청년들이 직접 서울시에 정책을 제안하는 제1회 ‘서울청년의회’ 때 집중 논의됐던 제안이 구체화된 것이다. 서울시 청년허브 신윤정 기획실장은 지난 8월20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열린 ‘서울형 유스개런티(청년활동보장)의 도입과 실현’이라는 포럼에서 ‘(가칭)서울청년활동수당’을 제안했다.
2016~2020년 서울에 거주하거나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만 19~34살 청년 가운데 최대 5천 명의 청년들에게 2~12개월간 월 50만원씩 활동비를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우선순위는 가구소득이 하위 30%(소득 3분위) 이하이거나, 졸업 또는 실업한 이후 3개월 이상 미취업 상태인 청년들에게 주어진다. 청년들은 활동비를 지급받는 대신 자신의 사회참여 활동이나 생애진로 탐색활동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이 제안은 청년허브가 마련한 초안으로 아직 최종 확정된 방안은 아니다. 신윤정 기획실장은 “생계보장 때문에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하고 세대 간 격차를 견디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시간’과 ‘소득’을 보장해주는 한편 구직·창업·사회참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에 진입하기 위한 ‘경험’을 하게 해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취업 활동 보장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 청년들이 수당을 받는 기간에 해야 하는 활동의 범위를 도시혁신 아이디어 제출, 세대 간 협력모델 형성 등으로까지 넓혔다. 문화예술, 사회적 경제, 생태환경 등의 분야에서 3명 이상의 청년이 모여 커뮤니티 활동을 벌이면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청년참’,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 청년모임에 최대 1천만원의 씨앗자금을 주는 ‘청년활’ 등 청년허브 기존 사업과도 닮아 있다.
성남시,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청년 입장에선 ‘사회가 나의 아픔에 반응하고 있다’ ‘국가나 나를 내버려두진 않는구나’와 같은 심리적 안전망을 경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청년활동수당을 받으면서 자유와 탐색의 시간을 얻게 되면, 청년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기 삶을 설계할 기회가 되리라 본다.” 전효관 서울시 혁신기획관의 말이다. ‘청년활동수당’이 일종의 사회안전망으로서 청년들이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울타리가 돼주리란 기대다. 전 혁신기획관은 “청년활동수당이 청년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열쇠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청년들에게 최소한 버틸 기회를 준다는 의의가 있다. 사업 세부설계안은 구체적으로 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남시가 추진하려는 ‘청년배당’은 기본소득과 맞닿아 있다. 기본소득은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개개인한테 무조건적인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라는 개념이다(제1000호 표지이야기 ‘기본소득-소득을 나눠갖는 세상을 상상하라’ 참조).성남시는 현재 ‘청년배당’에 관한 연구용역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대표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에게 맡겼다. 강남훈 교수는 “연구보고서가 나오면 성남시의회 등에서 논의를 거친 뒤 내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청년배당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강 교수가 발표한 ‘청년배당의 필요성: 성남시의 경우’라는 보고서를 보면, 사업의 얼개가 짐작된다. 우선 일정한 연령대(만 19~25살)의 청년들에게 월 10만원의 소득이 보조된다. 시범사업 단계에서는 만 23살 또는 24살이라는 특정 연령에서 시작해 점차 대상자를 넓혀가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일종의 기본소득이기 때문에, 복지사업처럼 소득수준이나 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등은 없다. 모두에게 준다.
그러다보니 당장 재원 마련이 문제다. 일단 23살에게만 지급하자는 고민이 나오는 것은 그래서다. 또 10만원은 현금이 아니라 지역에서 유통되는 지역화폐로 지급된다. ‘성남사랑상품권’처럼 지역에서만 쓰이는 상품권이나, 성남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 등이 가능하다. 청년들이 책을 사는 등 자기계발을 위한 비용으로 쓰라는 취지다. 청년뿐 아니라 지역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이러한 ‘청년배당’ 또는 ‘청년활동수당’은 우리나라에서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여러나라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다. 프랑스의 청년보장 정책은 18~26살 청년에게 ‘알로카시옹’(현금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청년들은 구직과 직업교육 과정을 1년 동안 밟겠다고 약속하면, 월 452유로(약 57만원)를 받을 수 있다. 독일도 최대 월 670유로(약 100만원)를 학생들에게 지원해주는 ‘바뵈크’라는 생활비 지원제도를 운영 중이다. 절반은 무상 보조금이고, 절반은 정부가 보증해준 대출금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16~24살 청년은 ‘청년수당’을, 25살 이상의 학생은 학자금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청년수당은 부모로부터 독립 여부, 소득수준, 결혼 여부 등에 따라 2주당 226~700오스트레일리아달러(약 20만~60만원)씩 차등 지급된다.
‘투자’ 아닌 기본권 ‘보장’으로!
“2004년 ‘청년실업해소 특별법’ 제정 이후 그동안 수많은 청년정책이 나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제는 단순히 프로그램과 지원 내용을 바꿀 것이 아니라, 청년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청년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청년이 가지는 기본권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보장’이 청년 정책의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새로운 청년정책을 요구하는 건 청년이 불쌍해서, 미래의 투자 대상이어서가 아니다. 시민의 권리다. 서울시나 성남시 등 지자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황예랑 기자 [email protected]
출처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0183.html (한겨레21 - 황예랑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