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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고전] 희망고문
게시물ID : humorbest_6136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한소수
추천 : 13
조회수 : 4558회
댓글수 : 9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3/01/22 17:32:04
원본글 작성시간 : 2013/01/19 19:27:05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세요.』










희망고문












태양은 지구의 모든 수분을 날려버리기라도 할 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찌는 듯한 더위에

불쾌지수가 올라갈 법한 날씨였지만, 6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시는 상준의 입장에서는 여간 따사로

운 것이 아니었다. 상준은 주위를 한번 휘익 둘러본 후에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렸다.

"오랜만이네..."

교도소에 수감된지 어언 6년. 그는 모범수로 수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생각에 상준은 들뜨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끝맺지 못한 매듭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그는

퇴소하면서 받은 자신의 물품들 중에서 양복 속에 고이 넣어두었던 무언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어이~ 이보슈~!"

상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칠십남짓 해보이는 노인이 불편한 다리를 바삐 놀리며 자신을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노인이 손에 이고있는 보따리들과 수척한 얼굴, 깊게 파인 주름들이 그 역시 수감생활을 막

끝마치고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여지없지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어르신?"

상준은 최대한 공손하게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자네도 찾아오는 가족이 없어서 셔틀버스로 서울까지 이동해야 하는 젊은인가?"

노인의 말에 상준의 눈썹이 약간 흔들렸다. 잊고 있었던 사회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상준은 잠시

멍하니 노인을 쳐다본 후에 한숨을 살짝 내쉰 후에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예."

"거 참 잘되었구만 그래. 내가 보다시피 눈이 잘 안보여서 말이야. 셔틀버스까지 같이 가주면 안되겠나?"

처음보는 노인과의 동행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상준이었지만, 찌는 더위와 막막한 현실 앞에서 잠시나마

말동무를 얻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뭐, 나쁠건 없지요."

"고맙네,젊은이."

상준은 이내 노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노인에게로 걸어가면서 자신의 왼 팔뚝을 쓰다듬었다.

노인은 그런 상준을 고맙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고마움의 눈빛이 싫지않은 상준이었다.




셔틀버스는 상당히 작은 크기였다. 교도소라고하면 으레 창살이 박힌 커다란 버스나 이리저리 상처난 을씨년

스러운 버스를 생각하기 쉬웠지만, 왠일인지 시내에 자주 굴러다니는 소형 셔틀버스 한대가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작네요."

"껄껄, 죄다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가다보니 그렇겠지. 우리같은 쓰레기를 모시는데 세금을 쓸수야 없지 않은가?"

"뭐..것도 그렇네요."

못마땅하다는 듯이 버스를 째려보는 상준의 앞을 노인이 지나갔다. 노인은 자신의 두 발을 셔틀버스에 올린 후에

어서 따라들어오라는 듯이 상준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노인을 보며 상준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셔틀버스에

올라 탔다.

셔틀버스의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아까의 불쾌함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상준

이었다. 상준은 으레 그렇듯이 셔틀버스의 맨뒤에서 한두칸 정도 앞에 자리를 잡았다. 도로가 훤히 보이는

앞쪽 자리는 너무나도 뻥 뚫린 듯 했고, 맨 뒤는 사람들의 시선을 어쩔수 없이 받는 곳이기 때문에 상준은

항상 뒤에서 한두칸 정도 앞자리를 선호했다. 그러한 상준의 옆자리에 노인이 털썩 주저 앉았다.

"아..같이 앉으시게요?"

"아, 내키지 않는가? 나한테 늙은이 냄새라도 나는가보이. 껄껄"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라고, 상준은 자신을 향해 웃어보이는 노인을 향해

잇몸을 씨익 드러내보이고는 반대쪽 창가에 시선을 맞추었다. 창문을 향해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왠지모르게

슬퍼보이는 듯 하여, 상준은 창문을 소매로 두어번 스윽 닦아내었다. 그러나 닦이는 것은 먼지 뿐이었다.

상준의 얼굴은 여전히 슬퍼 보였다.

"다 탔으면 출발할테니 움직이지 마슈!"

