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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적어보는 2차대전 일본군의 병맛짓 BEST 5
게시물ID : military_612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레이브릭스
추천 : 10
조회수 : 2305회
댓글수 : 46개
등록시간 : 2016/02/13 00:5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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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5위 아라사카 소총 국화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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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인천 조병창에서 생산된 38식 아라사카 볼트액션 소총

국화 무늬따위는 소총의 성능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장식임에도 병맛짓 잘하기로 소문난 일본군은 역시 떡잎부터 달라
일일이 조각도로 100% 수작업으로 일왕의 상징이라며 주력소총에 국화무늬를 세겨 넣었다 그것도 34만정을 
그덕분에 한정당 4시간 남짓 걸리던 공정이 8시간으로 두배뛰는 기적을 선보인다
문제는 신병들은 계속해 들어오는데 총이 없다는 것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개의치 않고(사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름)
전쟁 마지막날까지 똥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일선부대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국화무늬에 조그마한 티끌이라도 있으면 폐하를 모독 한 짓이라며 가혹행위를 시전했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전투력과 사기 저하로 이어 진다



4위 대전차총검술

Japanese Self Sacrifice.jpg

전쟁이후 당시 미군 전차병들의 증언에 따라 그려진 삽화 대충봐도 이미 3명은 몇분후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애당초 너무나도 빈약한 장갑과 빈약한 관통력의 포을 가진 주력전차 치하가 
미군의 셔면 탱크를 상대할수 없어 나온 고육지책이지만 방법이 너무나도 괴랄스럽다 
삽화에는 급조 폭발물을 가진 병사들이 간간히 보이지만 그건 형편이 나은 편이고
실제로는 일본도나 착검한 아리사카 소총을 들고 돌격 하여 수류탄과 함께 자폭하는게 전부였다
문제는 이것을 기본교리로 삼아 신병훈련소부터 교육했다 역시나 전사자는 숫자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적국의 전차가 강력하다면 우리도 그에 걸맞거나 능가하는 전차를 배치하는게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군은 상식을 져버린 군대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3위 야기 우다 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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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동내마다 하나씩 있던 그 방송 수신용 안테나다 
하지만 이게 태평양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명 우다 라는 안테나로 일본의 우다 신타로(宇田新太郎:うだしんたろう,1896~1976)가 1926년에 개발했다
이름은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야기의 이름을 함께 넣었다

미국과 영국은 개발 즉시 그 놀라운 성능을 알아보고 육상기지 함선 항공기 까지 가리지 않고 사용 했다
그리고 우리 일본군은 역시 기대와 같이 도입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의도적으로 거부했다
이유는 적을 앞에두고 전파를 쏘는 것은 적에게 위치를 알리는 것이다....그리고 야예 레이더를 안쓴다
아마 무전기는 전파대신 텔레파시를 쓴다고 생각 한것 같다

1943년 싱가포르를 점령한 일본군은 영국군 문서를 뒤지던중 YAGI 라는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고는 영국군 포로를 조지는데
그 포로가 하는 말이 "야 이 병신 시키들아 일본인이라며 야기라는 사람을 몰라?"

그리고 이사건 이후 레이더 개발에 착수한다 역시 우다레이더는 병맛들 답게 안쓴다
하지만 이미 일본 함대를 우다안테나로 빤히 내려다보던 미해군에게 전세는 기울었다

그리고 야기와 우다는 패전후에도 역적취급을 받는다



2위 육군 소속 전함

MaruYu-1945.jpg

전세계 어디서도 찾을수 없는 육군소속 수송 잠수함 마루유 인천 조선기계제작소에서 건조되었다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다른나라군대다 20년대 서로가 서로 장성을 암살했고 36년에 도쿄에서 총격전까지 할뻔 했다
둘은 제대로된 통합지휘체계도 없었고 별개의 지휘체계를 가졌다 사실상 별개의 전쟁을 수행한샘 말그대로 콩가루집안....

믿기 힘들겠지만 육군은 해군의 진주만 침공사실을 해군에 심어둔 스파이를 통해 알았다
이게 실제로 가능한 시점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서로 별도의 수송전단을 꾸렸고 서로 상대의 수송전단을 호위하던 육군 전투기가 격추되거나 해군 수송선이 침몰하면
멍청한 네녀석들 때문에 불필요한 전력손실이 생긴다며 서로를 까기만 바빴다 

그래서 생겨난게 이 녀석이다 하지만 애당초 크기가 너무 작아 수송임무가 불가능 했고 느린속도로 잠항가능거리도 너무 짧았다 
즉 거의 잠항이 불가능한 잠수함



1위 자살특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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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이렇다 한마디로 대가리총맞은발상

미군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고 부르는 1944년 6월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기동부대가 괴멸당한 이후
일본군 일선 지휘관들은 알아서 부하들에게 자살공격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1944년 7월 21일, 일본의 군령부는 '대해지 제431호' 에 의거하여 특공작전을 정식으로 채용하였으며
급기야 1944년 10월 5일 군령부는 지시하지는 않겠지만 현장의 자발적 공격은 반대하지 않겠다면서 
자살공격을 정식으로 허가한게 이 미친짓의 시작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말이 안되는게 '
전함은 기본적으로 초음속으로 나는 포탄을 주고받는 함포전을 고려해서 만든 배고
장갑만해도 기본 30cm~40cm가 넘는다
근데 여기에 몇미리짜리 장갑의 제로전투기가 가서 박는다 해도
벽에 계란 던지기 이다

또한 원래 목표였던 정규항공모함을 노린다 해도 항모 주위의 몇십척이나 되는 배의 수만발의 대공포화를 뚫는건 
로또나 다름없는 일 이었다

일단 조종사들이 비행만 간신히 하는 신병들이라 초보라 적 전함을 못찾아 태평양에 가미가제했고
수준높은 조종사는 가미가제가 아니더라도 적함을 충분히 격침시킬수 있다 한마디로 병신짓거리다

결국 오키나와 전투에는 330기의 자살전투기가 출격 220대가 격추대고 1대가 명중했다




출처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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