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진화론에 도전받는 ‘다윈 이론’
[경향신문 2004-05-31 20:14]
100년 전통의 다윈주의 진화론이 21세기에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20세기 생물학의 가장 큰 업적으로 불리는 다윈의 진화론이 최근 서구 학계에서 위협받고 있고 우리나라 학계 또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인하대 인문학부 이성규 교수는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유전자 개념의 역사’라는 논문을 통해 “최근 30년동안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반하는 진화론이 생물학계에 힘을 얻어가고 있으며 분자생물학적인 증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먼저 다윈이론이 학계의 인정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최근의 30년과 비교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래 생물학자들이 보인 반응은 오늘날 믿는 것처럼 다윈 이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어간 것이 아니었다. 1883년 이후 1920년대 중반까지 다윈의 자연선택설은 당대의 대표적인 생물학자들에 의해 철저히 배격되었으며 다윈의 아들조차도 라마르크주의를 옹호했다. 그럼에도 자연선택설은 그 명맥을 유지하면서 드디어 1930년대에 진화의 종합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교수는 진화학계에서 1970년 이후 현재까지의 30년동안 일어난 상황이 1900년대초의 30년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에는 다윈진화론이 공격자가 아니라 수비수로 위치가 바뀌었다. 1970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새로운 진화론 ‘단속평형설(斷續平衡設)’이 등장했다. 고생물학자 굴드는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종과 종 사이의 중간 형태가 존재해야하는데 화석에 중간 종이 전혀 없다는데 착안했다.
그는 개체차원에서 끊임없는 변이와 생존경쟁의 결과로 진화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시간 종의 안정상태가 유지되다가 어느 시점에서 집중적으로 변이가 일어나 신종이 탄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새로운 진화론은 분자생물학적 발견이 이어지면서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일본의 세균학자 니카하라는 세균에서 돌연변이가 특정 시기에 집단적으로 일어남을 밝혔다. 예를 들면 수은이 있는 환경에서 수은내성균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고 유당을 분해하는 대장균이 유당이 많을 때 대량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생물학자 마굴리스는 원핵세포 몇개가 뭉쳐 진핵세포가 되었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원핵세포에서 진핵세포로 진화했다는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 단백질 차원에서 일어난 변화가 RNA로 피드백되는 현상이 분자생물학적으로 발견됐다. 이러한 증거들은 종이 자연에 의해 선택되는 피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종 스스로가 환경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감지하고 신종(新種)을 출현시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교수는 현재의 시기를 다윈진화론이 붕괴되기 시작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분석했다. 1990년대 후반들어 다윈진화론에 반하는 논문들이 주요 학술지에 게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윈을 괴롭혔던 학계의 장벽이 지금은 다윈진화론을 너무 강고하게 옹호하고 있어 비판론자들이 목소리를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교수는 “우리나라 과학자와 학계도 무조건적으로 다윈을 신봉하지 말고 다윈 비판론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과학에 있어 ‘절대명제’는 오히려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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