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전 이야기 :
[장편] 위대하지도 강하지도않은 트릭시 (1) 위대하지도 강하지도않은 하찮은 마술사는 아무런 목적이 달리고 또 달렸다. 하염없는 달림은 허무한 공허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몰랐다.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물론 바라는 것도 없었다. 포니들의 시선따윈 없었고 뒤틀려버린 마음의 앙금의 고통도 그나마 느껴지지않았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가슴 속 공허함은 허기를 느낀채 더욱더 트릭시를 졸랐지만 아무것도 느끼지못하는 마술사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공허한 감정이 마치 자기 자식같았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내 자신조차도 돌볼 수 없는 난... 난....."
트릭시의 중얼거림은 이내 울부짖음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과 어울리는 어둠 속에서 울려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에 대꾸해주지않았다. 어둠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비어버린 무대의 관객석마냥 허무한 어둠과 비아냥거리는 비웃음과 날카로우면서 예리한 오만한 표정들 어둠 속에서 신기루처럼 흘러지나갔다. 응어리 진 울음소리만이 울러퍼졌다. 그렇게 울부짖는 한마리 가엾은 포니는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그 끝이 없을 달림 속에서 드디어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거대한 그것이.
갑작스러운 그것에 등장에 트릭시는 울음도 멈춘채 그것을 바라보았다. 고요함, 어둠, 끈적거림, 불안함, 한기.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트릭시의 뺨을 거칠게 만졌다. 흘러내리다 말라버린 눈물만이 있는 트릭시의 얼굴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공포에 그것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의 마음 속 공허함이 다시 트릭시를 졸라되었다. 뒤틀리는 듯한 꼬집힘에 트릭시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그녀였다. 두 뒷발에 힘을 준 트릭시는 그 거대한 공포 속으로 뛰어들었다. 거대하고 어두운 그 덩어리 속에 뛰어든 한마리 포니는 그 무엇보다도 작게만 느껴졌다.
에버 프리 숲은 세상의 절반의 것들의 낙원이다. 이 세상 버림받은 것들은 그들의 추악한 몰골을 숨기고 싶어했고 다른 우월한 것들의 비웃음으로부터 가려지길 원했다. 그런 이들을 위로하듯이 에버 프리 숲의 나무들은 빽빽하게 빛들을 감싸안았고 스스로가 시선을 가려줄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자욱한 안개는 기분좋은 습기로 가득 채워졌고 버림받은 것들의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주듯이 한아름 그것들을 안아주었다. 차갑지만 나쁘지만 않은 안개의 감촉은 그 어떤 불안함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마치, 뜨거운 여름날 불어오는 기분좋은 산들바람처럼. 밤의 수호자이자 달의 주인인 그녀는 누구보다도 그것을 잘 알았다. 그녀는 버림받은 존재들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다. 많은 포니들은 밤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태양이 휴식을 취하는 밤이면 포니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늑한 집 안에서 잠을 청했다. 달빛의 잔잔한 빛만으론 나약한 포니들을 안심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해 신경쓰지않았다. 태양의 시간을 걷는 이들이 있듯이 달의 시간을 걷는 이들이 있으니까.
에버 프리 숲의 것들이 그런 이들이였다. 나무 늑대들은 보름달이 뜰때면 잔잔하며 온화한 빛의 매력에 감탄하며 울부짖었고 만티고어들은 어둠을 틈타 하늘을 활보했다. 추악한 얼굴들에 겁에 떨 포니들은 아무도 없었고 밤은 오직 버림받은 이들만의 시간이였다. 그 날도 그런 날들이였다. 숲의 늑대들의 기쁨의 울부짖음, 안개의 자욱함 속에서 생기를 되찾는 버섯들의 씰룩거림, 만티고어들의 고요하면서도 위풍당당한 비행. 달의 주인이자 여신 혹은 세상 절반의 구원자인 알리콘은 두 눈을 굳게 감으며 그것들의 행복을 느꼈다. 수많은 포니들은 그녀를 실제로 본 적이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포니들의 수호자이며 버림받은 것들의 구세주였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나이트 메어 문이라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녀를 보름달이라 불렀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니들은 그녀를 루나 공주님이라 부르기를 원했다. 포니들의 밤의 수호자. 버림받은 것들의 어머니. 두가지 얼굴을 가진 그녀였다.
