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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산에 가고 싶다
게시물ID : humorstory_3961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hfgksthf
추천 : 0
조회수 : 3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29 08:26:54
 한 겹씩 껍질을 벗으며 흰 속살을 들어내는 양파를 다듬으며, 이렇게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명주같은 그 무언가가 손에 잡힐 것 같아 매운 눈물을 참는다.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양파는 사라져 버렸다. 알싸하고 따끔거리는 시린 양파 냄새만 남은 빈  두 손. 그 손 안에 가득 담기는 보이지 않는 그리움과 작은 설렘, 애틋한 아쉬움으로 그 산에 가고 싶다.
 꽃매미의 울음소리와 끈적거리는 더위에 잠을 잃은 몸은 피곤함에 지쳐 있다. 베란다에 서자 물 먹은 어두운 공기가 스처가더니 번개와 천둥이 지친 잠을 빼앗는다. 플룻 소리와 함께 애잔한 가락의 음악이 흐른다. 밖은 이내 굵은 빗소리로 가득하지만 노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다. '떠나는 님을 애처러히 불러도 대답은 없고, 하얀 눈만 내린다.'고 한다.  여 가수의 목소리가 눈발에 스산하게 휘날린다. 어느 새 내 마음에도 하얀 눈이 내리고 있다. 그런 눈을 맞으며 그 산에 오르고 싶다.
 굽이치는 말티재를 넘으면 초가 지붕같은 완만한 산등성이가 낮은 하늘에 펼쳐저 있다. 장엄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찌를 듯한 산의 형상이나 정기라고는 애써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 넉넉하다. 땀 흘려 산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그냥 그 산의 품에 안기고 싶고 그 산의 일부가 되고 싶을 뿐. 내 어머니 품 같은 산이었다. 가는 눈이 함박눈으로 내린다.흰 눈속으로 무리의 사람들이 조용히 산을 오른다. 그렇게 산에 오르고 싶다. 홀로면 더욱 좋고, 사랑하는 이라도 함께 한다면 그야 세상 사는 덤이 될 것이다.
 내리는 눈이 입가에 머물러 작은 갈증을 풀어 준다. 세상은 어느 새 하얀 눈으로 덮이고, 바람소리도 일지 않는 계곡에 물소리와 눈꽃의 화음이 서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무슨 대화를나누고 있는가 귀 기우리면 눈에 밟이는 발자국 소리만 뽀드득거린다.
 작은 산마루에 있는 찻집에 들려 산 내음새 가득 한 이름 모를 차를 마시며 산아래를 굽어본다. 내리는 눈발에 시야는 멀리 가지 못하고, 이내 돌아와 가벼운 순수함에 쌓이는 나무를 본다.
 굽어도는 계곡을 지나 산마루에 올라 잠시 쉰다. 땅! 하는 단말마의 외침이 계곡 가득 메우고 남은 메아리가 가슴 저리도록 깊숙이 마음에 박힌다. 내리던 눈꽃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메아리처럼 사라진다. 하나 하나의 작은 눈꽃이 쌓이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무가지가 꺽이며 내는 소리가 온 산의 고요함을 깨뜨린다. 저 사소하고 가벼운 것이 얼마나 쌓이면 그리될까. 무엇이 안타까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저런 아픔을 맛보는 것일까. 저 설해목처럼 나의 삶도 오래 전에 이미 낡고 늙어 버린 것이었다. 지난 겨울 산에서 본 황태 덕장이 떠오른다. 하얗게 눈을 맞으며 지울 수 없는 것 하나씩 지워가는 명태가 부럽다. 꽁꽁 얼어 붙은 마음에 버릴 수 없는 것, 차마 떨굴 수 없는 것마저 다 내려 놓은 후에 노란 황태로 되살아나는 덕장에서 지금 나는 ....... 그렇게 그 산에 오르고 싶다. 얼마나 많은 날을 교조적인 삶으로 영위해 왔는가. 내려 놓을 수 있는 것 다 내려 놓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양파마냥 될 수는 없는 것일까.
 하얀 눈을 맞으며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는 설해목과 황태처럼 그 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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