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이 책을 권해주며
한마디 못을 박았다.
'30분이면 읽는다.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 봐야 하는 책이야.'
청구회추억. 따듯해 보이는 표지와 함께 눈에 띄는 것은
신영복 글.
그 순간 누나가 말한 사람 앞에 '한국'이라는 말이 생략된 배려와
그로인한 의무감같은 것을 느꼈다.
'신영복'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아버지와의 술자리였다.
매일 꼭 막걸리 한병을 챙겨드시는 아버지는 가끔 소주를
드시기도 했다. 어렸을 적엔 진로,참이슬 류를 드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느 시절부터 식당에서건, 심부름에서건
'처음처럼' 소주를 강조하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이...
'처음처럼'이 부드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기 써 있는 이 글씨가
신영복 교수의 글씨라고. 이것때문에 내가 이 소주를 사먹는 거라고.
그리고 그가 이 글씨를 쓰기까지의 과정과 수입금을 기부금으로 쓴 것도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흔하게 볼 수 없었던 아버지 소주 드시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세 번, 그것도 매번 똑타은 래파토리로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가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사람이다'를 돌려 말하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신영복 교수가 재직한 성공회대 관련 인사들의 글을 여러매체에서
접하였다. 성공회대 관련 글은 오유에서도 물론 접한 바 있다.
http://todayhumor.co.kr/board/total_view.php?total_table_no=599967&origin_table=freeboard&origin_no=313183&page=2&keyfield=&keyword=&sb= 그리고 나는 신영복 교수의 이야기, 그것도 볼살이 간지러울 정도의
굉장히 개인적이고 순수한 내면이 담긴 글, 청구회추억을 보게 되었다.
사형이 선고된 정치적 양심수의 어두운 분위기는 어린친구 6명과의
소중한 나날들 어디에도 없다. 진달래 피어오르는 가벼운 봄날 서오릉
소풍길에서 이들은 처음 만났고 저자는 사려깊은 말과 행동으로 10살도 더
어린 이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이들은 헤어지면서 저자에게 진달래꽃
한묶음을 선물하였다. 연락처를 주고받은 저자와 아이들은 보름후부터
한달에 한번씩 꾸준히 재회한다. 가난한 사람의 방식으로 청구회는
그들의 역사를, 애정을 키워간다. 저자가 체포되기 전까지 2년여.
사형선고를 받고난 후에 쓴 글. 청구회의 추억을 사형수라는
현실이 뒤덮는다. 공허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인간 신영복으로 남기고 싶었던 말이 간절한 게 있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이 글을 통틀어 세 번이나 언급되는 진달래에서
세가지 아픈 정치적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서오릉 가는 길 무수히 많던 진달래에서는 산재한 과거를
아이들이 선물한 한 묶음 진달래에서는 많이 없어진 현재를
외로운 산책 가슴에 붙일 한송이 진달래에서는 고독해져가는 미래를.
우리 올바른 미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너무 고독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