버림받은 것들의 어머니는 포니들의 꿈 속의 수호자였지만 반대로 에버 프리 숲의 것들의 어머니이기도 하였다. 루나는 그런 알리콘이였다. 있는 이들보다 버림받아 아무것도 없는 이들의 대모.. 대리자.. 대변자..
그녀는 그 날도 그런 모든 이름에 걸맞게 에버 프리 숲을 주시하였다. 고요한 숲 속의 평화는 그날따라 빠르게 깨져갔다. 나무 늑대들의 흥분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버섯들의 두려움 섞인 떨림이 이곳 저곳에서 느껴졌다. 숲의 모든 것들이 무엇인가에 혼란을 느끼며 울부짖었다. 흥분을 감추지못한 것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못한채 그것에 공포에 떨며 그것을 쫓았다. 숲 속 어둠의 너머에서 바스락 바스락 썩은 낙엽 밞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숲의 대모는 빠르게 그것을 알아차리며 숲의 어둠 속 너머의 것에게 날아갔다. 흥분을 감추지못한 나무 늑대들은 어둠 속 너머의 부스럭거림에 으르렁거렸다. 그들의 잔잔한 형광빛 두 녹색 안광은 어둠 속 너머의 허락받지 못한 것에게 떨리고만 있었다.
가엾은 트릭시는 그 속에 들어온 것을 금방 후회했다. 에버 프리 숲의 것들에 대해 잠시 잊고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그녀 스스로 절망했다. 그녀는 한번 더 자신이 위대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며 자학하며 울먹거렸다. 기분나쁜 안개의 감촉들이 그녀의 이곳 저곳을 더듬으며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것에 트릭시의 불안감은 더해졌다. 소용돌이치는 불안감은 그녀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트릭시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기분나쁜 침묵 속에서 썩어문드러진 낙엽들의 바스락거림이 퍼져나갔고 침묵의 깨짐은 으르렁거리는 섬뜩한 소리로 되돌아왔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눈치챈 트릭시는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무늑대무리였다. 기분나쁜 울부짖음, 썩어버린 나무뿌리의 쾌쾌한 냄새, 뭉특하지만 뾰족한 나무말뚝 이빨들... 끔찍한 것의 덩어리들이 가엾은 트릭시를 뒤쫓았다. 겁에 질린채 당황한 트릭시는 달리고 또 달렸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만 일어나는지 알수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전혀 중요치않았다. 나무늑대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그녀의 고막을 찢어버릿듯이 압박했고 트릭시는 계속해서 달리며 살고싶단 생각만 하였다. 숲은 어두웠다. 마치 어둠이 길고 긴 카페트가 깔린 것마냥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끔찍한 녹색 불빛들만이 그녀를 주시했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와 늑대들의 잔혹한 울음소리만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피곤하고 지쳤다. 서서히 두 눈에 힘이 풀렸지만 트릭시는 계속해서 신음하며 달렸다. 마른내 섞인 헐떡거림은 숨막히는 괴로움에 졸림으로 바뀌어 그녀를 괴롭혔고 온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은 차갑게 식어버리며 그녀의 온 몸을 한기로 감싸안았다. 죽고싶지않았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 편해지고 싶었다. 너무... 괴로웠다. 가엾은 트릭시는 시선이 흐려짐을 느꼈다. 온 몸에 힘이 빠진 그녀는 포니가 아닌 그저 고깃덩이처럼 비참하게 쓰러졌다.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낙엽 소리가 울러퍼지며 탐욕스러운 나무늑대들을 자극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볼품없이 쓰러진 포니는 헐떡거리며 마음 속으로 자신을 달랬다. 어차피 자신이 나무늑대들의 저녁 식사가 되봐야 슬퍼할 포니는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 없어진다면 어쩌면 더 좋을지도 몰랐다. 더이상의 비웃음도 없었고 더이상의 비아냥거림도 없었다. 어쩌면 운좋다면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보다 지금의 고통이 견딜만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까지 이르자 트릭시 자신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음을 느꼈다. 트릭시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미소지었다. 하지만 두 눈에 멈추지않는 눈물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