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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록, 10일째 항우울제 안먹고 잘 살고 있어요!!
게시물ID : gomin_8189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Written
추천 : 4
조회수 : 77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3/08/26 09:27:58





안녕하세요
제목때문에 어, 우울증환자네 이러고 들어오셨죠?
ㅎㅎ 네 맞아요 저는 우울증 환자에요.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으로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기 시작한지가 이제 2년이 좀 넘어가네요.
17살 때부터였고, 그 전부터도 병원은 다니진 않았지만 아마 이 병이라는 게 마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건 더 오래전이었을꺼에요.

한 번은 약을 안 먹어도 괜찮길래, "그래, 이런 약에 의존하지말고 살아보자! 이런 기분들 따위에 내가 왜 져? 난 더 강해."
이런 패기로 며칠 째 약을 안 먹다가 더 심해져서 병원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간 적도 있어요.
아마 저같은 분들은 이런 경험 있으실 것 같아요. 그치만 이게 안 좋은 거더라고요.
자기 혼자 컨트롤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실은 그게 오만이고 패기더래요. 끊을 때까지 병원에 가서 조절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작년까지만 해도 병원에 가기가 정말 싫었던 것 같아요.
저처럼 마음이 조금 병드신 분들은 아마 아실 것 같아요. 우리같은 사람들은 상황이 조금만 달라져도 쉽게 감정이 상해요.
그리고 쉽게 기분이 나빠지고 또 우울해지고, 슬퍼지기도 해요. 그리고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일도 저지르고..
그게 계속되면 삶을 더이상 이어가는 걸 그만두고 싶어져요.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번 감정이 달라져서
어떤게 내 진짜 감정이고,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뭔지, 내 존재까지도 헷갈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지금 숨을 쉬고 있는건 내 육체지만, 내 정신과 영혼은 이미 나를 벗어난 것 같은 느낌..
그러니까 더 열심히 숨쉬고, 더 많이 움직이지도 않게 되고, 주위에 모든 존재들이 귀찮게 느껴지고요.
날 건드리는 게 있으면 화도 버럭 나고, 어쩔 때는 화도 나지 않고 잠잠히 있을 때도 있어요.
그렇게 잠잠하게 있으면 사방이 조용해지고 평화롭다고 느껴져요. 저는 그래서 우울함이 심하게 밀려오면
핸드폰을 아예 꺼놔요. 배터리도 던져놔요. 친한 친구도, 아는 사람도, 가족도 그게 누구라도 다 무시하고 싶어지거든요.
신경쓸 거리들을 최대한 버려두고, 저 혼자 침대에 누워있거나 보고싶은 영화를 봐요.
동굴에 들어가듯이 혼자 있는거에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하루종일 내가 꾼 꿈이 생각날 때도 있어요. 사실 틀어박혀서 살다보면 꿈을 그렇게 많이 꾸게 돼요.
그게 특히 과거와 관련된 꿈들이면
그 하루가 계속 우울해질 뿐만 아니라 그 여운이 길게 남아요.

나는 자퇴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는 꿈을 꾼거에요.
근데 눈을 뜨고 한 5분동안까지도 내가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줄 알았어요.
꿈 내용이 내가 자퇴한 후에 다시 복학한 내용인데, 친구들이랑 있는 내 모습과 친구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고 현실같아서
학교에 복학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정신이 드니까 내 현실이 보이더라고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남아있는 내 모습이.
사실 이런 꿈을 꽤 자주 꿔요.


일주일, 근래는 이주일에 한 번 매일 병원에 갔어요.
가서 그동안의 내 기분들, 마음들을 상담하고 약을 타서 아침 저녁으로 꼬박꼬박 먹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난 못살것 같다고 바로 10일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쩌면 나는 노년이 되어서도, 죽을 때까지도 정신과에 다니면서 약을 먹으며 살거라고 생각했죠.
그때까지 과연 내 주치의는 몇 번이나 바뀔까라는 생각도 했었고요.

