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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서민 대통령을 기억하다
게시물ID : sisa_6107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행금지a
추천 : 2/4
조회수 : 454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5/09/05 16:00:43

1.

열우당의 의석은 153석으로 과반이 넘었다.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언론법, 과거사 기본법안 등에 대해서 논의를 하려했다.

하지만, 열우당에서는 한나라당의 뜻대로 언론법만을 논의하기로 했다.

여대야소 국면에서, 국민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받고 있던 여당이 독재후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2.

2004년 집값이 무한정으로 오르는 상태에서 분양원가 공개제도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17대 총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이기도 했다. 열우당은


① 주공 분양주택의 택지조성 및 공급원가 공개 추진,

② 토지공사의 택지공급단가 및 택지조성원가 공개 추진,

③ 주택공사의 건축비 공개여부는 주공의 주택공급 및 소형주택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여 추진,

④ 택지개발지구내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반대


 한다는 약속을 주었다. 국민들은 이를 믿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민노당 간담회에서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략)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라며 국민의 목소리를 배신하였다. 약속을 져버렸다.



3.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는 항상 '삼성경제연구소'가 있었다.

참여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참여정부정책의 기반으로 채택, 발표된다.

노무현이 공식적으로 서민을 배신하는데에 걸린 시간이 고작 6개월이었다는 말이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쓰인 것도 이때부터이다.

정부의 관료가 삼성에 가서 교육받는 시대를 삼성공화국이 아니면 뭐라 하겠는가.




4.

이라크 파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이라크 전쟁.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의했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여론의 과반 이상이 파병에 반대했다.

노무현은 '미국의 푸들' 영국과 함께 미국의 충견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5.

이러한 결과는 2005년 재보선에서 나왔다. 국회의원 6자리의 재보선에서 6대0 완패.

기초단체장까지 합하면 23대0 완패였다. 그 정도로 민심은 나빠졌다.



6.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것이 바로 '대연정'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독재후신 한나라당과의 연합정부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대연정은 곧 삼당야합이었다.

반한나라당 보수세력과 민주투사세력이 동시에 등을 돌렸다. 참여정부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이랬던 이가 단지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유로 다시 투사 이미지를 회복한다.

난 그가 그립지 않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어찌 그리울까.











출처 1.
2. http://blog.daum.net/kimhd/4020675
3. http://kojusticeparty.tistory.com/152
3-1.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1900005/2003/10/001900005200310271736001.html
4. http://www.vop.co.kr/A00000003503.html
5.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76316
6. https://namu.wiki/w/%EB%8C%80%EC%97%B0%EC%A0%95%20%ED%8C%8C%EB%8F%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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