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강연 주제를 '범죄학'에서 '정의'로 바꾸었나?"
- '한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내걸고 전국 강연을 준비하는 걸로 안다.
"제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나왔을 때 책을 읽었다. 그 책이 쉽지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데도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이 상당히 놀라웠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은 정말 이 책을 사간 사람들이 다 이 책을 끝까지 읽었을까?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슬쩍슬쩍 물어보고 알아봤다. 그런데 읽었다는 사람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엄청난 부수가 팔려나갔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관심을 갖게 됐고, 경찰대에서 마이클 샌델의 책을 부교재로 쓰면서 학생들에게 읽으라고 했다. 그리고 책에 나오는 철학사조 간의 논쟁, 이런 부분들을 학생들에게 제시하면서 토론도 해봤다.
그때는 제가 이렇게 대중과 만나리라는 생각은 못하고 우리 경찰관들이 가져야 할 자베르적인, 즉 현장적이고 단순화된 처벌적 정의가 아니라 조금 더 숙고하고 심사하는 시각에서의 정의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부교재로 사용한 것이다. 양자가 서로를 적으로 보는 전쟁적, 냉전적인 상태에서 또 다음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5년의 시간, 이 시간이 우리 국민들에게 있는 그러한 냉전 심리를 와해시켜 조금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할 기회다.
그동안 외면하고 회피했던 복잡한 사안들을 좀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고민과 논쟁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다음 선거 때는 지금 같은 비극적인 양강구도, 이기고 지면서 극명하게 희비극이 갈리는 게 아니라 승자에게 박수를 충분히 쳐줄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좋은 테마가 정의였다. 보편적이고 제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자신있는 주제여서 그걸로 우리 국민들과 만나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렇게 불합리하고, 단단한 방어심리의 껍집을 깰 수 있지 않을까?"
- 28개월 동안 무료로 범죄학 강의를 해왔는데, 갑자기 정의로 주제를 바꾼 것은 대선 결과도 영향을 미친 건가?
"당연하다. 제 역할이 확대되었다고 본다. 바뀐 게 아니라 (제 역할의) 확대라고 봐 달라. 제가 진행한 범죄학 강의 콘서트도 정의에 관한 것이다. 범죄를 테마로 했지만 과연 우리 사회에서 범죄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좌우 범죄학의 주장들을 같이 살펴봤다. 그러면서 처벌이 능사일까 하는 민감한 주제도 던졌다. 그래서 다른 대안적인 방안들도 얘기했다. 연쇄살인범, 묻지마 살인범 등 우리가 가장 미워할 수 있고, 아무 불편함 없이 그냥 돌 던질 수 있는 사건들도 꺼내서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민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왔다. 범죄라는 좁은 영역에서 정의를 보던 것을 좀 크게 확대해서 보자는 것이다.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범죄자다. 하지만 일반적인 범죄학 테두리에서 이런 얘기를 잘 안 한다. 이명박 정권이 5년 동안 했던 것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도 일탈과 범죄 영역에서 다룰 수 있다. 그러니까 정의와 범죄의 영역이 그렇게 먼 것이 아니다."
"진보야 박정희 대통령을 건드려서 어떤 결과나 나왔니?"
- 한국사회가 여전히 정의가 필요한 사회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다. 먹고 살기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는 정의 이야기를 하기가 힘들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한다. 그 앞에는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정의를 얘기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내가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악으로 보고 싶어하는 시각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그 부분이 역사에 대한 진보와 보수 간에 화합이 필요한 지점이다. 진보야, 박정희를 건드려서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보라. 51.6%가 똘똘 뭉쳤다.
지금 제가 잡혀가지 않고 죽지 않고 하고 싶은 얘기를 막 떠드는 그 이면에는 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민주 열사들이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던 산업화의 역군들도 있다. 이 둘을 모두 끌어안고 가고 싶다. 그리고 이 둘을 좀 화해시키고 싶다. 서로에게 빚진 게 있고, 서로가 인정해줄 게 있다고 보고 시작하자. 그리고 나서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잘못된 정의의 관점에서 단죄해야 할 부분들은 단죄하자. 그렇게 했을 때 우리가 정말 통합과 화합을 이루고 공정한 경쟁으로 갈 수 있다."
-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그 자베르가 많을수록 정의가 빨리 충만될까, 아니면 표 교수처럼 인간화된 자베르가 많아야, 자베르가 좀 인간적으로 진화해야 정의가 좀 더 빨리 충만해질까?
"대단히 어려운 질문이다. 일단 법집행의 영역, 형사사법의 영역에서는 다수의 자베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위의 영역, 정치의 영역 내지는 의사결정 단계에서 법 집행을 하는 고위 관료들은 진화된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선에서 일하는 경찰관들은 좌고우면하고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법과 원칙, 규칙, 지시에 따라서 자베르처럼 어떤 압력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런데 그에게 내려지는 지시, 그들이 일하기 위해 따라야 할 규칙, 법, 이건 잘 만들어야 한다.
법과 규칙, 제도는 단순무식하게 만들어지면 안 되고, 대단히 복잡하면서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것도 담아야 하고, 시대정신도 담아서 만들어야 하고, 정책도 입안되어야 한다. 지시와 명령이 많은 숙고와 고민 속에서 나와야 일선에서 법을 집행하는 수많은 자베르들은 고민과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기의 단순한 정의감만을 가지고 수행을 해도 그것이 궁극적인 '메타 저스티스'(정의의 범위나 경계를 아우르는)에 부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 대선을 빼고는 표 교수가 선택한 후보들이 다 승리했다. 대선 족집게라고 해야 하나?
"기회주의자(웃음). 요즘 저를 부르는 새로운 명칭이죠. 기가 막힌 기회주의자."
- 대체로 기회주의자는 승리하는 쪽으로 붙죠.
"그러니까 저를 기회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번에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리라고 판단했다는 거다. 근데 제 트위터에 들어와 보면 과거에 막 욕설, 비방, 악플 달던 친구들은 다 나갔다. 재미없으니까. 저는 다른 분들과 다르다. 저는 심리게임을 할 줄 알기 때문에 그분들을 살짝살짝 약 올려 그러한 비방이 저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서 나가게 한다. 대신 조금 수준이 높아진 형태로 약 올리는 경우가 있다. '야, 기회주의자 표창원, 너 어떡하니? 이제 새됐다' 이런 식의 글들이 많아졌다. '문재인 될 줄 알고 거기 붙었는데, 쯧쯧' 뭐 이런 식이다. 저는 그런 것들에 '오케이, 위트가 있어 받아줄 만해' 하고 허용한다."
"5년 전 이명박 후보를 찍은 걸 후회한 적은 없다"
▲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제가 후회하고 말고 할 정도로 그동안 제 한 표의 의미를 그렇게 크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웃음). 그만큼 저는 솔직히 정치에 무식했다. 무식했고, 무지했고 비겁했다." | |
ⓒ 남소연 |
▲ "정의는 때로는 대단히 천천히 오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온다. 그리고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이겨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좌절할 때가 아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 |
ⓒ 남소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