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퀘스트리아력 998년 7월 X일.
오늘 부모님이 일기장을 사주셨어. 무슨 일일까. 물론 나에게만 사준 게 아니라 내 자매들에게도 사준 거긴 하지만.
일기장을 받자마자, 나는 너무 기뻤지.드디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일기장은 사람이 아니지만.
나와는 달리 내 두 자매는 영 시큰둥한지 받은 일기장을 바닥에 내팽겨쳐두고 잠을 자러갔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일기를 쓰고있다. 계속해서 일기장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껄끄러우니까 이름을 지어줄까.
그래, 핑키파이 어때. 분홍색에, 표지에 머핀이 그려져있으니까. 핑키파이. 예쁜 이름이지? 일기장, 너는 앞으로 핑키파이야.
이퀘스트리아력 998년 7월 XX일.
미안해. 그동안 농장일이 바빠서 너를 보러 오지 못했어, 핑키파이. 그동안 혼자 외로웠지?
오늘은 내 얘기보다는 네 얘기를 들어보고싶어. 너는 나에 대해 잘 알 것 같으니까. 그래도 괜찮겠지?
오, 핑키파이.
너를 닮은 분홍색의 갈기는 풍성해서 언제나 통통 튀며 즐겁다고 온몸으로 말할 것 같아.
내 가라앉은 머리랑은 다르게 말야. 네 곱슬머리는 거칠한 내 머리와는 다르게 부드러울것 같아.
너의 꼬리 또한 마찬가지로 구불구불, 굉장히 풍성할 것 같아. 나의 이 볼품없는 꼬리랑은 다르게 말야.
너의 눈은 생기를 담고 하늘을 볼 것 같아. 이 황량한 농장을 돌보느라 축 가라앉은 내 눈과는 다르게 말이지.
너의 발굽은 부드럽고 따스할 것 같아. 하루종일 바위를 캐느라 거칠어진 내 발굽과는 달리 말야.
핑키파이, 너는 성격도 나와 반대일 것 같아. 아주 밝고, 해맑고, 장난끼 많은 아이일것 같아.
우울하고, 음침하고, 멍청한 나랑은 다르게말야. 그렇지, 핑키파이?
이퀘스트리아력 998년 8월 X일.
오늘은 비가 많이 와, 핑키파이. 비가 오는데도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일을 하러 나가셨지.
모두들 비를 맞으면서도 묵묵히 바위를 캤어. 갈기는 다 젖어서 눈을 다 가리는데도 말이지.
비에 젖어 진흙탕이 된 바닥은 또 어떻고! 너는 어땠니, 핑키파이. 오, 오. 내가 맞춰볼게!
이렇게 비가오는 날에는 친구들과 함께 티파티를 할 것 같아, 핑키. 아. 내가 너를 핑키라고 불러도 괜찮니?
괜찮다면 너도 나를 친근하게 불러주렴. 네가 나를 다정하게 불러주면 이 우울한 기분도 싹 가실것 같아.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따뜻한 홍차를 친구들 수만큼 따르고
달콤한 머핀을 만들어 먹고 마시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아.
나도 너처럼 나를 이야기할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벽난로에 앉아 젖은 털을 말리는 가족들 말고 말야.
이퀘스트리아력 998년 9월 X일.
오늘은 근처 포니빌에 놀러갔다 왔어. 그곳은 엄청 활기차더구나. 마을은 아름답고, 그곳에 있는 포니들도 생기차고 활발했어.
우울한 우리집과는 다르게 말야. 아, 만약 네가 나와 함께 포니빌에가게되면 슈가큐브 코너에 꼭 같이 가고싶어.
시간이 없어서 안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아주 달콤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단다. 꼭 핑키, 너를 연상시키는 곳이었어.
내가 가만히 슈가큐브 코너를 보고있자 부모님과 내 자매들은 나를 재촉하며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조금 우울했어.
이렇게 멋진 포니빌을 뒤로하고 우울한 우리집으로 돌아가야한다니. 얼마나 비극적이니
성마가되면 나는 꼭 포니빌에 가 살고싶어, 핑키. 그땐 너도 나와 함께 가 주겠니?
