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너는
네 인생에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난 거라고 생각하지.
아직 여름이 한창이지만
너의 마음은 여태 겪어본 적 없는
가을의 언저리를 떠돌기도 하고
한겨울의 거리에 내몰린 기분이 된 적도 있었을 거야.
뼛속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잊기 위해
일부러 큰소리로 웃거나 소리를 지르는 너를 본 사람도
아마 한두 명쯤은 있었겠지.
어쩌면 너는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자주 변한다는 생각과
또 어떤 것들은 생이 끝날 때까지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절망이라는 벼랑에 서서
무구하고 잔인한 바다를 내려다보았을지도 몰라
그러나 단 하나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어
조금만 더 걸어보자고
조금만 더 움직여보자고
스스로를 부추기며
한숨 같은 심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 거야
어쩌면 너는
너무 오랫동안 사랑을 기다려왔다고
중얼거리는 밤을 수없이 보냈을 테지
가까이 끌어다 곁에 두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거야
하지만 꽃이 피고 또 지는 것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또 불어가는 것처럼
네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스르르 시들어가는 그 감정을
미처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었겠지
어쩌면 너는
성급하고 체할 것 같은 복잡한 관계로부터 달아나
홀로 겨울의 심장에 이르는 것도
썩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
응시할수록 점점 희미해지는 사랑을 향해
나쁜 말을 퍼부으면서 말이야
하지만 그건 사랑이 그만큼 너에게 무겁기 때문이지
네가 하필이면 그런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어쩌면 너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남몰래 사랑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걸지도 몰라
불면의 밤들을 고스란히 통과하고
유혹의 눈웃음을 외면하고
섣불리 심장을 꺼내 보이지 않았으며
모든 옳은 것들에 대한 존경와
모든 영원한 것들에 대한 경외를
한시도 멈추지 않았으니까
네가 원하는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을 알지 못하여
너는 온 세상의 모퉁이를 서성이지
그러니 정말로 이상하게도
네가 보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의 얼굴은
두서없이 흔적 없이 서둘러 사라져버리고 말지
그때 너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생각할 거야
그저 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사랑을 기다리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 그런 이유로 나는 간혹
너의 눈빛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감추고 있는 깊은 우물을 발견하지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우물은
무척이나 검고 푸르러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밤과 같아
그리고 아주 가끔
예기지 않은 바람에 의해
섬세하고 불안한 물결이 갈라질 때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험한지
너는 결코 모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너는
네 인생에서 아직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어떤 일을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