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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엘프와 매치된다는 글을 읽고..
게시물ID : freeboard_71112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냥이사료처묵
추천 : 0
조회수 : 32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08/29 11:39:54
심심해서 써보는 '자유' 글 입니다, 역사에 기여한 바탕 글은 아니므로 그냥 '재미'삼아 읽어주세요.
(무식해서 고증바탕은 거의 없습니다..)
 
건축학으로 보면 우리나라 선조는 곡선미를 참좋아합니다. 곡선 성애자라 할정도로 집착하며 그 구조역시 자연에 힘을 빌리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남방 건축식등)
그리고 '문무 수양에도 단순한 육체수련'이 아닌 정신적 수양도 중요시 했는데, 예컨데 보면 한반도의 전통 문무들을 보면 그러하죠..
 
 
그리고 엘프하면 떠오르는게 바로 음악성인데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음악을 사랑하고 시조를 사랑했지요,
밭에가면 농부는 일하면서 힘들다면서 노동요를 부르고 있었을것이고, 동네어귀에는 우리가 지금도 아는 옛동요들의 시초가 아이들 입으로 불리우고 있었겠지요.
또한  마을장터엔 광대패거리가 얼씨구나 한판벌이고,  기생방에선 가야금선율이 들리오는 그런땅이였겠지요.
 
이제 사람에 관한것부터 말씀드리고 싶은데 우선 엘프라는 종족은 양반(그중에서도 실세였던 북촌지역의 양반)기준이였을것 같아요
 
그들만보면 엘프종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선 키부터 보면은 조선시대 평균키 160대 보다 월등하게 높았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초기 양반의 비율이 20% 였던점이였다면 실제 평균치엔 노비도 키가 차지하였을터이며  노비의 경우 양반에 비해 부족한 영양섭취에 인해 작은 키를 유지 했을 것 같아요.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라갈 좋은 식재료도 중간에 삥땅치고 올라가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그러니 실제론   노비키가  150중후,  양반이 170중반 해서 평균 160치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또한 그들의 생활상을 보면
하루가 그랬을겁니다.
흔히 말하는 등청 (일하는것 ),
아니면 그들의 자제 (도련님이라고 하죠?)는 시짓기,활쏘기,문예 정도겠죠, 이따금 기생놀이 ,
 
그리고 의관복도 보면 손만빼고 다 햇빛에서 가렸을겁니다.
얼굴요? 얼굴역시 흑립이라고 우리가 흔히아는 조선시대에 쓰는 모자때문에 햇빛이 가려졌을거에요. 거기다 산지가 많으므로 그렇게 햇빛에 노출되진 않았을거에요, -
일은 하인 노비에게 다 맡기게 되니 얼마나 곱상하겠어요.
물론.. 예외일 수도 있는 부위가 바로 손이겠어요.
 
영화나, 고증문헌
(은 어딘지 기억이 안나지만 재미로 읽어주세요)
우리나라 선조들은 손패티시도 가지고 계셨나봅니다, 여성의 아리따운 손을 좋아했던걸로 기억해요
김홍도의 그림엔  상체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그당시 풍속도에 아무렇지 않았던고보면...... 음 손을 더 중요시 하지 않았나봅니다.
이로써 코난놀이를 해보자면
문과를 지향하는 양반이든, 무과를 지향하는 선비든 활놀이는 취미삼아 했겠죠,
그런데  어디까지나 제가 알기론
'어디까지나 입니다!'
활시위가 손을 상하게 만들게 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튼 그런 곱상한 양반님들이였을것입니다.
 
끝으로 엘프의 필수라 할 수 있는 활기술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산지형때문에 기동성이 떨어지므로 활을 발달시키는게 당연한 이치였을겁니다.
능선을 따라 올라오는적을 내려가 베기전에 활로 푸슝퓨슝 쏘는게 더 이익일테니까요-
그래서 활다루는법, 활의 성능이 발달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남녀노소 활쏘기를 즐겨했데요
 
거기다가 산지에서 평균 100미터 이상의 사정거리로 쏘는 화살이라니,  으어어엉.. 무서울거에요,
더군다나, 실제 활쏘기는 등근육을 더 많이 사용한데요,  그래서 양궁선수중에도 호리호리해보이는 여성선수들도 있구요..
아마, 어디 습격받았을시엔 호리호리해보이던 양반께서 성벽위에 척 하니 ㄴ ㅏ타나서 퓨슝 퓨슝 쏘셨지 아니했나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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