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출범 6개월,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돌아온 유신독재정권이다. 박정희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빼닮은 박근혜 정치행보는 유신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군부출신 강경파들이 정부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그 첫째 징표이다. 박근혜 정부에는 수십년전, 유신시절에 활동하던 역사의 퇴물들이 다시 들어와서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으며 유신정권의 손발로 행세했던 자들의 자식들이 다시금 권력층에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정치가 40년뒤로 후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박정희를 빼닮은 박근혜의 정치방식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6개월, 그의 정치방식은 군복을 입지 않은 차이가 있을 뿐 정치방식에 있어서는 박정희 정권을 빼닮았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정치는 1972년 10월 유신과 대통령 긴급조치로 대변되듯 철통공안정치로 규정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 5일, 대통령 비서실장에 공안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까지 오른 대표적인 공안통인 김기춘을 임명하였으며 당-청간 소통을 담당하는 청와대 정무수석직에는 30년 외교관 경력의 박준우를 임명하였다. 서울시청광장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0만 촛불이 타오르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응방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진영, 시민사회진영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였다. 국정원 대선개입 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8월부터 주말에는 수만의 촛불이 매주 시청광장을 밝히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있는 대응은 고사하고, 유신시절, 박정희가 애용하였다는 경남 저도로 여름휴가를 떠나며 ‘저도의 추억’을 홍보하였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운동기간에 박근혜 후보 캠프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에서 농성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을 방문해 대선이 끝나면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이후, 그 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쌍용차 국정조사는 여야 6인협의체로 무마시켜 놓았다. 한 마디로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정치는 또한, 남북관계를 대결구도로 만들면서 이를 국내정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공정치로 규정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취임한 직후인 3월 8일, 미국은 대북전쟁훈련인 <키리졸브 2013>을 강행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여느 때 없이 높아졌다. 그러나 국방부는 북한이 이른바 “국지도발”을 할 우려가 있다며 주한미군과 “국지도발대비계획”에 서명하고 국방부 대변인은 비례성 대응의 원칙을 무시한 채 “도발원점은 물론 그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철저히 응징한다는 호전적 망발을 일삼았지만 그때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군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며 군을 두둔,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하였다.
특히나 천신만고 끝에 7차에 이르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이 가까스로 타결된 마당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8월 22일,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장을 찾아 “전쟁발발하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식의 군부강경발언을 되풀이하며 모처럼 마련된 남북화해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이는 마치도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떠밀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는 하였으나 이후 10월 유신을 단행해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박정희 정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2. 군부출신을 대거 등용
박근혜 정부는 육사출신의 군부강경세력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대북강경정책을 고수해왔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예전부터 청와대에 “육군사관학교 편중 인사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폭강화된 부서기능은 국방안보분야이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대폭 강화해 대북정책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이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차단제로 작용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는 김관진 국방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모두 군부출신으로 채워져있다. 이는 곧 대북정책을 군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이러한 구조가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을 막고 있다.