이퀘스트리아력 999년 1월 X일.
오랜만이야! 그동안 너무너무 바빴어. 그래서 핑키 너를 보러 올 시간도 없었단다.
오늘은 우리 큐티마크에대해 이야기해볼까? 나는 아직 큐티마크가 없어. 그건 핑키 너도 마찬가지지?
오, 우리 둘에게 공통점이 하나 생겼구나! 큐티마크가 없는 건 좀 슬프지만 그래도 너와 공통점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뻐.
핑키, 아마 나는 재미 없는 돌덩이가 큐티마크로 새겨질 것 같아. 우울하게도.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이, 내게도 돌멩이모양의 큐티마크가 생기겠지.
하지만 핑키 너는 다를 것 같아. 너는...음. 재미있고, 장난끼 많은 아이니까. 그러니까 큐티마크도 굉장히 개구쟁이일것 같아.
큐티마크가 개구쟁이라는 말은 조금 이상한가. 굳이 꼽아보자면, 핑키 네겐 풍선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왜냐고? 글쎄, 그냥 그래.
이퀘스트리아력 999년 2월 XX일.
우울해, 핑키. 너무 우울해. 나도 네가 되고싶어.
이퀘스트리아력 999년 3월 X일.
아직도 우울해. 미안해, 핑키. 너와 많이 이야기하지 못해서.
이퀘스트리아력 999년 4월 15일.
와우! 오늘은 너무 기쁜날이야. 오늘 커다란 무지개를 봤어. 세상에, 그렇게 큰 무지개는 태어나서 처음봐.
셀레스티아께 맹새코, 처음이야! 그 무지개를 보는 순간 깨달았어. 나는 기뻐야한다고. 그리고 이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오, 그래서 나는 준비했지. 작은 파티를 말야. 늘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있던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환하게 웃던 날이었지.
다들 웃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췄어. 야호! 너무나 신나지 않니? 파티라는게 이렇게 신나다니.
아. 그리고 또 한가지 기쁜 소식이 있어. 내게 큐티마크가 생겼어! 믿기지 않지? 궁금하지? 나도 믿기지 않아.
내게 이런 큐티마크가 생길줄이야! 오늘은 기쁜일이 겹치고, 겹치고, 또 겹쳐서 펑! 하고 터질 것 같아.
아아, 나는 너무 행복해. 너도 그렇지, 핑카미나?
-탁.
두꺼운 일기장의 책장이 덮히는 소리가 들렸다. 건조한 책장이 서로를 맞이하는 소리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리던 핑키가 뒤를 돌아봤다.
핑키의 바로 뒤에는 낡고 오래된 거울 하나가 있었다. 오랫동안 닦지 않은 듯 빛을 바랜 거울 속에는 분홍색 포니한마리가 비쳤다.
축 처진 우울한 눈매를 가진 포니는 서러운 듯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거울을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오, 핑카미나. 왜 그래?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는거야."
거울을 마주한 핑키가 애처로운 목소리로 거울을 향해 말을 걸었다. 잠시 눈물을 멈춘 포니가 말을 하려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깨달은 듯 입만 벙긋거리던 포니가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네가 말했잖아. 내가 되고 싶다고. 네가 원해던 대로 해준거야, 핑카미나. 이젠 내가 네가 될게. 네가 핑키가, 내가 핑카미나가 되는거야. 어때, 멋지지 않니?"
거울속 핑카미나의 눈가를 발굽으로 슥 쓰다듬은 핑키가 자신의 발굽을 쳐다봤다. 거칠거칠하고 흙이 잔뜩 묻은 발굽.
발굽 끝에 묻은것은 거울에서 묻은 먼지 뿐이었다. 오, 핑카미나의 눈물이 발굽에 묻을 수는 없겠지. 거울속 핑카미나를 물끄러미 보던 핑키가 환하게 웃었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야. 그렇지, 핑카미나? 웃어. 네가 원하던 거잖니?"
거울속의 핑카미나는 여전히 말 없이 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