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을 봤습니다. 영화는 노골적인 조롱과 풍자를 통해 정부와 사회를 비판합니다. 어찌보면 하나의 부조리극처럼 느껴지더라구요. 이렇게 이상한 사회에서 중산층은 어떻게 버텨나가는지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먼저 터널이란 공간은 사회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론 주로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가정이나, 정부와 같은 장들과는 조금 구별이 갑니다) 영화는 대놓고 이 장소가 부실공사나, 설계대로 실행되지 않는, 부패한 공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쉽게말하면 현재 상황이 썩어빠졌다는거죠.
이런 공간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계층은 청년계층입니다. 영화에서 민아였나요? 사회 초년생은 아픈줄도 모른 채 있습니다. 죽기 직전에나 가야 '옆구리가 시리다'며 고통을 지각하죠.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인턴 갈 수 있다며 꼭 간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결국 위기 상황인걸 알지만, 개개인은 타개 불가능한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집니다. 애시당초 자신의 고통을 외면한 채, 앞으로만 나아갔기 때문이죠.
다음으로 희생되는 존재는 블루칼라층입니다. 톱니바퀴 맞아 돌아가신 아저씨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떨어진 달걀을 빗물에 씻어먹고, 묵묵히 일하는 등 상황에 잘 적응하는 듯했지만, 결국 두 번째로 죽음을 맞이하죠.
이 둘은 하정우와 달리 관심조차 받지 못합니다. 애초에 청년층은 뉴스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언급되고 사라지며, 노동자는 장례를 치르지만, 가족이 와서 달걀 던지고 사과하고 무대의 뒤로 사라집니다. 잠시 이용당하고 사라져요.
결국 영화는 주인공 하정우에 주목합니다. 대기업 자동차 딜러로서, 위기 상황에서도 이를 강조하는 등 어느정도 성공한 중산층에 가깝습니다. 때문인지 위기 상황에서도 물이나 케익 등, 약간의 자원이 남아있습니다. 이 피같은 물과 케익을 민아에게 기부하기도 하지만...... 눈이 자꾸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소중하잖아요. 아무튼 이런 비상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지냅니다.
이 때 정부가 등장하는데, 대놓고 사진만 찍어대는 등 요란한 수레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 절정을 보여주는게 바로 양 방향 구출 작전이죠. 정면(수평)으로 뚫고가는게 일종의 정공법이면, 수직으로 뚫고가는게 일종의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 바쁜 와중에 화려한 애니메이션까지 만들며, 그리고 d-1이라고 광고하는 등, 온갖 미사는 다 합니다. 쉽게말하면, 중산층을 구하기 위해서 하는 정부의 새로운 시도들로 볼 수 있습니다. 매번 요란하게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새로운 시도는 실패하고, 위기에 빠진 중산층에게 희망고문만 되었을 뿐입니다. 때문에 하정우는 좌절하지만, 가정을 생각하며 버텨나갑니다.
영화에서 참 심심한 인물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오달수씨가 맡은 소방대장역입니다. 처음 나올 때 부터 끝날 때까지, 시종일관 정의의 상징으로 나옵니다. 인물이 지나치게 평면적이죠. 물론 초반엔 조금 어리버리하다가도, 후반가면 진실된 모습으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부와 대비되는 인물이지요.
바로 이 캐릭터 덕분에 주인공은 살아남습니다. 사실상 모두가 손놓고, 포기하려 할 때, 주인공은 망가진 크랙션을 울리고 , 그가 그 소리를 듣게됩니다. 이처럼 사실상 구출은 사회에 의해서 이뤄졌다기 보다는, 진실되고 도덕적인 개인과, 개인의 맷집으로 이루어진 것이 가깝습니다. 다시말해 빗물과 개밥으로 연명할 수 있을 만큼 평소에 맷집이 됐고, 그나마 희망을 놓지 않아서 중산층은 살 수 있었고, 여기에 적절하게 조력자가 도와주어서 살아남은 것이지요. 소리만 시끄러웠던 정부나 사회는 상황을 타개하는데 번뜩이는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서 많은 분들이 세월호 사건이나, 삼풍 등 다양한 비극을 떠올리실겁니다. 저 역시도 그랬고요. 다만 그렇게만 보기엔 영화에서 은유하는 것이나, 디스하는게 참 많다고 느껴져서 주절주절했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