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곧 개봉된다며, 제로센과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시키는 이 작품에 대해
개탄하는 글이 시사 게시판에 올라왔더군요. 덧글을 달고 싶었지만 가입한지 얼마 안 돼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저는 아직 작품을 보지 못했으니 뭐라 할 순 없는데요.
하지만 그것을 군국주의 작품으로 규정하고 맹렬히 비판하는 어조에 조금 반감이 듭니다.
예고편을 봤을 때 <바람이 분다>는 전쟁이란 광풍 속에 위치한 일본 사회의 혼란을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는 환경과 인간, 혹은 공생할 수 없는 관계 간의 파국와 화해란 첨예한 주제를 장르적으로 능수능란하게
풀어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타 작품들과는 또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대의 광풍 속에서 한 개인은 어디까지 신념을 고수할 수 있을까요. (변절과 범죄를 정당화하자는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전쟁이란 절박한 상황 속에선 특히 그 개인의 선택과 행동, 의지가 이데올로기란 이름으로
시대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기 쉬웠을 것입니다.
제가 <바람이 분다>에서 궁금한 것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 개인이 사회의 흐름 속에 휘말려가는 과정이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무겁고도 너무도 첨예한 지점을 어떻게 풀었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바람이 분다>의 개봉 소식보다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 기사를
먼저 접했는데(그것도 조선일보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로 기억됩니다.
(인터넷을 긁어봤는데, 찾질 못하겠네요)
<바람이 분다>는 그러한 발언의 연장선상으로 읽어야 할 듯합니다.
그게 아니라 일종의 마케팅 차원으로 개봉 전에 한국 관객들에게 립서비스를 한 거라면...
미야 상은 노망이 든 거겠지요. 하지만 그렇진 않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아울러 작품의 소재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삶과 모든 작품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대단히 폭력적인 발상인 듯합니다.
소재와 같은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겠지만 그러한 소재를 어떤 시각과 입장으로 풀어내고 작품 속에서 말하는지
우리가 이해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발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무분별하게 색을 덧씌우고 공격하는 새누리당, 일베 유저 등과 같은 파시즘이겠죠.
시사 게시판에 글 올리신 분, 혹 작품을 먼저 보셨다면 저 역시 섣불리 반박을 한 셈이니 사과드리겠습니다.
논쟁이 필요하면 영화를 보고 함께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