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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구조본부와 참여정부
게시물ID : humordata_6147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꿀딱지
추천 : 4
조회수 : 86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06/18 21:40:30
삼성 구조본과 참여정부 

삼성에서 나는 늘 이방인이었다. 구조본(구조조정본부) 팀장들과 아무리 자주 어울려도 그들과 나 사이의 간극은 좁아지지 않았다. '회장을 향한 강력한 충성에 대한 강력한 보상'이라는 체계에 길들여져 있는 그들, 비리를 함께 모의했다는 공범자 의식으로 똘똘 뭉친 그들이었다.
이방인으로 끼어든 나는 그저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왜 구조본을 떠났는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방인인 내게는 그들이 쓰는 말 하나하나가 거북했다. 예컨대 구조본 팀장들은 "회장님과 그룹을 보위하기 위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보위하다'라니, 내게는 영 어색한 표현이었다. 꼭 북한에서 쓰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썼다.
  구조본 공식 문서에서 '이건희', '회장' 등의 표현을 직접 쓰는 경우는 없었다. 이런 표현을 직접 쓰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이건희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A가 쓰였다. 이건희 부인인 홍라희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A'가 들어갔다. 이건희 일가에 대해서는 늘 이런 식이었다. 이건희의 아들인 이재용은 JY, 큰 딸 이부진은 BJ, 작은 딸인 이서현은 SH라고 적곤했다. 봉건제 시절, 중국에서는 공문서에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함부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21세기 민주사회에서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이다.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이건희의 이익이 그것이다. 삼성의 이익과 이건희의 이익이 충돌할 때면, 늘 이건희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구조본 팀장들이 기업 경영자가 아니라 이건희의 가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 이건희의 가신들이 모인 회의에서 국가적인 문제가 논의됐다면? 황당한 일이다. 이건희의 이익을 기준으로 내려진 결정이 국민 다수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이 흔했다. 정부와 삼성 사이의 거리는 늘 가까웠고, 구조본 팀장회의는 이건희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요리했다. 
  아주 시시콜콜한 정부 방침까지 구조본 팀장회의에 올라오곤 했다. 대표적인게 '참여정부'라는 명칭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전 열린 팀장회의에서 노무현 정부의 명칭에 관한 안건이 올라왔다. 당시 회의에서 '참여정부'가 좋겠다고 의논이 모아졌는데,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공식명칭이 됐다. 노무현 정부와 삼성 사이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노 전 대통령은 삼성에 진 빚이 너무 컸다. 정권 초기 안희정 등 측근들이 구속되는 것을 보며 노 전 대통령과 삼성의 연결고리가 끊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순진한 오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삼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건희는 대통령을 우습게 여기곤 했다. 정부의 경제특구계획에 대해 이건희가 사장단 회의에서 "대통령쯤 되는 사람이 쩨쩨하게 넘 통이 작다"며 멸시하는 말을 한 게 기억난다.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이건희의 북경 발언이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실언이 아니라 소신이라고 본다.
  대통령 선거 시기가 되면, 삼성 구조본은 분주해졌다. 매일 매시마다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받아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논의했다. 팀장들은 각 후보의 우열을 면밀히 주시하며 신경을 곤두세웠다. 당시 분위기가 너무 극성스러워서 의아했는데,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고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선거자금 지원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가능성 있는 후보에게 자금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2002년 대선 당시, 구조본 팀장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이회창을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면 반가워했고 그렇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낙담했다. 
  그런데 예외가 있었다. 나와 이학수 실장이다. 하지만 나는 속내를 드래내지 않았고, 이학수는 솔직하게 이유를 말했다. 이학수는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과 인간적으로도 아주 친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학수를 '학수 선배'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학수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삼성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노무현 정부 정책 가운데 삼성에 불리한 것은 거의 없었다. 대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제안한 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채택한 사례는 아주 흔했다. 심지어 삼성경제연구소는 아예 정부부처별 목표와 과제를 정해 주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게 한-미 FTA이다. 먼저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 등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한미FTA체결 이후 한국 정부의 주권과 사회 공공성이 얼마나 큰 위협을 받게 될지 등에 대해 다양한 지적이 나왔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당시 한미FTA 추진 계획을 사실상 입안하고 추진했던 김현종은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2009년 3월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삼성을 생각한다, 변호사 김용철, 사회평론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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