NSC는 안보 관련 현안을 논의하는 헌법상 기구로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국무총리와 외교·통일·국방장관 및 국가정보원장 등이 위원이며, 국가안보실장은 간사 역할을 맡는 7인 회의체계이다. 즉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보상황과 관련하여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NSC는 미국의 NSC와 달리 대부분의 업무가 북한에 국한되는 기형적 체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을 둘러싸고 있는 외세인 중국과 일본, 미국에 대한 논의와 검토 없이 오로지 북한만을 상대하는 것은 다극화체제로 전환되며 주변국과 관계정립이 중요해지는 21세기의 국제정세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의 NSC는 국방장관, 국정원장, 국가안보실장이 모두 군부출신으로 채워져있다. 이는 곧 대북사업을 군부가 주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바 박근혜 정권의 남은 임기동안 남북긴장과 갈등을 매우 높을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이명박 정부부터 국방부장관에 있으며 남북군사대결을 주도했던 인물로 올해 상반기 극단적인 남북군사대결도 그가 전면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처럼 이전 정부의 국방부장관이 다시 장관직을 연임하는 경우는 60년 한국정치에서 사상처음의 일이다. 물론 그가 비리혐의로 국방부장관 임명에 낙마한 김병관 장관내정자의 후임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뒤늦게 “예전부터 김관진 장관을 지켜보고 있었다.”며 그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박근혜 인사에서 또한 주목되는 점은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본인의 측근이었던 서울시청 공무원이던 원세훈 부시장을 국가정보원장에 앉혔는데 그 결과 국정원 댓글 여론조작을 통한 대선 부정선거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대외정보기관 전문이 아닌 대통령 측근을 정보기관 수장에 앉힌 결과 정권유지를 위한 사실상의 부정선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육군 예비역 장성을 국가정보원장에 앉혔다. 이를 두고 이제 국정원은 군부독재시기의 중앙정보부로 회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급변하는 21세기에 걸맞는 정보기관 운영에 대한 철학과 자기소신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보수인사지만 하나회 출신이 아니라 전두환 신군부와 거리가 멀어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충성도보다 70년대 박정희 정권과 그 딸인 박근혜에 대한 강한 애착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자가 정보기관의 수장이 되면 이명박 정부시절의 원세훈 원장처럼, 국가정보원은 박근혜 정권의 충견이 될 뿐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경호실장에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하였다. 전직 육군참모총장이 대통령을 경호한 것은 사상 최초이다.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 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경호실장의 비중을 높여 ‘3실 체계’를 구축하였는데 그 결과 청와대 핵심요직의 2/3이 군장성 출신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2월 12일, 육군을 총지휘하던 4성장군이 대통령 한 사람을 경호하는 총책임자가 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3. 유신시절 인물들의 재등용
박근혜 정부는 유신시절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원로급 인물들이 정치무대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바로 유신정권 출신들로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을 자처하는 ‘7인회’라 불리는 인물들이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5월 26일 “박 전 위원장에게 7인회가 있는데 면면을 보면 수구꼴통이고 도저히 대한민국을 맡길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7인회 구성원들은 모두 박정희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이다. 이들의 박정희 정권 당시 직함을 살펴보면 청와대 경제수석(김용환)과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김기춘), 법무부 법무실 검사(현경대), 조선일보 정치부장(최병렬)과 조선일보 청와대 출입기자(안병훈), 하나회 육군 중령(강창희), 현역군인(김용갑)들이었다.
7인회의 결성 시점은 명확치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 모두가 박정희 군부통치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인물들이며 아직까지 박정희 시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란 점이다.
이들 가운데 강창희는 현재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을 맡아 입법부에 강력한 개입력을 갖고 있다. 게다가 8월 5일, 김기춘이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행정부에 강력한 개입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현경대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을 맡아 대통령 자문회의를 이끌고 있다. 결국 '7인회' 멤버들이 현 정부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고려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3 한국정치세계학술대회'에 참석, 축사를 통해 "한국사회는 확고한 정치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지난 60여년 동안 냉전적 대립과 정쟁의 위협, 그리고 IMF 위기와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활기차고 역동적인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한국사회를 역동적인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규정하는 그는 “이제 한국정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접어들었다"면서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는 핵무기와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고령화 문제는 앞으로 한국 정치가 풀어가야 할 시대적 과제"라고 밝혀 대북대결정책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다.
8월 5일에는 7인회 인물로 거론되는 김기춘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어 행정부에 강력한 개입력을 갖게 되었다. 실제 8월 6일, 김기춘 비서실장은 임명되자마자 강창희 국회의장을 찾아갔는데 이 자리에서 강창희 의장은 김기춘 실장의 예방을 받고 "어려운 때 중책을 맡았는데 잘 부탁드린다"며 "김 실장은 저에게 대선배이고, 관계·정계·법조계에 탁월한 역량을 가진 분으로 잘하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실장은 "의장의 도움이 없으면 정부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며 "대통령이 뭔가 잘해보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의장님이 잘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7인회가 긴밀히 공조하며 입법부와 행정부에 개입할수록 한국사회는 유신독재정권 시절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촉발되는 배경이다.
4. 전면에 부상한 '박통키드'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는 ‘박통키드’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지난 박정희 유신정권에 복무하면서 박정희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자들의 2세들이 박근혜 정권에 대거 등용되어 이제는 박근혜의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는 점을 풍자한 말이다.
