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UN총회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언급한 것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은 이날 유엔본부에서 열린 새마을 고위급 특별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개회사를 통해 "당시 대통령이셨던 선친께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성공 요인들이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 국민과 나라를 바꿔 놓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했습니다.
이에 반기문 총장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며 화답했습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앞다투어 새마을운동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이자, 네티즌들이 "70년대로 회기한 시대착오적 발상", "새마을 외교라니 70년대로 되돌아간 듯" 등의 반응을 보이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의 새마을운동 띄우기를 보면, 시간이 70년대로 돌아간 것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박근혜 정부 초기로 돌아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지난 2013년 2월 16일 농림식품부는 인수위 업부보고에서 농어촌의 침체된 분위기를 일신하고 주민 역량을 결집해 마을 발전을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2011년 부터 추진 중인 '함께 하는 우리 농어촌 운동'을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보다 한술 더 떠 새마을운동을 국민 정신운동으로 승화시키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취임도 하기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각계각층의 구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업은 비단 정치권에서만 벌어졌던 일은 아닙니다. 지자체도 이 대열에 앞다투어 합류했습니다. 경북 구미시와 문경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기던 서민음식을 관광상품화 했습니다. 문경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에 살았던 문경읍내 청운각 인근에 그가 즐기던 서민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을 개장했고, 구미시 역시 2009년 7월 이후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 보릿고개 시대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박정희 시대의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한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움직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도되어 온 일입니다. 구미시의 박정희 동상 건립,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개관한 '박정희 기념도서관', 문화부와 행정안전부가 구미시에 조성 중인 '새마을 테마공원' 등 곳곳에서 박정희 띄우기 작업이 벌어지고 있고, 수구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독재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작업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총장의 새마을운동 띄우기가 새삼스러울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동안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반국민들은 물론이고 정치인, 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박정희 시대에 이루어진 산업화와 근대화의 공로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 박정희 시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일관된 주장입니다. 반면에 자발적인 시민들의 민주혁명이었던 4.19혁명을 군사쿠데타로 짓밟고, 유신독재를 통해 민주주의와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에 불과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상반된 주장이 지난 몇 십년 동안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과연 박정희 시대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박정희 시대의 공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권 획득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것이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쿠데타를 동원해 정권을 획득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5.16을 혁명으로 보는 세력들도 있습니다. 시작은 쿠데타였으나 끝은 혁명이었다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과 쿠데타는 그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어 집니다.
당시 5.16의 주체는 다수의 시민들이 아닌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부세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라 정의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들은 철저히 무시되고 파괴되었으며 그 잠재적인 요소들까지 무력과 강압에 의해 유린당했습니다. 정당과 국회는 해산되었고, 권력은 쿠데타 세력들에게 사유화되었습니다. 혁명이라면 권력이 사유화되어서도 안되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뿌리채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이런 혁명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습니다.
유신체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신헌법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유신체제로 인해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제도와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 균형의 원리는 무력화되었으며, 오직 대통령을 정치권력의 최고 정점으로 삼는 권위주의적 정부형태만 남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체제에 대한 어떤한 비판과 도전조차 용납되지 않았고, 이에 저항할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당하고 투옥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어야 했습니다. 합법적으로 탄생하지 못한 정부가 철권통치를 통해 1인 독재를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 바로 유신헌법인 것입니다. 이처럼 박정희 시대는 정권 획득 자체부터 합법적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과정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1인 독재체제였을 뿐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주장하며 역사를 자의적으로 써내려가고 있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5.16 쿠데타도 '조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구국의 혁명으로 인식되고, 유신독재 역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여 질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어느 한쪽의 입장과 주장만 일방적으로 주입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강요이고 세뇌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공'이 있다면 분명히 '과'도 있습니다. 진실로 역사의 판단에 맡기려 한다면 두가지 모두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마땅합니다.
박정희 기념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유품과 영상, 홍보물만 게시해 놓을 것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시절 희생당한 사람들과 사건 사례들도 함께 전시되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찾던 서민음식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그가 궁정동 안가에서 보여주었던 모습들도 함께 공개되어야 합니다. 박정희 시대, 박정희 대통령의 두 가지 모습이 모두 일반 국민들에게 보여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의 모습만 보여주고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극히 주관적인 가치판단일 뿐 절대로 객관성과 공공성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는 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성과에 대한 논란은 논외로 치더라도 박정희 시대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먹고 살기 막막했던 시절에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과 기회를 준 시대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사에 대해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미래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성찰과 합리적인 인식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 극우세력들의 과거사 인식태도를 보면 이는 명확해 집니다.
박정희 시대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결국 국민의 몫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박정희 시대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국민들에게 드러나야만 합니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논란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끝없는 국민 갈등과 분열을 부추길 뿐입니다.
과거 독일의 잘못을 거듭 반성하며 주변국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의 과거인식 태도를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전후 독일이 왜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으로 다시 편입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독일인 모두가 나치 범죄에 대해 영원한 책임을 갖고 있다"는 독일 총리의 발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한 솔직하고 진정성있는 고백과 성찰,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책임있는 행동 없이는 그 어떤 정치세력이나 국가에게도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루 빨리 깨우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죽은 자를 신의 영역으로 끌어 올리려는, 산 자들의 욕망을 보고 문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