내가 집에서 조금만 짜증을 낸다든가 기분이 안 좋아보이기만 할 때마다
저희 엄마는 항상 내가 약을 안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하셨어요. 그리고 약봉지와 물을 주셨죠.
그런 일이 꽤 오래전부터였는데도 항상 기분이 묘해졌어요. 마치 약을 먹으면 이러지 않을것이다.. 괜찮아질 것이다..
라고 엄마도 나도 생각하는 듯 했어요. 우스웠어요. 약에 휘둘리는 나랑 우리 가족이.
사실은 약을 먹어도 우울할 땐 우울하거든요.

아침저녁으로 약을 계속 챙겨먹는다는게,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귀찮은 일이에요.
아프기라도 해서 다른 약도 먹어야되면 먹을 약이 너무 많아서 작은 병은 약먹기 귀찮다고 병원에 안가기도 했었고요.

주위에서 우울증같은 건 마음의 감기라며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듯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나를 위로하려 할 때마다 마음 속으론 항상 부정적이고 비웃었어요.
사실이 뭐든간에 나는 남들과는 다르니까, 또 그게 바로 나니까 그걸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할 때마다 더 우울해졌거든요.




제 생일이 8월 17일이었는데, 아마 이 시점부터 약이 떨어져서 안 먹고 있었어요.
원래 떨어질 무렵에는 병원을 들리곤 했었는데 시기를 놓쳤거든요.
그때가 주말이어서 다음주가 되면 가려고 했는데 딱 그 무렵이 알바랑 일에 치여서 바쁘기도 했고,
어찌어찌하다가 일주일을 병원을 안 간거에요.
저보다 엄마가 더 다급해보일 정도로, 처음엔 어떻게라도 가보자라고 했는데
제가 약을 안먹고도 괜찮아보이니까 엄마도 기다리더라고요.
그리고 일주일 후에 병원에 갔어요.


제가 일주일동안 약을 안먹었는데도, 그 전보다 더 잘지내고 긍정적이게 되었어요. 예전보다 훨씬 우울하지 않고 짜증도 덜 나요.

사실 저는 그동안 약을 안먹었으니 또 약 타려고 병원에 간거거든요.
근데 선생님 대답이 의외였어요.

일주일을 약없이 그렇게 잘 지냈다 하니, 그럼 한 번 약을 먹지 말아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다시 우울해질 수도 있으니 타가야 되지 않을까요? 라고 우려되는 목소리로 물어보자
약을 안먹어도 괜찮다고 했으니 다시 그러면 병원에 찾아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의사한테 들으니까 너무 신났어요. 병원을 나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흥까지 나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여태까지 병원에 가면 제 목소리 톤이 낮고, 힘없었는데 오늘은 좀 높은 톤으로 생기있게 말한 것 같단 걸 깨달았어요.

와, 공식적으로 내가 약을 끊었구나. 그리고 이제 3일이 지났네요.
오늘 아침도 여전히 꿈을 꿨지만 난 괜찮아요.
예전의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아, 우울해.. 를 시작으로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 스스로를 다운시켰는데
이제는 아, 우울하다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아, 이런 생각 하지말자. 하고 내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진짜 저로서는 2년만의 성장이에요. 어쩌면 내 인생사에서 손에 꼽을만큼의 성장을 한걸지도 몰라요.
스스로 너무 기뻐요.

어쩌면 이게 길게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길게 간 적이 처음이라 요새는 대체적으로 기분이 한결 가볍고 좋아요.
갑자기 이렇게 변한 시점도 우연일지 몰라도 내 생일이 됬고, 그덕분에 내가 그 날을 기점으로 다시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네요.

고게에 저같은, 아니면 저보다 더 심한 우울증이신 분들이 있는 걸 알아요.
저도 아직 다 극복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말해드리고 싶은 건,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끝이 있긴 하더라고요. ㅎㅎ

그것밖에 말해드릴 수 없네요! 더 말했다가 다시 우울해져서 병원에 찾아가면 제 스스로한테도 실망할 것 같아
자만감은 좀 낮춰보렵니다. ㅎㅎ; 우울증 겪고 계신 분들, 같이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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