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근본적으로 이미지 게임이다.
이는 단순히 선거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선거 이후의 상황에서도, 파시즘이나 매카시즘의 광기 속에서도, 왕정 또는 독재정 하에서도, 심지어 개인 대 개인간의 관계에서의 정치, 미시적 정치조차도 근본적으로 이미지 게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특정 인물의 됨됨이 또한 아니며, 정책 또한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또는 그들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가이다. 대부분의 독재자는 통치시기엔 독재자로 불리우지 않는다. 위대한 지도자, 국민들의 어버이로 불리지. 그리고 가끔씩은, 권좌에서 쫓겨나고도 그런 지위를 유지하는 독재자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통진당 사태는 근본적으로 통진당의 자업자득이다. 간첩죄도 아닌 내란죄를 걸 수 있는건 어디까지나 타겟이 통진당이기 때문이다. 노동당(진보신당)이나 진보정의당은 물론, 옛 민주노동당 이었어도 내란죄를 걸수는 없었다. 설령 걸더라도, 그게 대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그러나 통진당은 가능하다. 실제로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 저들이라면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정원이 전방위적으로 털리고 있고, 그럼에도 자신들의 활동은 정치공작이 아니라 대북심리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을 모두가 아는데도 불구하고, 통진당이라서 혹시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된다.
국내의 진보운동이란건, 가장 절박했고 그렇기에 가장 과격했던 시기에조차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전부였다. 그조차도 이미 한참전의 얘기고 지금은 쇠파이프는 사진 한번 보기조차 힘들며, 화염병은 아예 호랑이 담배피는 얘기가 됐다. 그런 시대에 총이란다. 적군파 같은 극좌 테러단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가 대한민국인데 총이란다. 북한이 침공하면 그걸로 내부에서 호응하려고 했었단다. 이 또한 우습기 그지없다. 정작 국정원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북한은 비대칭 전력을 통한 상호간 파괴. 다시말해서 공멸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에게 이길 수 있는 시나리오 자체가 없다는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의심을 한다. 이렇게까지 말한 나조차도 약간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왜? 통진당이니까.
그럼 이 어처구니 없는 시나리오를 가능케하는 통진당의 이미지란 대체 무엇인가.
간단하다. 권력에 대한 집착, 폭력을 통한 권력 쟁탈, 민주주의의 적. 비이성적인 광신도 집단. 그리고 종북.
이 모든건 작년 통진당 사태에 그 기원을 두고있다. 더 정확히는 5월 12일. 생방송중에 단상위에 올라가서 주먹을 휘두른 그날.
그 순간 결정된거다. 바로 그 순간, 통진당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는 이들이 됐고, 민주주의의 적이자 자신들의 신념(또는 신앙)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불사하는 광신도 집단이 된거다. 그렇기에 종북은 누명이지만 누명이 아니다. 통진당의 권력에 대한 광기를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고, 그 자리를 꿰찬게 종북이라서 저렇게 집착한다는 해석인거니까.
그럼에도 통진당에겐 기회가 있었다. 통진당이 생각하는 진실이 무엇이든, 주먹을 휘두른 시점에서 무릎 꿇고 숙였어야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에 일부 지지자들이 이성을 잃었으며, 그에 대한 책임을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기었어야했다. 정치는 이미지 게임이니까.
좀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애시당초 부정경선 사태가 그렇게 흘러간 것 자체가 통진당의 업보다. 그들이 민노당 시절에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민노당 분당사태가 왜 일어났는지를 아는 이들이라면 민노당계를 먼저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이미지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에 부정 경선 사태에서 자신들이 의심받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미지 게임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개혁을 보여줘야하는 상황. 즉 낙장불입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명확한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어떤 조치도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으며, 심지어는 폭력사태 이후에마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못하고 타협을 거부함으로서, 결국 사태는 분당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기회를 잃은 것이다. 분당의 시점에서 모든게 끝난거다. 검찰 수사 발표가 어떻게 나든 이미 중요하지 않게된거다. 이미 선을 넘어버린 자들, 악인이라고 결정난 이들의 변명은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사태다.
‘총기를 구해다가 북한의 남침에 호응하려고 했다’라는 판춘문예를 능가하는 소설을 듣고도 ‘저들이라면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
이미지 게임의 생리를 전혀 이해못하는 등신들 덕분에 진보정치 자체가 무너진걸 넘어서,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안보라는 골때리는 국면전환 카드가 정면으로 튀어나오게 된거다. 이 모든게 통진당의 업보... 아니, 업적이다.
저 등신들을 위해 해줄 말은 없다. 말할 거리는 있지만, 할 이유가 없다. 이정도로 판을 망치는 등신들은 차라리 아웃돼주는게 나으니까.
그럼 다시 정치가 이미지 게임이라는 얘기로 돌아와서.
그걸 극명히 드러내는게 최근의 NLL, 국정원 공방이었고, 그게 정점을 찍는 순간이 바로 지금의 내란죄 사태다.
