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든 일을 뒤로한채 일찍 집에 왔다.
쉴새없이 몰아치는 세상에 너무 지친 텃일까 오늘은 왜인지 맥주 한 캔만을 마셨을 뿐인데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노곤노곤하다.
이 추욱 처진 몸뚱이에 나지막하게 웅웅대며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일하고 있구나. 너가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청춘... 푸를 청 봄 춘을 써 만물이 푸른 봄철이라 한다.
이 단어를 보고 있으면 정말 잘 만든거 같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 지금 이 푸르디 못해 영롱하기까지 한 지금 나의 이 시기가
나에게는 그렇게 썩 달갑지는 못하다.
고등학교때는 대학만 가면 모든게 끝날줄 알았고, 군대에 갔을때는 제대만 하면 모든게 끝나는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의 큰 고개를 넘어 한 숨 돌리고 다시 앞을 보고 있노라면
내 앞에는 더 험난한 산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큰 산을 넘고나면 그 다음에는 얼마나 험준한 산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를 생각하고 있으면 걱정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어느순간 나는 예전에 비해 말 수가 적어졌고 웃는 일이 줄어 들었다.
가끔 길을 가다 건물의 쇼 윈도우에 비친 나를 보고 있자면 쇼윈도 안에 있어야할
마네킹 하나가 밖을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게 어른이 된다는 것이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모든 짊을 내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얼른 씻고 몇시간 뒤면 찾아올
아침이라는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유를 잊지못해 가끔 찾아오는 애증의 관계처럼 이것도 그러한 것인가 보다.
차가운 물에 이 모든 감정을 떠내려 보내고 얼른 잠이나 자야겠다.
다만, 오늘은 자면서라도 그 동안 잊고 살아왔던 감정들을 느낄 수 있게
좋은 꿈이라도 꾸기를 바라며 잡설을 마친다.
빵긋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