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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호섭 해군총장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그는 "대북 억제 차원에서 키리졸브 훈련에 일본도 참여해 연합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발언으로 의원들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도 들끓었다. 최근 일본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제를 통과시켜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에 대한 우려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문제의 발언이, 그것도 군 수뇌부의 입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었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해군은 "대북 억제 차원에서 일본과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는 원론적인 의미"일 뿐이라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해군의 입장 표명은 자위대에 대한 국민정서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정호섭 해군총장의 발언이 이유야 어찌되었든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은 망언이 불과 100여년 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맛본 국가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가진 인사가 정호섭 해군총장 한사람만은 아닌 모양이다. 국민정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군 수뇌부의 발언에 분노했던 국민들은 어제 황교안 총리로 인해 다시 한번 치를 떨어야만 했다.
황교안 총리는 어제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발효해서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면 허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황교안 총리의 발언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정부가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정호섭 해군총장보다 한 발 더 나아간 발언이다. 치욕스런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총리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식이자, 해서는 안되는 망언 중의 망언이다.
보수 우경화의 기치 아래 과거 군국주의 시절의 영광을 재연하려 하고 있는 아베 내각이 들으면 쌍수를 들고 반길 만한 작태를 대한민국의 행정부를 이끌고 있는 총리가 하고 있는 셈이다.
아베 내각이 통과시킨 안보법제의 대상에는 대한민국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 정부가 법률상 집단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민국도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황교안 총리가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아찔하고 참담하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2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무력행사 '신 3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자위대를 파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역으로 요건에 부합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한반도에 자위대를 파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신 3요건'을 설명하면서 일본 또는 동맹국에 대한 무력공격으로 일본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이 뿌리째 뒤집힐 명백한 위험이 있으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신 3요건'의 판단 주체가 누구냐는 점이다. 그런데 그 주체가 일본 자신이다. 결국 '신 3요건'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제약을 두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단지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감추기 위한 형식적인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더욱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일본의 재무장을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는 국가가 다름 아닌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아베 내각이 통과시킨 안보법제는 중국의 동북아 팽창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전략과 일본의 군국주의적 야심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한일 군사협력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결성을 계속해서 압박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동북아 전략에 맞추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대한민국 군 수뇌부에서 튀어나온 한일 군사협력과 황교안 총리의 유사시 자위대 파견 허용 발언의 배후에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와 같은 국제 정세 속에서 유사시 미국의 자위대 한반도 파병을 거부할 힘이 과연 대한민국에 있기는 한 것일까?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전시작전권조차 갖지 못한 나라이며, 자신들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2015년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할 만큼 현 정부가 외세 의존적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이는 대단히 난망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의 행정부를 이끄는 총리라는 사람이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용인하는 망발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모습에서 100여년 전 민족을 배신하고 나라를 일본제국주의에 헌납한 '을사오적'이 오버랩되는 것이 어디 필자 뿐일까!
황교안 총리의 참을 수 없는 망언에 국민들의 비난과 비토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에 나라를 팔아 넘긴 '을사오적'의 작태와 황교안 총리의 망언은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벌어진 이 볼쌍스러운 광경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반드시 후대에 전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세워도 모자랄 시점에, 그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서 국민정서에 반하는 민족적 수치와 모멸감을 안겨 주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후안무치한 자들의 파렴치한 망동은 계속해서 되풀이 될 것이다. 그 옛날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부역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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