내란죄 사태의 기획의도는 명백하다. ‘정치공작이 아니라 대북심리전’이라는 국정원의 개드립을 진실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내란죄가 진실이든 아니든, 이건 명백히 먹혀든다. 이미지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니까. 거짓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그 결과 국면전환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하더라도 당장의 위기 상황은 명백히 넘어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령 무죄로 결론이 나더라도 기획공작이라는 것만 폭로되지 않으면 국정원의 승리라는거다. 그럴 경우 종북을 잡기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헤프닝으로 넘어가면서, 동시에 ‘국정원은 대북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기관’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하니까. 그리고 그 이미지는 국정원의 개드립에 힘을 실어준다.
같은 논리로 내란죄가 진실로 밝혀질 경우의 결과는 명백하다.
국정원의 행동은 모두 대북임무로 정당화되고, 인터넷은 종북이 설치는 세상이 되는거다.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총기까지 동원해가며 내란을 꾸민 종북 정당이 있다는게 사실이 되면, 그것은 국내에 종북이 엄청 많고 그러니 익명 기반의 인터넷에 종북이 얼마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렇게 국정원이 획득하는 국가안보의 수호자 이미지는, 다시 한번 돌아서 국정원이 저격하는 이들. 즉 문재인, 박원순 같은 인물들 또한 국가안보의 적일 수도 있다는 이미지로 연결된다.
그럼 게임 끝나는 거다. 그 순간 부터는 촛불은 반란세력이다.
이게 좀 비약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데, 흔한 나치 얘기로 비유를 해보자.
나치는 분명히 합법적 선거로 집권을 했다. 그리고 그들이 탄압한 공산당은 분명히 소련과 연관이 있었다. 1차대전 직후에 반란(공산혁명)을 시도한 전과도 있었고. 그러나 그러한 탄압의 귀결은 민주주의의 죽음이었다. 물론, 당시 독일과 현대 한국의 차이는 매우 크다. 단적으로 말해서, 당시 나치를 견제할만한 정당은 공산당과 사민당 뿐이었다. 또한 통진당과 당시 독일 공산당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독일 공산당에 대한 실례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것을 비유로 든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 안보라는 이미지를 특정 세력이 독점하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전가의 보도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국정원 사태를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민주당까지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내란죄 사태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거짓이라고 해서 국정원이 역풍을 덮어쓸 일도 없고, 진실이라고 해봤자 경기동부 따위가 뭘 할만한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건 이게 철저하게 기획된 이미지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애국법을 제정하던 9.11이후 미국처럼, 국가 안보 이미지를 독점함으로서 절대적인 정치적 우위를 차지하려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내란죄의 결과가 어떤 것이 되던, 그들이 이미지를 독점하지 못하게 만들 방법을. 게임은 이미 시작됐다.
덧.
글 내용이랑 상관없으니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부정경선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를 말하자면.
1.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다.
2. 참여계, 노동계도 당권파 못지 않거나 더한 경우도 있었다.
이 정도로 요약이 가능합니다. 그나마 진보신당계 정도가 거론되지 않을뿐, 나머진 도찐개찐이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당권파의 행동이 아예 이해가 안되는건 아닙니다. 비례대표 싸움에서 지니까 서로 똑같이 했던 짓거리를 이용해서 판 자체를 엎어버린다. 라는 상황인거죠. 부정경선 문제제기에 앞장섰던 참여계 비례대표 오옥만이 부정경선 당사자로 구속됐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도 크고요.
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것 또한 당권파의 일방적 시선에 불과해요. 민노당계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참여당계가 비례대표 판을 뒤엎은건 사실이긴 하나, 그 후에 당이라는 판 자체를 붕괴시킨건 당권파죠. 부정경선은 넘어갈 수 있는 고비였지만, 폭력사태는 루비콘 강이었으니까요. 자신들은 민노당 시절 현 진보신당계에게 더한 짓거리를 해왔으면서, 이번에 한번 엿먹었다고 아예 판을 깨버리는 꼬라지가 우습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 포인트를 들자면, 통합진보당은 노동자가 무시당하는 진보당이었다는 사실 정도가 되겠네요. 참여계는 애초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진보신당계는 몇몇 네임드가 있을뿐 규모자체는 빈약했고, 당권파는 사태가 급해지니 자신들 부터 살고 보는 식으로 노동계를 배신했죠.
평상시에는 노동만 강조하면서 경제적 계급과 노동의 문제만이 최우선 과제이고, 다른 진보적 주제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라는 구좌파의 사고방식이 정말 뭐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더라도 진보정당에서 노동자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밀려났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네요. 아예 녹색당처럼 별개의 이데올로기를 핵심 의제로 삼은 정당이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통진당은 명백히 범진보를 표방하는 단체였으니까요.
덧2.
글이 쓸데없이 김. 좀더 간단명료하면서도 명확하게 글을 쓸 수 있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