“일요시사”는 인수위 시절부터 치고 들어오기 시작한 박정희 측근 2세들은 현 정부 내각과 청와대를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나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로는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다. 서승환 장관의 부친인 고 서종철씨는 박정희의 육사 1기 선배로 박정희 정권에서 육군참모총장과 대통령 안보 담당 특별 보좌관, 국방장관을 지낸 박정희의 최측근이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부친은 대한교육연합회장을 맡았던 고 류형진씨다. 류씨는 5·16 쿠데타 이후 3공화국 수립 때까지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고문을 맡았던 박정희의 측근이다. 숙명여대 교수였던 류씨는 유신교육의 대명사로 모든 학생들이 암송해야만 했던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작성한 인물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행시 14회 출신으로 박정희 정권 당시 1976년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참여했다.
대통령 인수위에서 통일외교분과 간사로 활동했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낙마했던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부친은 고 최재구씨이다. 최재구는 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경남 고성 선거구에서 8, 9, 10대(공화당), 12대(국민당) 의원을 지냈다.
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기 비서실장을 지냈고 새누리당의 현직 대변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일호 의원은 고 유치송 전 민주한국당 총재의 아들이다. 유 전 총재는 1964년 박 전 대통령의 하야 권고 건의를 검토했던 야당 6인 소위 멤버였지만 1994년에는 이른바 “박 전 대통령 서거 15주년 추모위원회” 고문에 이름을 올리는 등 ‘박정희 재평가’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 정무수석에 발탁된 박준우 수석의 경우는 장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8월 8일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박준우 수석의 장인은 동양석판(현 TCC동양) 창업주인 고 손열호 회장인데 손 회장은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김계원 전 실장과 영주보통학교(현 경북영주초등학교) 동기로 말년까지 ‘영주회’라는 모임을 함께한 인물이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의 부친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맹위를 떨치던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무려 9년 3개월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재직한 박정희의 최측근인 김정렴씨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전문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된 장순흥 카이스트 교수의 부친은 장우주씨다. 장우주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사 1기 후배로 한미경영권 이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1965년에는 국방부 관리차관보 자격으로 박 전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수행했으며 1971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 사무국 사무총장을 맡는 등 박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상훈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위다.
국가미래연구원 창립을 주도한 박 대통령의 ‘스터디모임’ 핵심 멤버인 김영세 연세대 교수는 박 전 대통령 시절 내무부 지방국 행정담당관, 인천시장, 대통령 비서관 등을 지낸 고 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 아들이다. 부인은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 김 교수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 꾸준히 중용설이 나오고 있다.
직접 ‘부녀 대통령’ 모두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인사들도 있다.
또한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부친은 이정순 예비역 준장이다. 이 준장은 육사 5기 출신으로 5·16 이후 부정축재처리위 조사단장을 맡았다. 이정순은 그 활동공로로 박정희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으며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해 1964년까지 육본 경리감을 맡았다.
5. 박근혜 정권은 제2의 유신정권
박근혜 정권은 제2의 유신정권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군부출신이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 스스로가 부친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군부출신의 대북강경세력들이 정권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유신정권 체제에서 부역했던 원로급 인물들이 입법부, 행정부를 비롯한 주요공직에 진출하고 있으며 박정희 측근들의 2세들이 대거 공직에 진출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국가안보를 핑계로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반민주독재정권이었다. 이제 유신정권에 부역하던 자들과 그들의 2세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고 한국사회 요직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사를 두고 ‘세습 정치’라는 비난이 곳곳에서 쏟아지고 있으며 정치권 안팎에선 정권초반부터 ‘독재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미 부마항쟁으로 쓰러진 독재정권의 정치방식이 21세기에 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서울시청광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10만 촛불이 그 생생한 증거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라도 국민들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남북관계를 안보심리를 자극해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전쟁의 위기를 뿌리뽑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시청광장에 타오르는 10만 촛불의 분노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민의 민의를 존중해 국가정보원을 해체하고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던 각종 부정선거 행위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응분의 책임을 밝혀야 한다. 그것이 21세기에 통할 수 있는 대통령의 정치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