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18승 6패 0세 229.1이닝 170안타 102삼진 71사사구 62실 46자 방어율 1.81 <<- 신인이 무려 18승!! 당연히 신인왕!!
87년 12승 7패 0세 163.1이닝 170안타 56삼진 54사사구 54실 48자 방어율 2.64
<<- 김건우 선수는 2년차 징크스도 없이 크보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 한명으로
꾸준히 활약해 주었지만... 9월초에 대형 교통사고로 시즌아웃 되고 맙니다. ㅠ.ㅠ
88년 기록없음. <<- 이 이후부터는 끊임없는 재활과 복귀의 반복 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통사고 후유증은 운동선수가 극복하기엔 너무 큰 벽이었고.....
나중엔 타자로 전향 해 보기도 했지만 그대로 잊혀져 가고 말았습니다 ㅠ.ㅠ
89년 3승 2패 2세 38.1이닝 40안타 13삼진 15사사구 17실 16자 방어율 3.76
90년 2승 3패 1세 37.2이닝 47안타 13삼진 21사사구 28실 26자 방어율 6.21
91년 1승 1패 0세 5이닝 5안타 2삼진 6사사구 6실 5자 방어율 9.00
이후 부상 등으로 출장기록 없음.
97년 0승 0패 0세 11.2이닝 11안타 11삼진 4사사구 6실 6자 방어율 4.63
통산기록 36승 19패 3세 방어율 2.73
인생을 살면서 '만약'이란 말보다 더 허망한건 없지만....김건우선수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최동원, 선동렬, 김용수와 어깨를 나란이 하는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중 한명이 되어서 90년대 청룡(LG)에게 몇번 더 우승반지를 선물 해 주었을지도 모릅니다...ㅎㅎ
한편 저는 김건우선수의 모교인 선린상고와 재미있는 인연이 있습니다...
김건우선수가 한창 고교 청춘스타로 활약하던 1981년, 저는 고교 야구에 미친 국딩 이었고 야구를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동대문 운동장을 집처럼 들락거렸습니다..
그러던중 어려서부터 고질병 이었던 편도선 제거수술을 받으러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당시에는 13세 이하 어린이는 편도선 제거수술을 하려면 3~4일 정도 입원을 했습니다.)....입원해 있는 2인실의 나머지 한자리에 왠 할아버지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무려 김건우 박노준 선수가 당시 다니던 선린상고의 교장 선생님 이셨고...그때 듣기로 이 분이 화장실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잠시 당시의 고교야구판을 설명 해 드리겠습니다.
1980년 당시 고교 2년생이던 박노준, 김건우를 보유하고 있던 선린상고는
청룡기 우승 (마산상고 5-0 승)
화랑기 준우승 (북일고 2-0 패) <<- 당시 북일고 투수가 이상군...
황금사자기 우승 (광주일고 5-3 승) <<- 당시 광주일고 투수가 선.동.렬.
의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며 고교야구 최강팀으로 군림합니다.
당시 선동렬의 광주일고는 대통령배 우승팀 이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황금사자기에서 청룡기 우승팀 선린상고와 대통령배 우승팀 광주일고의 결승전은 1980년 야구 최고의 빅 경기였고 여기서 선린상고가 우승을 한 겁니다.
그리고 박노준, 김건우 듀오가 3학년이 된 1981년, 야구판의 누구도 선링상고가 고교야구판을 휩쓸거라는걸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 해였던 1981년 고교야구 전성기의 마지막 승자는 선린상고가 아닌 경북고 였습니다....
좌완 에이스 성준과 류중일(당시 2학년)을 앞세운 경북고는 이 해 청룡기와 봉황기 결승에서 피튀기는 박빙의 결전 끝에 선린상고를 격파하며 고교야구 4관왕에 오릅니다.
그 결과 연이은 경북고와의 석패에 충격을 받으신 선린상고 교장선생님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병원의 제 침대 옆자리로 오신겁니다.
당시의 제 기분은 마치 김성근 감독님과 한방을 같이 쓰는 와이번즈 열혈팬 같은 심정이었을까요?
아무튼 당시 철없던 저는 야구땜에 쓰러지셔서 절대안정이 필요하신 교장선생님에게 같이 있는 3일 내내 주구장창 야구 이야기만 조잘거렸고.....
퇴원할때 선린상고 야구부 전원의 싸인이 담긴 야구공을 선물 받을 수 있었습니다...당연히 제가 제일 좋아하던 김건우 선수의 사인도 들어가 있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