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그 전투, 그 포화에 산화했을 수많은 생명을 생각한다 부산 피난지에서 당시 여고 1학년이던 나는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놓고 군복입은 청년이 일장 연설 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젊은 학도들이여, 전선으로 나갑시다". 남녀공학이던 사범학교에서였다. 그후 휴전이 되었어도 돌아오지 못한 남학생들이 적지 않게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전쟁은 참혹한 일이다. "이 세상엔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 프랭클린)는 말을 곱씹 어본다. 우리는 6.25의 민족적 참극을 겪은 나라이면서 반세기가 지나도록 그 전쟁의 상흔과 교훈을 역사에 남기는 일에 너무 소홀했다. 현충일 행사조차 희미하게 퇴색해 가는 느낌이다. 아무리 급격한 변화의 시대라 하지만 과연 과거의 민족적 수난과 고통이 이처럼 무관심 속에 묻혀버린다면 정작 어떤 수난에 봉착했을 때 극복 의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는 결코 잊어서도 안 되고 잊혀지는 것도 아니다. 어떤 아픈 역사도 그 실상을 사실대로 전해주려는 것은 미래의 비전 창출을 위함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우리의 각오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과거의 역사를 외면하거나 무관심하게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정리.해석하고 미래 속으로 투사함으로써 평화로운 발전적 진보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열망하고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ㅡ글 김후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