버스기사의 우렁찬 목울대 소리를 들으며 셔틀버스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상준은 아직도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소매로 닦아내고 있었으며, 노인은 그러한 상준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셔틀버스가 출발한 지 삼십분이 지나도록 상준과 노인 사이에는 말이 오가지 않았다. 상준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노인이 멀미를 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저기..참 말하기 미안하네만...내가 멀미가 좀 심해서 말이야..앞 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안되겠나?"

"네..?"

상준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노인은 마치 상준을 자신의 보호자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상준은 거절하려고

입을 떼었지만, 자신의 소매를 붙잡고 있는 노인을 보니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선뜻 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대가 거절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노인은 자신의 보따리를 한 쪽 손에 걸친 채로

상준을 잡아 끌었다.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기는 상준이었다.

"거기들! 차 운전하는데 돌아다니지 마쇼! 거 뒈지면 괜히 나만 복잡하니까."

"거 기사양..."

버스기사에 말에 욱하려던 상준을 말리는 노인. 그러한 노인을 바라보며 상준은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옮기자 멀미가 조금은 가라앉았는지 노인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 청년은 이름이 뭔가?"

"예. 심 상준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로구만.껄껄."

"실례가 안된다면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존함이라니, 껄껄. 교도소 나온게 무슨 자랑이라고. 내 이름은 장 준하일세."

"친근한 이름이네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이 늙은이야 고맙지.껄껄"

잠시간의 정적.

정적을 깬건 노인의 난데없는 질문이었다. 자칫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노인의

인자한 웃음은 그런 기분마저 달아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다.

"자네는..무슨 일로 교도소에 오게 되었는가?"

"아...."

"아, 뭐 말하기 곤란하면 안해도 되네."

"..."

"껄껄. 말하기 부끄러운가 보이. 뭐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 그렇다면 내 이야기라도 들어볼텐가?"

"어르신의 이야기라뇨..?"

"껄껄..난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지. 무기징역을 선고받아서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할 운명

이었네만..부끄럽게도 윗 사람들이 모범수로 석방해주었지."

살인이라는 말에 상준의 눈썹이 실룩거렸다. 그러한 상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인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마...20년 전쯤 이었을거야. 그 때 당시에는 정말 살기가 어려웠지..나 역시 사업에 여러번 실패하고

막노동을 전전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어. 그때야 모두 살기 어려울 때였으니 특별히 나만 유난 떨

것은 없었지만, 그 때는 세상이 나만 버린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네. 하루 벌이를 술값으로 날리다

보니, 집에는 가져갈 돈이 없었고, 그러한 나를 사랑해줄 여자는 어디도 없었지. 이혼을 하게 되었다네.

벼락을 맞는 것 같았지..."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상준은 흠칫 놀랐다. 칠십 남짓 되어보이는 외모와 달리 노인은 이제 겨우 50이 넘은

자신의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준은 그러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노인을 바라보았고,

그러한 상준을 바라보며 씨익 웃던 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지. 길을 걸어가는데, 왠 술 취한 청년 하나가 자신의 자취방으로 들어가는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겠나?

그런데 술에 많이 취한 탓인지 문을 못열고 있는거야. 처음에는 순수하게 도와줄 요량으로 가서 문을 열어 주었지.

그런데 슬쩍 보이는 거실의 풍경이...그래. 부자였지. 아니 솔직히 부자인지는 모르겠네만, 나보다 부유했던

것은 확실해 보였네. 거실엔 커다란 고흐의 그림도 한 점 걸려있었고,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던 커다란 대형

테레비까지 있었으니 말일세.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 간사하더군. 도와줄 생각에 접근 한 것이 도리어

악랄한 마음으로 변해버린 거지. 나는 술취한 청년의 머리를 옆에 있던 도자기로 사정없이 내리치고는

문을 닫고 거실로 들어왔다네. 그리고는 여기저기 마구 뒤졌지. 솔직히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는 다네.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어. 뭘 어떻게 뒤지고 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다음 날 나는 조그마한 월셋방을

마련할 수 있었지. 대단하지 않은가? 몇 년동안 막노동을 전전해도 얻지 못한 내집을...그런 추악한 짓

한번에 마련한 거야..물리칠 수 없었다네..그 더러운 유혹을.."

노인을 말을 끊고 보따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 곳에는 직 사각형의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노인은 연신 그것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 했다. 상준은 그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노인이 다시 말을 잇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빈집, 만취자들을 골라가며 강도짓을 했어. 물론 걸리지는 않았지. 벌이도 시원찮았어.

처음의 그 한탕을 다시 맛볼 수 없었지. 사람의 욕심이란 것은 정말 무서우이.. 처음에는 두려워서 만취자,

빈집 만을 털었지만, 다시 한번 그 때의 그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는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거야.

그래. 강도짓을 제대로 한건 했지. 며칠 간 수색 끝에 집을 물색하고 행동 패턴을 조사했네. 그 곳에는

과부 하나와 꼬마아이가 살고 있었지. 더할나위 없었네. 여자와 꼬마..제압하기엔 가장 손쉬운 조합 아니겠는가?

그리고 문제의 그날 밤. 나는 조용히 그 집의 담을 타고넘어서 현관을 땄지. 조용히 들어갔어. 예상대로

가족들은 자고 있더군. 왠만하면 소동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난 조용히 집을 뒤지고 돈 될만한 것을

챙기기 시작했지. 그런데 문제가 생긴거야. 그 집에 살던 꼬마아이가 화장실을 가던 도중에 나를 발견한거지.

꼬마는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싸고 있더군. 나는 냅다 달려가 가지고있던 칼의 손잡이로 꼬마의 얼굴을

후려쳤네. 꼬마는 나가떨어지면서 소리를 질렀고, 그 기세에 어미가 깨어나고 말았지.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말았던거야.."

노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상준의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었다. 상준은 연신 자신의

왼팔을 쓰다듬으며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꼬마는 어미의 등 뒤로 숨어버렸지. 나는 말했다네. '조용히 안하면 다 죽을 줄 알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죽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네..난 그렇게 모진 사람이 못되거든..아마 어미도 그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는지

꽤나 세게 나왔지. 내가 초범이라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어. 용감한 여자였다네. 한 손으로는 자신의 자식을

감싸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연신 바닥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지. 아, 물론 그 당시에는 몰랐다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아. 어쨋든 나와 그 어미는 몇 분간 대치상태로 서있었다네. 그러다 별안간

그 어미가 나를 향해 무언가를 던지더군. 나는 그것을 한 쪽눈에 정통으로 맞아버렸지. 

조그마한 은장도였네. 내 눈꺼풀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렸고, 그러한 피가 내 눈에 들어가자 세상이 온통

붉은 빛깔로 물들더군..흥분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어두운 집안에 붉은 색 피였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어미의 몸은 수백 군데에 구멍이 뚫려 붉은 액체를 콸콸 쏟고 있었지..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어쩔수 없었지..나는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창문으로 도망가던 그때,

시체의 뒤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때 불현 듯 뭔가가 떠올랐지. '애새끼가 있었구나!'

나는 냅다 달려가서 어미의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네. 그 뒤에는 아까 그 꼬마가 바들바들 떨고 있더군.

나는 들고있던 칼을 꼬마에게 휘둘렀다네. 그 기세에 꼬마의 왼팔에는 길다란 상처가 났고 피가 철철 흐르더군.

꼬마는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갔고, 나는 그런 꼬마를 바라보며 칼을 들었지. 그 때였어. 꼬마와 내 눈이 마주쳐

버렸다네. 그 꼬마는 두려움과 공포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눈에는 눈물이 어려있었다네..

나는 어미의 시체를 바라보았지. 그리고는 꼬마를 바라보았다네..한 순간 죄책감이 밀려오더군..

나는 꼬마에게 말했다네. '꼬마야. 미안하게 되었다. 사과의 의미로 죽이진 않을거다. 조용히 살아라. 정말

더러워서 못살겠거든 나한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살아라.' 그리고는 도망치듯 그 곳을 나왔지..."

노인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노인은 직사각형의 무언가를 쓰다듬고 있었다. 상준 역시

노인을 바라보며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무언가를 계속 쓰다듬고 있었다.

"휴게소에 도착했으니 볼일 보고 좀 쉬다 오슈들. 한시간 정도 뒤에 출발할 테니."

기사양반의 노곤한 목소리에 버스 승객들은 제각기 갈 길을 가려고 버스에서 하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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